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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진짜 재난은 어디에 있는가

등록 2021-08-03 10:11수정 2021-08-03 10:51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1)
재난의 소비와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이탈리아 화가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의 ‘Rosso Plastica M3’(1961).
이탈리아 화가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의 ‘Rosso Plastica M3’(1961).

코로나19. 역대급의 재난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어디도 할퀴지 않은 곳이 없고,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한 팬데믹. 이를테면 2020년 초반, 아직 코로나19가 자기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았을 때 전설적인 팝스타 마돈나는 코로나19는 ‘위대한 균형자’라고 말한 바 있다. 말인즉슨, 부자와 빈자를 다 평등하게 덮친다는 뜻이다.

당시에도 이미 논란이 되었던 말이지만, 지금 우리는 안다. 코로나19는 절대 평등하지 않음을.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자신은 어떤 의도도 없었을지 모르지만, 자본은 격차와 차등을 따라 바이러스를 활동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1년 넘는 시간 계속 바라봐야 했다.

코로나19에 걸리기 쉬운 직업들이 있었다. 콜센터가, 택배 물류창고가 특히 취약한 노동 환경임을 알았다. 코로나19를 확산시킨다는 집단들이 지목되었다. 성소수자, 종교 집단, 외국인이 찍혔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을 추적했다. 요양병원은 타발적으로 속세와 연을 끊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몇몇 업종은 운영이 불가능해질 정도의 타격을 입었고, 거리에는 공실이 점점 늘어난다. 청년들은 구직에 실패하고, 유연 노동에 내몰린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무얼지 생각해보면 막막한 기분이 든다.

뉴스와 유튜브 영상은 주로 선별진료소와 그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비춘다. 눈에 보이지 않고, 걸려도 밖에 드러나는 증상이 별다른 것 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일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은 쉽게 현실감을 주지 않는다. 이를테면, 태풍이나 홍수, 지진과 같은 재난은 대자연의 위력이, 그로 인한 건물의 파괴가 눈에 잡힌다. 반면, 코로나19라는 재난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영상에 잡히질 않는다. 화면으로 볼 수 없으니, 믿어지지 않는다. 코로나19 음모론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이런 탓도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어디를 가나 숫자, 숫자다. 오늘은 확진자 수가 천오백 명을 넘었고, 이천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아직 유효하다. 인도에선 수백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이제 2억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하루에 50만 명에 달한다 등등. 그렇다고 모든 숫자가 다 알려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오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몇 명인지 잘 말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원체, 눈에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현대인은 매체가 우리에게 구성해서 보여준 것만을 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매체를 불신하지만, 그것은 다른 매체가 보여주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밖에 아예 다른 현실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간혹 매체는 현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현실을 지우기도 한다.

예컨대, 코로나19라는 재난의 현실은 무엇인가. 2021년 7월31일 0시 기준 확진자 1539명이라는 숫자, 아니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저녁에는 단둘만 만날 수 있다는 제한, 그도 아니면 2020년부터 지금까지 상실한 경제와 산업의 기회일까. 그것은 상실이고 손해이지만 재난은 아니리라. 재난은 각각 별도의 지역에 격리되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 부부의 눈에, 활동보조인이 자가격리 중이라 밖에 온 택배를 열 수도 없어서 밥을 굶고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중증장애인의 시간에, 근근이 운영하던 점포 임대료마저 마련하지 못해 모두 다 포기하고 나가야 하는 자영업자의 손에, 늘어난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해 쓰러져야만 했던 택배노동자의 심장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난’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 ‘현실’ 대신, 치솟는 확진자의 숫자에 재난이라는 명찰이 붙는다.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에게까지 벼린 칼날이 날아오지 않음에 안도하며, 현실을 잊고 비겁하게 사는 것은 아닌가. 이런 자기반성을 하고 있는 이유는 윤고은의 소설 ‘밤의 여행자들’을 읽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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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여행을 떠나 재난에 휩쓸리는 일에 대하여

재난 여행사(작품에서 재난 지역을 관광 상품으로 만든다는 재난 여행은 소설적 허구만은 아니고,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나 난징 대학살기념관 같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곳을 방문하는 다크 투어리즘을 과장한 것이다) ‘정글’의 상품 기획자 고요나는 십년 동안 지켜온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움을 깨닫는다. 경멸해 마지 않았던 김 팀장이 자신에게 치근대는 것을 보니, 회사가 자신에게 옐로카드를 내민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즉, 회사가 자신을 쓸모없는 인력으로 보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다.

반격을 위해 퇴사를 시전하는 고 사원, 하지만 김 팀장은 휴가로 회유한다. 이참에, 실적이 나쁜 여행지 중 하나를 골라서 다녀오고, 그 김에 해당 여행지를 접을지 말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떠밀리듯 고요나가 선택한 곳은, 몇십 년 전 인종 살해가 벌어지던 와중에 싱크홀이 발생한 베트남 남단의 섬 무이.

