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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에 이끌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는다

등록 2021-09-28 09:59수정 2021-09-28 10:38

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3)
‘질병과 함께 춤을’로 보는 질환 서사
후고 짐베르크의 ‘죽음의 춤’(Dance of Death, 1899). 출처: 아서
후고 짐베르크의 ‘죽음의 춤’(Dance of Death, 1899). 출처: 아서

수전 손택은 잘 알려진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시작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이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나는 법.”[1] 건강과 질환을 연구하는 나에게는 무척 흥미롭게도, 손택은 질병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묘사해 보고 싶은 건, 질병의 왕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일일까 하는 게 아니다.”

왜 질병의 왕국을, 그 안에서의 삶을 묘사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손택의 에세이가 출판되던 1977년까지도 여전히 질병 경험 또는 질환의 개인적 기록은 서술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그것을 옮길 공동의 문장이 없다고 말해도 좋겠다.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의 글쓰기를 놓고 발견한 것과 같다. “여성이 종이에 펜을 대는 순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사실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공동의 문장이 없다는 사실일 겁니다.”[2]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투병기, 즉 환자가 질병을 앓는 과정에서 남긴 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으로 한정해서 보아도, 많은 작품이 질병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영국의 대시인 존 던은 질병을 다룬 여러 시를 남겼다. 동시대의 존 밀턴도 마찬가지다. 몰리에르, 에밀 졸라, 발자크, 톨스토이, 토마스 만 등 대문호로 불리는 작가들이 건강과 질병을 다루는 작품을 남겼다. 그렇다면 ‘질병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다루는 일을 손택이 선택하지 않은 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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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질환·장애에 관한 서사는 왜 없을까

하지만 그런 식의 해석은 틀렸다. ‘투병기를 제외한 질환 서사는 침묵 속에 남겨져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투병기란 다음과 같은 구조를 지닌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린다. 그는 개인적 노력을 포함하여 주변의 도움을 받아 병을 치료한다. 병이 나은 다음, 그는 질환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전달한다. 이런 투병기의 서사 구조는 우리가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4단 구성, 발단(질병 없던 삶), 전개(질병에 걸림), 절정(치료), 결말(회복과 그 이후의 삶)에 잘 들어맞기에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진다.

현대 의학의 발전은 많은 질병을 4단 구성의 범주 안에서 소화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그 범주 바깥에 놓여 있는 몸의 경험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만성 질환과 장애이다. 만성 질환이나 장애의 서사에는 투병기에 등장하는 절정과 결말이 없다. 질병으로 인한 기능 제한과 고통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그것은 파도치는 것과 같이 밀려들고 사그라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만성 질환과 장애를 서사로 구성하게 되면, 따라서 그 글은 독자에게 읽는 쾌감을 전달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감정적인 해소를 추구한다고들 하니까 말이다.

이것이 질환 서사가 다루어지지 않는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고통이 있으면 그것에서 해방되는 충족의 경험을 주어야 하는데, 만성 질환의 서사에는 그런 해방감이 등장하지 않는다. 기능 제한은 사라져서 극복의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장애의 서사에는 그런 감동이 등장하기 어렵다. 물론, 이런 충족이나 감동이 없지 않다. 오히려 장애 극복의 서사나 만성 질환 속에서도 자신이 경험하는 충족을 고백하는 글도 더러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경험은 투병기나, 충족과 감동의 질환 서사로 다 환원될 수 없음을. 우리 삶은 온전하지 않고 그 끝에는 언제나 승리가 놓여 있지 않다. (종교적 관점에선 다르겠지만, 일단 제외하자.) 삶은 수많은 실패의 경험이지만, 그 와중에 성공한 소수만이 기록으로 남는다. 그런 성공담의 선별은, 질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질병과 함께 춤을’ 표지. 출처: 예스24
‘질병과 함께 춤을’ 표지. 출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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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에서 연대까지…질환 서사의 네 단계

우리에게 다른 언어가 주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재미없는’ 경험이라도 들리고 들려져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에, 적어도 우리 사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여전히 성공과 성취를 전시하지만, 사이에 실패와 분열과 불안과 고통과 어려움을 전하는 책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제야, 우리에게도 질환 서사의 자리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다른몸들’이 기획하고 조한진희가 엮은 ‘질병과 함께 춤을’은 네 명의 질환 서사를 담은 책이다.[3] (책이 ‘질병 서사’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질병은 생물학적, 객관적 이상을, 질환은 주관적인 몸의 현상학적 문제 경험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는 나로서는 이를 구분해주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각자 난소종양, 조현병, 척수성근위축증, 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이들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으나, 이들은 질환 서사를 쓰는 모임인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함께 모여 자신의 질환을 나눈다.

