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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논란의 ‘황금쌀’…20여년만에 밥상 오른다

등록 2021-08-24 10:07수정 2021-08-26 02:50

필리핀, 세계 첫 재배 승인…2023년 시판될듯
옥수수 유전자 넣어 개발…비타민A 보충해줘
일반쌀과 황금쌀. 국제쌀연구소 제공
일반쌀과 황금쌀. 국제쌀연구소 제공
세계 최대 주곡 작물인 쌀에서도 유전자변형작물(GMO) 시대가 열린다.

필리핀 농무부는 지난 7월 세계 최초의 유전자변형 쌀인 황금쌀(골든라이스)의 상업 재배를 승인했다. 1996년 미국에서 첫 유전자변형작물(GMO) 콩이 재배된 이후 지금까지 옥수수, 면화 등 10여개 작물에서 유전자변형 작물이 개발돼 재배되고 있지만 주곡 작물에서 지엠오가 정식 재배 승인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지엠오 쌀 시판에 대한 필리핀 내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황금쌀은 체내 흡수되면 비타민A를 만들도록 쌀 유전자를 변형한 것이다. 비타민A는 식물성 식품에 전구체인 카로티노이드 형태로 함유돼 있다. 과일, 채소 등에서 노란색, 붉은색 등을 내는 색소 물질이 카로티노이드다. 황금쌀은 500여종의 카로티노이드 중 옥수수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 유전자를 쌀 유전자에 넣었다. 이에 따라 쌀 색깔이 노랗다고 해서 황금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황금쌀 벼. 국제쌀연구소(IRRI) 제공
황금쌀 벼. 국제쌀연구소(IRR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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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A 부족한 전 세계 1억9천만 어린이들

비타민A 결핍은 실명을 유발하고 면역력을 약화시켜 홍역 등의 감염병에 의한 조기사망 위험을 높인다. 다양한 영양 식품을 섭취하는 한국 어린이들한테선 비타민A 결핍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지만, 세계보건기구 등에 따르면 남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 1억9천만명의 미취학 어린이들이 비타민A 결핍에 따른 건강 문제를 안고 있다. 매년 25만~50만명이 비타민A 결핍으로 시력을 잃고 그 중 절반이 12개월 안에 사망한다고 한다. 이번에 황금쌀 재배를 승인한 필리핀에선 생후 6개월~5세 미만 어린이들의 16~17%가 비타민A 부족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있다.

황금쌀 개발의 두 주역인 잉고 포트리쿠스(왼쪽)와 페터 바이어 교수. 2004년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황금쌀 시험재배장에서. 골든라이스 프로젝트(Golden Rice Humanitarian Board)
황금쌀 개발의 두 주역인 잉고 포트리쿠스(왼쪽)와 페터 바이어 교수. 2004년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황금쌀 시험재배장에서. 골든라이스 프로젝트(Golden Rice Humanitarian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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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과학자들, 공익 목적 위해 기술 기부

황금쌀은 사실 개발된 지 이미 20여년이 흘렀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페터 바이어(Peter Beyer) 교수와 스위스 연방공대 잉고 포트리쿠스(Ingo Potrykus) 교수가 개발의 주역이다. 이들은 다국적 농화학기업 신젠타와 손을 잡고, 옥수수에서 추출한 베타카로틴 유전자를 끼워넣은 황금쌀을 만들어 2000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후 이들은 이 기술을 사회에 기부해 다른 연구자들이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변종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황금쌀은 그러나 주곡 작물이라는 점 때문에 큰 기대와 함께 처음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필리핀에 있는 국제쌀연구소(IRRI)는 2001년 이들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필리핀쌀연구소(PhilRice)와 함께 지역 특성에 맞는 황금쌀을 개발해 왔다. 현재 재배 승인을 받은 황금쌀은 낟알이 길쭉한 인디카쌀품종 ‘IR64’을 기반으로 개발한 것이다. 황금쌀이 시험재배와 식품 안전성 승인을 거쳐 최종적으로 재배 승인을 받기까지 걸린 기간은 2년이다.

필리핀 농무부는 루손섬 2개 지역 등 영양실조 비율이 높은 7개 지역 주민들이 2023년엔 황금쌀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황금쌀밥 한 컵에는 미취학 어린이한테 필요한 비타민A의 30~50%를 채워줄 수 있는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다.

왼쪽부터 일반쌀(IR64 품종), 유전자변형한 황금쌀 탈곡벼, 도정한 황금쌀. 국제쌀연구소
왼쪽부터 일반쌀(IR64 품종), 유전자변형한 황금쌀 탈곡벼, 도정한 황금쌀. 국제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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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단체 등 강력 반대…실효성에 의문 제기도

그러나 필리핀에서는 농민단체와 지엠오(GMO) 반대단체들이 오래 전부터 지엠오 작물의 안전성, 대기업의 쌀 제국주의 등을 이유로 황금쌀 반대 운동을 펼쳐왔다. 일부 단체는 시험재배장에 들어가 훼손하기도 했다. 인터넷미디어 `푸드내비게이터 아시아'는 “이번 승인 이후 아직 대외적 실력 행사는 없지만 이 단체들이 조용히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고 보도했다. 필리핀의 전국농민조직인 KMP는 황금쌀이 허용될 경우 외국 대기업들의 쌀 시장 참여가 높아져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황금쌀 재배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워싱턴대 글렌 데이비스 스톤 교수(사회문화인류학)는 지난해 2월 학술지 <사회기술>(Technology in Society)에서 농민 인터뷰 결과 등을 토대로 정작 비타민A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농민들은 쌀을 경작할 땅이 없으며, 특별한 유인책이 제시되지 않는 한 농민들이 황금쌀로 품종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또 이미 기존 영양 프로그램을 통해 비타민A 결핍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황금쌀에 대한 선호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농업과학원이 개발한 황금쌀.
농업과학원이 개발한 황금쌀.
황금쌀 재배를 추진하는 나라로는 방글라데시도 있다. 2017년 식품 안전성 승인 신청 이후 4년째 검토가 진행중이다. 국제쌀연구소가 개발한 방글라데시의 황금쌀은 베타카로틴 유전자를 ‘BRRI dhan 29’라는 이름의 벼 품종 유전자에 심은 것이다. 전체 쌀 수확량의 14%를 차지하는 품종이다. 당시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위원회 소식통의 말을 빌어 심사위원들이 황금쌀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채소를 더 많이 섭취하면 굳이 황금쌀까지 먹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 미국과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당국도 잇따라 황금쌀의 식품 안전성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 나라들에선 아직 재배 승인 신청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한국에선 2008년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진이 고추 유전자를 이용한 황금쌀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실험식물학 저널> 표지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농촌진흥청은 국외시장 등을 겨냥해 2011년부터 유전자변형작물 상용화 작업을 시작했으나 반대 여론에 부닥쳐 2017년 사업단을 해체하기로 시민사회단체와 협약을 맺었다.

국제쌀연구소는 황금쌀 말고도 빈혈과 발육 부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철과 아연을 풍부하게 함유한 쌀(HIZR)을 개발하고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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