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월호 <과학과 공작> 잡지의 서울전차 운행 종료를 알린 화보 기사. 서울SF아카이브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서울 신림선 경전철 공사로 도로에 교통 체증이 일어나곤 한다. 개통 예정이 2022년이니 아직 꽤 남았다.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등에는 이미 운행 중인 경전철이 있고, 공사 중이거나 계획 중인 곳도 여러 곳이다. 경전철과 비슷한 것으로 노면전차가 있는데, 외국에서 흔히 ‘트램(Tram)’이라고 부르는 노면전차는 경전철과는 달리 지상 구간으로만 다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면전차, 줄여서 흔히 ‘전차’라고 부른 교통수단은 한때 서울과 부산의 대중교통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서울의 전차는 1899년부터 1968년까지 70여 년 동안이나 시민의 발 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제 사라진 지도 50년이 넘어 장년층 이상이 아니면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마포종점’ 같은 오래된 대중가요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서울 전차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보다 먼저 개통되었다는 사실이다. 서울 전차는 당시 경성 일대의 전기사업권을 지닌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과 보스트윅이 고종 황제를 설득하여 부설한 것으로, 1898년 9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서대문과 청량리를 연결하는 첫 구간이 1899년 5월에 운행을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교토에 이어 두 번째였다. 한편 경인선 철도는 미국인 사업가 모스가 1897년에 착공했으나 공사 도중에 사업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끝에 1899년 9월에야 인천-노량진 구간이 처음 개통되었다.
전차가 처음 개통된 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잇달았는데, 그 일화들은 전차가 사라진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제로 남아 있을 정도이다. 운행을 시작한 지 10일 만에 어린아이가 전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그 아버지가 도끼를 들고 달려들어 전차를 부수고 다른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불태워 버린 일이 있었다. 당시 미국 신문에까지 보도되었던 이 사건으로 일본인 운전사들이 안전보장을 요구하며 운행을 거부하여 5개월 동안이나 운휴에 들어갔고, 결국 미국에서 사람을 구해와서야 재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들어 경성(서울) 전차는 노선이 확장되고 시내 구간이 복선화되는 등 투자가 늘었지만, 용산 같은 일본인 거주구역에서는 운임을 싸게 받는 식의 부당한 운영으로 논란이 일었다. 1920년대 이후로는 인구 증가로 전차가 교통량을 다 감당해 내지 못할 정도가 되었는데, 1928년부터 시내버스가 운행을 시작하면서 그 부담이 일부 나누어지게 된다. 한편 부산에서는 1909년에 증기기관차로 운행하는 부산궤도기차가 처음 개통된 뒤 1915년에 모두 전기기관차로 바뀌어 전차가 되었으며, 서울과 마찬가지로 1968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1968년 11월 30일을 끝으로 전차가 운행을 종료하고서 6년이 지난 1974년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그 뒤로 추가 노선이 계속 생기면서 오늘날 서울 지하철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방대한 노선망과 이용객 기록을 지니게 되었다. 연간 이용자가 2013년 기준으로 17억 8천만 명을 훌쩍 넘었다. 전차의 경우 60년대 말에 서울 인구가 4백만 명이었을 당시의 이용객 수가 하루에 50만 명 수준이었다고 하니 연간으로 환산하면 1억 8천만 명이 좀 넘었던 셈이다.
서울 전차는 한창때엔 72개 역에 190대나 운행했지만 지금 남아있는 차량은 단 두 대뿐이다. 하나는 서울역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으며 다른 한 대는 혜화동의 국립어린이과학관에 있다. 부산 전차도 두 대가 남아 있는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는 것 외에 다른 한 대는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서 식당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운행 종료 당시 서울과 부산에서 운행하던 전차들은 1950년대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애틀랜타에서 쓰던 차량들을 무상 원조받은 것이었으며 일부는 일본에서 도입하기도 했다. 전차는 기계 구조상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수명이 긴 편이다.
노면전차는 지금도 전 세계의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교통이다. 개인적으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프랑스의 르아브르, 미국의 산호세, 일본의 가고시마에서 유유자적하게 운행하는 트램을 본 기억이 새롭다. 서울은 비싼 땅값 때문에라도 노면전차가 새로 깔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속속 건설되는 경전철이 그와 비슷한 인상을 지니는 것 아닐까? 20세기 전반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 추억에 전차가 남아 있다면, 21세기 전반기를 사는 어린이들은 경전철의 기억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