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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의료에도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등록 2021-06-22 10:03수정 2021-06-22 16:52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49)
‘이야기의 탄생’과 서사의학
우리는 왜 그렇게 이야기에 빨려들까? 픽사베이
우리는 왜 그렇게 이야기에 빨려들까? 픽사베이

왜 우리는 이야기에 그토록 매력을 느끼는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인류사 내내 오랫동안 탐색된 질문은 다양한 답을 내놓았다. 뇌과학의 시대엔 이야기의 매력도 뇌과학으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고, 그 결과물이 윌 스토가 쓴 ‘이야기의 탄생’이다.

스토가 내놓은 답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비슷한 설명이 다른 이론으로 주어져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를 통한 카타르시스(감상자의 정서적 해소)를, 중세 성서 해석학은 역사적, 영적 의미의 전달을 강조했다. 이야기는 감정적 변화와 의미 전달 두 가지를 목적으로 하고, 이것이 인간의 삶에서 그토록 중요하기에 사람들은 이야기를 갈구한다. 근대 철학과 정신분석학도 똑같은 말을 하지만, 철학은 이성에,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에 기대 이를 풀어낸다. 최근에는 진화(브라이언 보이드, ‘이야기의 기원’)나 뇌과학으로 이를 설명한다. 바뀌는 것은 감정과 의미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설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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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까

‘이야기의 탄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뇌는 눈, 코, 입, 피부 등 감각기를 통해 들어오는 외부의 자극(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한다. 이 상황에서 뇌가 아는 세상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뇌는 나머지 부분을 상상으로 채우려 한다. 이 상상의 작용은 시각(눈이 높은 해상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중심부터 20~30도 정도까지뿐이라, 뇌는 보지 못한 부분을 상상으로 그려 채운다)부터 다른 모든 감각 작용에 미친다. 그 결과, 뇌는 불완전하게 인식한 세계에 대한 모형을 구축한다.

이 뇌의 작용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스토는 이를 ‘스토리텔러 뇌’의 모형 구축 작용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매력적이라서 끌리는 게 아니라, 뇌는 애초부터 이야기의 원리로 작동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 뇌는 실제로 경험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자극을 받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주인공이 들판을 달려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의 뇌에서 다리의 근육과 바람의 촉감, 들판의 향기를 경험할 때와 같은 부위에 불이 켜진다는 말이다. 즉, 이야기는 경험 없이 경험을 겪게 하고, 이를 통해 듣는 사람을 움직여 감동하게 한다.

윌 스토가 쓴 ‘이야기의 탄생’ 표지. 출처: 알라딘
윌 스토가 쓴 ‘이야기의 탄생’ 표지. 출처: 알라딘

다음, 우리는 확고한 내가 있다고 굳게 믿지만, 감정에 휩쓸릴 때 우리는 평소에 알지 못하던 내가 떠올라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친 듯이’ 화가 난 나는 사고와 행동 패턴이 약간 바뀐 게 아니다. 화가 나서 뇌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말 그대로 다른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성’ 또는 ‘의식’이라고 부른 영역은 우리 정신생활의 일부일 뿐이고, 그 아래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뇌의 부분들이 작동하고 있다. 이를 우리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그리하여 ‘시인과 촌장’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뇌는 그것을 통합, 통제하려 한다. 동화에 나오는 허풍선이 같이, 뇌는 무심코 한 행동에 매우 빠른 속도로 이유를 갖다 붙인다. 그래서 뇌 속 극장의 주인공인 나는 항상 타당한 일을 하는 공명정대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실제와 거리가 있는 나를 창조하는 뇌의 작용(스토는 이것을 ‘결함 있는 자아’를 꾸미는 ‘영웅 만들기 뇌’라 부른다), 이것은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구성하는 원리다. 감상자는 작품 속 인물에 관해 그 성격과 역사의 일부만 알 수 있다. 하지만 감상하면서 그 인물의 결함을 파악하고, 그가 극의 흐름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겪을지 기대하게 된다. 인물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겪는 변화는 성장이요 통합이며, 그것은 감상자에게 가치와 의미를 전달한다.

스토는 이 ‘스토리텔러 뇌’와 ‘영웅 만들기 뇌’를 여러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통해 설명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고 구성하기 위해 뇌과학을 통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 본다. 최근의 뇌과학, 심리학 연구와 이야기 쓰는 법을 잘 연결하여 쉽게 풀어낸 좋은 작법서다. 끝.

… 이라고 말하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서사의학이라는 새로운 의학의 접근법을 소개하려 한다. 참, 이 칼럼의 부제는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이다. 햇수로 4년째 이어가고 있는 이 칼럼 제목에 늘 나오는 ‘의학과 서사’라는 말에 한 번쯤은 궁금함을 품어 보셨으리라 생각한다(궁금해하신 분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의학 또는 의료에 이야기의 자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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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이 질병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

당연히 있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료인을 만나서 질병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어떤 이유로 내가 아프게 되었고(기), 그 증상과 영향은 무엇이며(승),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확인하여 시행하고(전), 아픔에서 해방된다(결)는 4막 구성으로 이루어진다(꼭 다 이런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고, 특히 결말은 사람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일단 이렇게 정리하자).

