아폴로 우주선에서 사용한 아폴로유도컴퓨터. 오른쪽은 입력장치. 위키미디어 코먼스
1961년 5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인간의 달 착륙-귀환 비전을 선언하고 나서 이를 실현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8년이었다. 당시 미-소 대결 구도에서 대통령의 결정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한 우주역사학자는 이를 ‘파라오의 피라미드 건설 결정이 이집트에 갖는 의미’에 비유했다. 거의 무모하다시피 했던 도전을 1960년대 달력이 넘어가기 전에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은 과학기술 역량을 총동원했다. 덕분에 짧은 기간에 많은 혁신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집적회로 컴퓨터다. 집적회로는 트랜지스터의 연결선을 없앤 소형 전자회로로 마이크로칩의 전신이다. 우주선의 무게와 소비전력을 줄여야 하는 나사에 구세주와도 같은 장치였다. 우주에서의 무게는 곧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에서 집채만 한 컴퓨터를 우주선에 탑재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폴로가 집적회로 기술을 채택한 이유다.
아폴로 우주선이 153만㎞를 날아 달나라의 목표 지점에 정확히 내릴 수 있도록 안내한 아폴로유도컴퓨터(AGC)는 수천개의 집적회로(실리콘칩)로 구성된 최초의 집적회로 기반 컴퓨터다. 작은 서류가방 크기로 당시 소형화 기술의 최고경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MIT가 개발한 이 컴퓨터는 용량이 74k 롬과 4k 램 메모리에 불과하다. 1980년대 초반 가정용 피시 수준이다. 하지만 우주선 속도와 궤적 등을 분석하는 휴스턴 관제센터의 아이비엠 360 컴퓨터 5대와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인류 사상 가장 장엄한 일 가운데 하나를 훌륭히 수행해냈다.
나사의 의뢰로 처음으로 작업용 집적회로를 만들어 시연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는 그 공로로 200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폴로를 계기로 집적회로는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는 1970년대 실리콘밸리를 탄생시켰고, 오늘날 컴퓨터 산업의 원동력이 됐다.
아폴로 우주복 안에 입었던 액체냉각복.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주선 안의 우주비행사들을 위해 개발한 소형 정수장치도 아폴로가 도입한 혁신 기술 가운데 하나다. 이는 구리와 은이온을 물 속으로 내보내 살균하는 장치다. 그때까진 염소 소독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염소는 햇빛이나 열에 약해 우주에서 사용하기 곤란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이 정수 기술은 지금도 냉각탑과 수영장, 분수대 등에서 널리 쓰인다. 오늘날 각 가정에서 쓰는 무선 전동 드릴도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본을 채취하기 위해 사용한 무선 드릴이 원조다.
우주선에 탑재한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오늘날 신용카드 결제용 스와이프 단말기에 이용되고 있다. 또 경주용 자동차 레이서와 소방관 등이 입는 액체냉각복은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복 안에 입도록 고안한 의복에서 비롯됐다. 우주비행사를 위해 개발한 동결건조식품은 현재 군용 야전 식량으로 쓰인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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