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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정책과 미래예측이 재결합해야 할 때다

등록 2021-02-11 09:59수정 2021-02-14 09:46

[윤기영의 원려심모]
라스웰은 미래 전망을 다섯단계로 나누었다. 픽사베이
라스웰은 미래 전망을 다섯단계로 나누었다. 픽사베이

현대 정책학과 현대 미래학은 인연이 깊다. 정책이란 본질적으로 미래를 대상으로 한다. 정책이 시행되고 그 효과를 거두는 시점은 정책 수립 시점이 아니다. 많은 경우 정책 결과가 나오는 시점은 몇 년 후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년이 지나야 할 때도 있다. 정책 효과가 즉시적이라 하더라도, 그 지속기간이 수십년을 넘어 장기 미래의 변화를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정책은 현재의 당면한 문제에만 눈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도 응시해야 한다. 따라서 정책학과 미래학은 강한 연계성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이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정책학에서 현대 정책학의 시조로 고 해럴드 라스웰(Harold Lasswell, 1902~1978) 교수를 드는데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큰 이견이 없다. 아쉬운 것은 라스웰 교수가 정책학 분야에서 미래학의 시조라는 것을 아는 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웬델 벨(Wendell Bell) 교수는 『미래연구의 기초(Foundations of Futures Studies)』에서 분야별 미래학의 창시자를 나열하고 여기에 상세한 설명을 더했는데, 정책학에서의 미래학의 아버지로 라스웰 교수를 들었다. 1960년대 라스웰 교수와 웬델 벨 교수는 예일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탈산업사회의 도래를 전망한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벨(Daniel Bell) 교수와 함께 ‘미래에 관한 예일 콜로퀴움(the Yale Collegium on the Future)’을 결성했다.

라스웰 교수는 이 콜로퀴움에서 ‘미래를 전망하기(Projecting the future)’를 발표하면서, 미래연구를 위한 단계적 작업에 대해 기술했는데, 이를 열거하면 다음의 다섯 작업이다. ① 목표와 가치를 확인, ② 트렌드에 대한 설명, ③ 맥락에 대한 설명, ④ 현재 정책이 지속되는 경우 가능하고 개연성이 있는 미래에 대한 전망, ⑤ (선호하는 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대안의 창안, 평가 및 선택.

왼쪽부터 해럴드 라스웰, 웬델 벨, 대니얼 벨 교수. 위키피디아
왼쪽부터 해럴드 라스웰, 웬델 벨, 대니얼 벨 교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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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미래를 연결시키려 했던 노력들

이들 다섯개의 작업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현재 미래학의 미래예측 활동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네 번째 작업은 ‘현재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 달성되는 미래’로 그러한 미래가 달성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2019년에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 변화를 전망하지 못했다는 사례만 보아도 현재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로 장기 미래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비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라스웰 교수도 이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네번째 작업은 일종의 기준 미래상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작업이 대안미래를 만들기 위한 정책의제 설정, 평가에 해당한다.

미래학 분야에서 마노아 학파를 연 짐 데이토 교수도 라스웰 교수에 대해서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가 라스웰 교수에 대해서 데이토 교수에게 물어보니 ‘상당히 똑똑한 분이셨으며, 미래학에 대한 열정이 컸다’고 기억했다.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인류애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정치학, 정책학 및 미래학자인 예헤즈켈 드로어(Yehezkel Dror) 교수는 “랜드(RAND)연구소에 있을 때 라스웰 교수와 교류가 있었다”고 말했다.

라스웰이 정책학과 미래학을 융합한 예외적 학자는 아니었다. 정책학 분야의 대표 저널 중 하나인 '폴리시 사이언시스(Policy Sciences)' 초대 편집자 및 자문위원 21명 중 6명이 미래학자였다. 드로어 교수는 정책학의 중시조로 평가받는다. 드로어 교수는 미래학 저널 중 가장 저명한 ‘퓨처스(Futures)’의 초대 편집위원이었으며 현재까지 13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1996년의 글에서 그는 ‘인공지능, 생명과학기술 및 나노물질기술에 의해 21세기가 상당한 혼란이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22세기로 바로 건너가고 싶다’는 상징적인 글을 썼다. 드레옹(Peter DeLeon), 브루어(Garry Brewer), 몰리터(Graham Molitor)는 정책학자이며 미래학자였다. 특히 몰리터는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가 트렌드로 성숙하는 모델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틀을 제공했다. 그의 연구성과는 정책학과 미래학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으며 경영학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정책학과 미래학은 결별했다. 픽사베이
1980년대 이후 정책학과 미래학은 결별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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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었던 시각 차이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책학과 미래학은 결별하기 시작했다. 정책학과 미래학은 제 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결별의 이유는 정책학과 미래학은 대상이 되는 미래 시점, 불확실성에 대한 태도 및 다른 분야와의 관련성 등이 두 학문의 성향차이로 정리될 수 있다.

정책학은 상대적으로 짧은 미래에 대한 관심을 두는 데 반해, 미래학은 상대적으로 장기 미래에 관심을 둔다. 단기 미래는 통계적 미래예측(Forecast)이 어느 정도 유효하나, 장기 미래에 대해서는 통계적 미래예측이 유효하지 못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통계적 미래예측, 즉 현재상태가 지속되는 미래가 달성되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이는 미래를 보는 시점이나 미래를 전망하는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를 만들었다.