2014년 과테말라에 생긴 싱크홀. 하수관 관리 부실이 태풍으로 인한 홍수와 겹쳐 만든 재난이다. 출처: 엔피알
2014년 과테말라에 생긴 싱크홀. 하수관 관리 부실이 태풍으로 인한 홍수와 겹쳐 만든 재난이다. 출처: 엔피알

안 그래도 회사의 퇴출 대상 중 하나인 여행지이니 무슨 특별한 인상을 받겠는가. 돌아가서 이곳을 접어야 할 이유를 잔뜩 찾은 고요나이지만,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타기 위한 기차에서 옆 칸의 화장실에 갔다가 일행과 분리되어 버린다. 겨우 다시 무이 섬으로 돌아가는 요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저 지루하지만 한 여행지가 아니다. 요나는 여행지를 유지해 온 기만과 이미 여행 상품 유지에 어려움이 있음을 아는 지역 매니저와 배경의 모기업 폴을,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려고 하는 새로운 재난을 눈치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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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난을 만나는 법

소설은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이 온갖 회유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맞서는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주인공은 매니저와 기업의, ‘자본’의 음모에 참여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현실에서 끈 하나라도 잡기 위해서 타협하는 것이다. (물론 반전이 있지만, 작품을 통해 확인해주시길 부탁한다.)

작품 속에 ‘작가’가 등장해 소설과 작품 속 ‘기획’을 뒤섞는 것이나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일을 병치하여 혼란과 당혹감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소설적 장치는 독자를 매혹시킨다. 하지만, 여기에서 살피고자 하는 것은 작품이 그리고 있는 ‘재난’의 의미다.

작품에는 여러 재난이 나열된다.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가 전 세계 각지의 재난을 상품화하는 곳이기에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화산, 지진, 전쟁, 가뭄, 태풍, 쓰나미 등 재난의 종류는 정글의 분류 법칙에 의하면 크게 서른세 가지로 나뉘었고, 거기서 또 152개의 여행 상품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런 재난 지역이, 그 흔적이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재난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재확인한다. 저곳에는 위험이 있지만, 나는 안전하다. 그 거리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상품화의 힘이다.

윤고은의 2013년 소설 ‘밤의 여행자들’ 표지. 8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아니, 우리가 모두 재난을 만난 지금, 소설은 더 적실하게 다가온다.
윤고은의 2013년 소설 ‘밤의 여행자들’ 표지. 8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아니, 우리가 모두 재난을 만난 지금, 소설은 더 적실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무이의 재난은 싱크홀이 아니다. 씻을 수 없는 가난, 섬에서 쓸만한 부분이 이미 기업의 소유가 된 상황에서 무허가 수상 가옥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삶이 재난이다. “무이의 재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었다. 그것도 사진 따위로는 찍을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은 관광객의 눈에서 철저히 가려진다. 관광은 선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재난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재난을 목도했다며, 약간의 책임감과 슬픔과 함께 고양감을 느끼며 돌아간다. 나는 세상의 슬픔을 보았다, 나는 고통을 직면할 수 있는 교양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본 재난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 조작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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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정면으로 목도하는 법

코로나19의 현실을 소설 속 관광 상품처럼 누군가 날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는 각자가 볼 수 있는 것을 볼 뿐이고, 거기에는 어떤 잘못도 없다. 단,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쓰고 있는 안경이 이미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다면, 그래도 우리의 눈을 긍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2021년 7월 4차 대유행 전까지 ‘K-방역의 성공’에 취해 있었다. 효과적으로 확산을 막았다는 의미에선 성공이다. 하지만, 그 성공은 당연히 무언가를 대가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살려야 한다는 경제는 모두의 경제가 아닌 일부를 위한 경제였다. 마찬가지로, 지켜야 한다는 건강은 모두의 건강이 아닌 일부의 건강이었다. 그 뒤에 남겨진, 누구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은 고통은 ‘미증유의 재난’이라는 숫자와 마스크의 스펙터클에 지워지고 있다.

방역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묻고 고민해야 했다. 이 정책으로 피해를 받는 것은 누구인지를 우선 살펴야 했다. 이미 방역 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누군가에게 전가되었다면, 더구나 그 누군가가 그전에도 약자였다면 방역 정책이 성공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말로, 그 재난에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진짜 재난을 대신하는, 우리가 인식 가능한 ‘재난’이 상연되고 피해를 입지 않은 우리는 그 거리감을 통해 안도를 느낀다.

우린 코로나19 방역에 힘써야 하고,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모두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우리가 모두 나누어 져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약자가 더 큰 피해를 보는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우리가 쓰고 있는 자본이라는 안경의 가공할 마력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참, ‘밤의 여행자들’이 이번에 영국 추리소설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뛰어난 작품에 걸맞은 수상 소식에 자리를 빌려 축하를 보낸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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