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베스트셀러 <메가트렌드>로 미래학자 명성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정보사회로의 이행’ 예견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정보사회로의 이행’ 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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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나이스비트(1929.1.15.~20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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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나이스비트의 최고 베스트셀러 <메가트렌드>(1982) 표지.
21세기 들어 중국 급부상에 주목...중국 연구소 설립 이 책은 출간 이후 2년간 줄곧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집계할 때마다 대부분 1위를 차지하면서 57개국에서 1400만부 이상이 판매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의적이고 피상적이며 식후 담화에 적합한 문학 작품라거나, 이미 성공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위해 상식을 재포장한 것일 뿐이라는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메가트렌드>의 성공에 힘입어 그는 컨설팅 사업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초청 연사로도 인기를 끌면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 등 세계 유력 정치인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는 “트렌드는 말과 같아서, 이미 가고 있는 방향에서 올라타는 것이 더 쉽다” “우리는 정보 홍수에 빠져 있다, 하지만 지식은 굶주리고 있다” 등 한줄짜리 촌평에 능했다고 한다. ‘메가트렌드’는 미래학자로서의 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대명사였다. 그는 1990년 두번째 부인과 함께 낸 <메가트렌드 2000>에서는 직장에서의 여성 역할 증대, 아시아의 경제력 부상, 재택근무 경향을 예측했다. 이어 21세기 들어서는 중국의 급부상에 주목했다. 그는 2007년 나이스비트중국연구소를 세우고 중국 현지 연구원들과 함께 중국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를 연구했다. 이후 <메가트렌드 중국>(2010) <중국 모델>(2011) <중국의 혁신>(2012) <메가트렌드 창조, 중국의 뉴실크로드>(2017) 등 다수의 중국 관련 책을 부인과 공동저술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살면서도 지난 20년간 중국에 최소한 1년에 4번은 다녀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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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존 나이스비트 부부(오른쪽 두번째, 세번째). 나이스비트닷컴
신문을 트렌드 분석 주요 자료로 활용 그는 신문에서 트렌드 분석과 예측의 주요 자료를 뽑아냈다. 1980년대 초반 그의 회사 연구원들은 하루에 250가지 신문과 수십가지 잡지를 읽었다. 그는 특히 자신이 ‘불가사리 주’라고 표현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워싱턴, 콜로라도, 텍사스 5개 주의 사회 변화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는 1990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인터뷰에서 신문을 주요 자료로 활용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의 접근 방식은 변화가 바닥에서 위로, 그리고 지역에서 시작한다는 개념에 바탕을 둔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하는 데 신문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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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나이스비트의 최근작들은 거의 부부 공저다. 나이스비트닷컴
“주류적 사고에 묶여 있지 않아”…정치적으론 ‘급진 중도’? 나이스비트는 1929년 솔트레이크시티의 경비원 겸 버스운전사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타주 글렌우드에서 자랐다. 유타대를 졸업한 그는 여러 기업의 홍보담당자로 일한 데 이어 코닥과 아이비엠의 임원을 지냈다. 34살 때는 존 에프 케네디 행정부의 교육부 차관보로 봉직하기도 했다. 이후 1966년 첫 리서치업체를 설립해 기업,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분석보고서를 발행하면서 미래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두번의 이혼 후 2000년 그의 저서 독일어판 출판 편집자와 세번째 결혼을 한 뒤 오스트리아로 이주했다. 이후로는 아시아 문제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아내 도리스 나이비트는 “존은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일 뿐만 아니라 편견이 없었으며 어떤 주류적 사고에도 묶여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명확히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메가트렌드>에서 “정치적 좌파와 우파는 죽었으며 모든 행동은 급진중도(radical center)에서 나온다”는 말로 급진중도파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여기서 급진은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중도는 이상이나 정서가 아닌 현실과 실용에 기반한 해법을 가리킨다. 급진중도파는 좌파나 우파 어느 한 쪽에 속하지 않은 채 정부의 감독 아래 공익에 기반해 시장 시스템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지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십년에 걸친 일련의 ‘메가트렌드’ 저술 행진은 2018년 아내와의 공저 <미래의 단서>(부키 펴냄)가 마지막이 됐다. 원제는 <메가트렌드 완전정복>(Mastering Megatrends). 말년의 그는 기후변화와 4차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인류의 위기와 기회의 저변에 흐르는 메가트렌드를 ‘완전정복’했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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