현대 의학에서 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의료인, 특히 의사이다. 의사는 환자가 호소하는 불편을 듣고 여러 검사를 통해 그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제공한다. 이것뿐이라면 모두가 행복하리라. 하지만, 이 그림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자체다. 현대 의학에서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빠르게 쳐내 핵심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핵심(질병의 원인이라고 가정되는 것)은 현대 의과학이 미리 세워 놓은 흐름에 배치된다. 쉽게 말해, 환자가 ‘배가 아파요’라고 말하면 촉진 등의 검사와 엑스선 영상 촬영을 통해 문제가 되는 장기를 확인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약을 처방하면 환자가 치료된다는 이야기의 흐름이 이미 짜여 있고, 새로 오는 환자는 이 틀에 적절히 맞추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토가 말한 ‘스토리텔러 뇌’의 불완전한 세계 모형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세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뇌는 빠르게 빈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나간다. 의사의 경우에, 환자에 대한 불완전한 파악을 채워 나가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의과학 지식이다. 이렇게 의사의 뇌 속에 만들어진 환자는 실제 환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흔히 현대 의학이 ‘차갑다’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료인이 환자를 돕고 싶어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환자에게 필요한 것을 해 줘도, 환자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조커’(2019)의 한 장면. ‘조커’는 환자 쪽에서 본 질병 이야기의 좋은 예다. 환자는 질병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서 통제력을 잃고, 심지어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도 혼란을 느낀다. 제대로 도움을 얻지 못하는 누군가는 자신과 세계의 결함을 가리기 위해 환상을 만든다. 출처: 아이엠디비
영화 ‘조커’(2019)의 한 장면. ‘조커’는 환자 쪽에서 본 질병 이야기의 좋은 예다. 환자는 질병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서 통제력을 잃고, 심지어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도 혼란을 느낀다. 제대로 도움을 얻지 못하는 누군가는 자신과 세계의 결함을 가리기 위해 환상을 만든다. 출처: 아이엠디비

다음, 치료 과정을 생각해보자. 치료는 기본적으로 환자와 의료인, 두 사람의 관계 사이에서 진행된다(물론 의료진, 가족, 병·의원, 사회 등 여러 층위가 둘의 관계에 개입하지만, 일단 치료가 이루어지려면 환자와 의료인이 만나야 한다). 환자와 의료인은 살아온 세계도, 생각도, 하는 일도, 바라고 꿈꾸는 것도 전혀 다르다. 치료 과정에서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고, 둘의 방향이 잘 맞는 경우엔 괜찮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잘 없고 보통 의료인과 환자는 치료에서 원하는 것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때,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의료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의료인, 특히 의사와 환자 사이 위계를 부여하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두 사람의 만남에서 주인공이 의사라는 데 있다. 다시 스토의 ‘영웅 만들기 뇌’로 돌아가자. 인간은 인격적 결함을 가진 존재이지만, 뇌는 적당한 이유를 가져다 붙여 인간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결핍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그렇기 때문에 ‘영웅 만들기’라고 한 것이다). 질병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의사의 결핍은 가려지고 그의 행동은 환자를 위한 것으로 합리화된다. 그 작용은 환자의 이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서, 질병 이야기에서 환자(주인공 의사가 만나는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는 그 일면만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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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학, 이야기 주인공은 의사 아닌 환자

이런 질병 이야기는 이상하지 않은가? 질병을 앓는 것, 즉 질환 경험의 주인공은 애초에 환자다. 환자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환자의 경험과 감정, 바램(이것은 의료인의 감정과 바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은 그 이야기에서 적당한 위치를 부여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 질병 이야기는 의과학이 기계적으로 짜 놓은 삼인칭 이야기로 끝날 수 없다. 질환 경험에는 환자의 역사와 사회가, 그가 만난 의료인의 삶과 경험이, 환자와 의료인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역동이, 그 섬세하고 복잡한 무늬가 켜켜이 쌓인다. 이 모두를 무시하고 단순화하는 현대 의학의 ‘스토리텔러 뇌’와 ‘영웅 만들기 뇌’가 불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서사의학이다. 서사의학은 현대 의학의 단순하고 빠르며 무차별적인, 환자와 의료인의 모든 복잡성을 무시해버리는 이야기를 벗어나기 위해 의료인에게(물론, 환자에게도, 의학과 의료에 관심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를 가르친다. 소설의 깊이와 등장인물의 다양함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춘 의료인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의료의 이야기, 질병 이야기에서 자신과 환자에게 닥친 이 고난의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을 더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 그는 환자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초청하여, 방향타를 잃고 표류하는 환자가 다시 삶의 이야기를 써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료인과 환자의 결핍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질병을 헤쳐 나가는 이 의료라는 과업이 서로에게 성숙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곧 출간될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표지. 동아시아 제공
곧 출간될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표지. 동아시아 제공

이것이 서사의학의 일이다. 6월 말이면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번역서를 발간하여, 한국에 정식으로 서사의학을 소개하게 된다. 우리 삶, 질병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그 여정을 다르게 읽어낼 방법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여러분을 새로운 이야기로 초대한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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