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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인류는 어떻게 토바 화산 대폭발의 화를 면했나

등록 2021-07-22 10:03수정 2021-07-22 10:16

7만4천년전 수마트라섬의 화산 대폭발
북반구, 최고 10도 하락 등 피해 컸지만
현생인류 살던 남반구는 운좋게 영향 적어
7만4천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토바 화산 대폭발 상상도. 위키미디어 코먼스
7만4천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토바 화산 대폭발 상상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적도 바로 위에 있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토바 화산이 약 7만4천년 전 대폭발을 일으켰다. 250만년 전 빙하시대가 시작된 이래 가장 강력한 폭발이었다. 5000㎥에 이르는 대규모 화산재가 수년간 지구 전역의 하늘을 뒤덮었다. 5000㎥는 한반도 전체를 1㎜ 두께로 덮고도 남을 만한 양이다. 화산에서 분출돼 하늘로 올라간 화산재와 이산화황은 햇빛을 가리거나 반사시켜 기온을 떨어뜨린다. 당시 토바 화산 폭발의 영향은 이후 1천년 동안 지속됐을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 시기는 호모 사피엔스 진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국면이었다. 당시 현생 인류는 고향인 아프리카를 떠나 더 넓은 곳으로 확장해 가려던 참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과학자들은 토바 화산 대폭발에 의한 기온 냉각으로 아프리카 현생 인류의 인구가 1만명 수준으로 격감했을 수 있다는 ‘화산재 겨울’ 가설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아프리카 일대에서 발굴되는 고고학적 증거들은 토바 화산 폭발 이후에도 현생인류는 계속 번성했으며 기후 영향에 따른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엄청난 규모의 폭발에 비해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뭘까?

미국국립대기연구센터를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실제 토바 화산 폭발 이후 기온과 강우량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후모델을 통해 모의 실험한 결과를 20일치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토바 화산으로 생긴 호수. 길이 100km, 폭 30km, 깊이 500m로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 호수 가운데 하나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토바 화산으로 생긴 호수. 길이 100km, 폭 30km, 깊이 500m로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 호수 가운데 하나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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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층 대기의 황산염 입자가 햇빛 반사해 기온 냉각

연구진에 따르면 강력한 화산 폭발로 분출한 이산화황은 수십킬로미터 높이의 성층권 대기층에까지 퍼져나갈 수 있다. 대기 상층에 이른 이산화황 가스는 황산염 에어로졸이라는 작은 입자로 바뀐다. 이 입자들은 1~2년 동안 대기에 머물며 햇빛을 반사한다. 이는 결국 지표의 온도를 변화시키고, 강우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화산 분화 때 이런 현상을 관찰했다. 당시 분출된 화산재는 수년간 지구를 최대 0.5도 냉각시켰다. 대기환경 추적 위성을 이용하면 화산 분출 때 얼마나 많은 유황이 상층 대기에 도달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토바 화산 분출로 생긴 화산호수 토바호 전경. Credit: Clive Oppenheimer
토바 화산 분출로 생긴 화산호수 토바호 전경. Credit: Clive Oppenheimer

그러나 토바 화산처럼 과거의 화산 폭발 때 얼마나 많은 양의 황이 분출됐는지 추정하기란 어렵다. 연구진은 일단 아프리카의 고고학적, 지질학적 기록을 토대로 볼 때, 당시 땅속에서 분출되는 마그마를 따라 올라온 유황 성분은 아주 적은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이어 화산 분출이 기후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화산 폭발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분출 장소와 시기, 이산화황이 다다른 대기 고도, 화산 분출이 일어날 때의 날씨 등에 따라 지역별로 크게 다를 수 있다.

다행히도 토바 화산의 경우, 추정하기에 비교적 좋은 조건이었다. 우선 분출 장소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당시 화산 분출은 길이 100km, 폭 30km, 깊이 500m의 거대한 호수를 만들어냈다. 연구진에 따르면 화산재와 가스가 어느 고도까지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한 추정 자료가 있다. 다만 황의 배출량이나 당시 날씨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는 상태다.

토바 화산에서 배출되는 황이 상대적으로 작거나(왼쪽) 클(오른쪽) 경우의 4도 이상 기온 저하 가능성.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북반구는 대부분 기온이 크게 하락했으나 현생인류의 고향인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더 컨버세이션’에서 인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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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 살던 북반구는 초토화

연구진은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다양한 기온과 강우량, 유황 배출량을 매개변수로 집어넣은 42개의 기후 영향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그 결과, 토바 화산 폭발은 최악의 유황 배출 시나리오에서도 아프리카 기후에 비교적 약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남반구와 북반구의 기후 영향이 크게 달랐다. 북반구는 황 배출량에 따라 1~2년 안에 기온이 최소 4도에서 최고 10도까지 떨어졌다.

반면 현생 인류가 거주하고 있던 남반구는 최악의 배출 시나리오에서도 기온 하락 폭이 4도를 넘지 않았다. 강우량이 크게 줄었을 가능성도 낮게 나왔다. 연구진은 “이는 토바 화산이 인간 진화사에서 세계적 규모의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당시 북반구인 동유럽과 아시아에는 인류의 사촌격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에겐 토바 화산 폭발에 따른 기후 변화가 생존의 큰 위기였을 것이다. 연구진은 “시뮬레이션 결과 이들은 특히 심각한 기온 저하에 노출됐을 것으로 예측됐다”고 밝혔다. 이때 약해진 생존의 동력이 결국 멸종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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