불확실성에 대한 태도도 큰 차이를 보인다. 미래학에서 불확실성은 미래의 가능성과 자유의지의 시공간을 의미한다. 증거기반의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입장에서 불확실성은 위험과 동의어가 된다. 실증주의적 정책수립의 체계와 문화는 미래학의 개방적 태도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 있다. 정책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책담당자와 정책학자의 입장에서 미래학 전문가와 학자의 주장은 좋은 이야기에 불과하며 책임 없는 태도로 비치게 된다.

미래학과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정책학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영분야, 환경분야 등 모든 분야가 미래학과 융합될 수 있는 영역이다. 미래학이 정책학에 목을 맬 필요가 없었다.

시대적 분위기도 한몫을 했고, 미래학자의 책임도 존재한다. 정책학은 과학으로서의 지위를 원했다. 따라서 계량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원용했다. 미래학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으나, 이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상으로 하며, 미래의 위험과 미래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미래학이 바라보는 것과 정책학이 응시하는 곳은 달라졌다. 그리고 1980년대를 지나면서 미래학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와 같은 미래학자가 기염을 토했지만, 학문으로서의 미래학은 그 영향력이 수그러들었다. 일부 미래학자는 스스로를 점성술사로 격하(?)시켰다. 그들은 크리스탈 볼을 보듯 자신이 미래를 명료하게 예견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 초기에 이들은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이내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이에 따라 미래학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낮아졌다.

현대 미래학과 현대 정책학이 처음 만났을 때 상당히 뜨거웠으나, 헤어졌을 때는 쓸쓸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불확실성이 급증하고,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며, 코로나19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서 미래학과 정책학이 다시 결합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불확실성의 증가는 정책과 미래전략의 재결합을 요구한다. 픽사베이
불확실성의 증가는 정책과 미래전략의 재결합을 요구한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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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에서 미래예측과의 재결합이 필요한 이유

뷰카(VUCA)는 21세기 들어 급격하게 증가했다. 뷰카는 휘발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및 모호성(Ambiguity) 혹은 가속(Accelerating)을 뜻하는 영어의 두문자다. 뷰카에 대한 관심도와 사용빈도는 2010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뷰카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발, 디지털 전환, 글로벌 질서의 다극화, 기후 온난화의 가속화 및 코로나19 등이다.

변화의 가속화는 정책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증거 기반의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는 뷰카에 대응하지 못한다. 소수의 정책 결정자와 정책 선도자(Policy Entrepreneur)로는 고도의 복잡성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다. 전체적(Holistic) 접근과 미래의 불확실성, 복잡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미래학과 정책학이 재결합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미래학은 정책 의제설정, 정책 대안 수립 및 정책 분석에 활용될 수 있다. 미래의 가능성과 미래의 변화를 고려하여 정책 의제를 설정하며, 전체적 시각에서 정책대안을 수립하고, 정책의 실효성과 타당성을 미래를 향하여 점검할 수 있다.

미래학은 숙의민주주의에 활용될 수 있다. 미래학의 고유방법론 중 하나인 다중인과계층분석(CLA, Causal Layered Analysis)을 통해서 다양한 이해관계의 시각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시나리오 방법론을 통해 현재의 선택이 미래에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사전에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더구나 미래의 불확실성은 존 롤스(John Rawls)의 ‘무지의 베일’의 현실 버전이 될 수 있다. 『정의론』을 쓴 롤스는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가장 원초적인 정의의 규칙을 도출했다. 롤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논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무지의 베일은 정의를 도출하는 데 유효하며, 미래의 불확실성이 주는 무지의 베일은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도구로 활용 가능하다.

정책 혁신, 정책 서비스 혁신, 정책 모델 혁신, 국가단위의 전략 혁신 및 거대 전략의 창안을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과 고민이 필요하다. 미래학의 다학제적, 전체적 접근 및 불확실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는 이들 정부 정책과 전략에 활용될 수 있다. 유럽의 정책실험실(Policy Lab.)의 네 개 축 중 하나가 미래예측, 정확하게는 원려(遠慮)를 의미하는 포사이트(Foresight)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공분야혁신전망대(OPSI, Observatory of Public Sector Innovation)는 미래예측(Foresight)을 주요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정책 디자인을 포함한 정책 디자인 또한 미래예측을 적극적으로 원용하고 있으며, 정책 모델링 또한 다르지 않다.

21세기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정책학과 미래학은 재결합해야 한다. 재결합을 위해서 정부의 정책담당자와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기업 및 비정부기구의 정책선도자 조직은 인재선정기준, 조직구조, 성과평가 및 조직문화를 전환해야 하며, 정책 연구 방법론에도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실증주의, 미래학, 정책실험 등을 융합해야 하고, 다학제적 접근을 위한 제도적, 방법론적 변혁을 해야 한다. 남북한 정책에서 주택 정책까지, 신 남·북방 전략의 거대전략에서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이행전략까지, 평생교육정책에서 청년실업정책까지, 정부정책과 전략의 수립에 미래전략, 즉 원려심모(遠慮深謀)의 체계를 재정착시켜야 한다. 21세기 전반기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정책학과 미래학이 재결합해야 한다.

윤기영/한국외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에프엔에스미래전략연구소장

synsa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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