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고기 과다섭취 땐 DNA 손상…사망위험 최대 47% 높아
붉은고기의 어떤 성분이 대장암과 연관돼 있는지 연결고리가 밝혀졌다. 퍼블릭도메인
디엔에이의 알킬화를 유발하는 니트로소는 가공육의 질산염으로부터도 만들어진다. 픽사베이
붉은색 내는 헴이 DNA 손상의 시발점 연구진은 여러 해에 걸친 생활습관 조사에 참여했던 보건부문 종사자 28만명 중 대장암 환자 900명을 골라 이들의 DNA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진이 이들의 유전자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들에겐 대장암 진단을 받기 전의 식사와 생활습관에 대한 자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들의 대장 조직에서 뚜렷한 ‘돌연변이 시그니처’(mutational signature)를 발견했다. 돌연변이 시그니처란 디엔에이 염기서열 변화나 일부 서열 손실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변이의 양상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이번에 연구진이 발견한 것은 KRAS, PIK3CA라는 이름의 유전자에서 일어난 ‘알킬화’(alkylation)라는 유형의 DNA 손상이었다. 알킬화란 특정 화합물에 알킬기가 결합되는 현상을 말한다. 단백질이나 DNA에 메틸기가 결합되는 메틸화(methylation)가 대표적인 알킬화 반응이다. 디엔에이가 메틸화하면 유전자 발현이 억제된다. 암억제유전자 발현 억제 기능도 그 중 하나다. 그렇다고 이런 변이 양상을 보인 모든 세포가 반드시 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건강한 대장 조직에서도 알킬화 현상이 포착됐다. 연구진은 알킬화라는 변이 시그니처가 대장암 진단을 받기 전 가공육 및 붉은 고기 섭취와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 생선, 다른 생활 습관과의 관련성은 발견하지 못했다. 디엔에이의 알킬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연구를 이끈 하버드의대 마리오스 지안나키스(Marios Giannakis) 교수는 붉은 고기에 있는 ‘니트로소’(니트로실)라는 화합물이 알킬화를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라고 말했다. 니트로소는 고기에서 붉은색을 내는 헴(비단백질 분자)과 가공육에 풍부한 질산염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디엔에이 알킬화는 항문으로 이어지는 장의 끝부분인 ‘하행결장’(distal colon)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관찰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생고기 700g을 익히면 무게가 500g으로 줄어든다. 픽사베이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절제하라는 것...“일주일 3회 이내” 연구진은 종양 세포의 알킬화 정도가 가장 높은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대장암 사망 위험이 최고 47% 더 높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따라서 앞으로 대장암을 예방하기 위해선 유전적으로 알킬화에 취약한 환자를 식별해 그들에게 붉은 고기 섭취를 자제하도록 조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알킬화 정도는 대장암의 예후 지표로도 쓸 수 있다. 이미 돌연변이 시그니처가 발생하기 시작한 경우엔 대장암을 초기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대장암의 생물학적 발생 경로를 확인한 이번 발견이 향후 대장암 발병을 억제하고 되돌리는 약물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지안나키스 박사는 “내가 말하려는 것은 붉은고기를 완전히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절제되고 균형 잡힌 식단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높은 수준의 알킬화는 하루에 평균 150g 이상의 붉은고기를 먹는 환자에게서만 나타난다. 세계암연구기금(WCRF)은 붉은 고기는 일주일에 3번 이내, 모두 합쳐 350~500g(익힌 고기 기준)만 먹으라고 권고한다. 익힌 고기 500g은 생고기 700~750g에 해당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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