임종 연구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 수용의 5단계를 정의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정(죽음 거부하기), 분노(죽음의 원인을 향해, 나에게 닥쳐온 것에 대해 화내기), 협상(죽음을 피하고자 신과, 세상과 거래하기), 우울(감정적 저하에 상응하는 고집), 수용(편안히 받아들임)이라는 이 5단계는 말기 환자를 설명하는 데 활용된다.

이런 단계를 ‘질병과 함께 춤을’의 네 사람에게, 더 넓게는 만성 질환이나 장애를 설명하는 데 적용할 수 있을까. 이전에 이런 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서사는 퀴블러로스의 5단계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책에 나오는 서사가 시간 순서로 배치된 것도 아니고, 인도자가 있는 모임에서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서술된 각자의 기록을 모은 것이니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질환 서사의 구조를 이들의 글을 통해 탐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질병과 함께 춤을’의 서사는 다음 네 단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인식, 불화, 투쟁, 연대. 첫 단계는 질병 인식이다. 네 사람은 모두 질병을 알게 된 순간을 고백한다. “산부인과로 옮겨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난소가 너무 커져서 꼬일 수 있으니 당장 수술하자는 말을 들었다.” “뒤늦게 나의 장애가 ‘질병’으로 인한 ‘장애’였음을 알게 되었다.” 질병에는 이름표가 붙고, 그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제공하지만 한편 나를 옭아매는 낙인이기도 하다. 이들은 질병의 이름과, 가정과, 사회와 불화한다. 이 불화는 곧 찾아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생하는 분노와 달리, 병 있는 몸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에 의해, 빨리 ‘환자 역할’을 마치고 ‘정상’으로 복귀하기를 바랄 뿐 병든 이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의해 나타난다. “멈추지 않는 애인의 폭력과 없어지지 않는 통증 가운데서 절망하던 나에게 고통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몸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병은 끝이 아니기에, 이들은 자신감, 자존감, 자긍심을 놓고 인정투쟁을 벌인다. “그러므로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질병을 앓더라도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누구나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노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투쟁을 위하여 이들은 ‘아픈 몸’과 함께 연대한다. “우리의 어느 한 부분이 세계로 열린 문 하나를 영원히 가지게 되었다고, 그래서 질문할 수 있는 힘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낮고 단단한 어깨를 나누어 가졌다고, 믿는다.”

도로시아 랭, 이주노동자 어머니(Migrant Mother, 1936). 랭의 사진은 고뇌하는 이의 모습을 강렬하게 담아내어 미국 대공황 시기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우리 모두가 고통 가운데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도로시아 랭, 이주노동자 어머니(Migrant Mother, 1936). 랭의 사진은 고뇌하는 이의 모습을 강렬하게 담아내어 미국 대공황 시기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우리 모두가 고통 가운데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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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라는 환상 벗어나기

이것이 질환 서사의 유일한 4단계는 아닐 테다. 그러나, 이 구조는 우리에게 투병기도, 죽음도 아닌 질병의 다른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우리가 질환을 이해할 때 부여했던 극복의 틀, 질병은 잠깐 빠진 샛길일 뿐이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정상성의 신화’를 벗어나 다른 눈으로 질병과 질환을, 더 나아가 건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무엇보다, 모든 삶에서 필연적인 아픔이 서로를 향한 연대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은 ‘정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강은 완벽한 상태를 누림도, 생물학적 평균 상태에 머무름도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여러 자원을 활용하여 마련하는 조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바탕이 되는 것이 건강이다. 따라서 건강과 질병은 반대말이 아닐 수 있다. 만성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이도 우리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될 텐데, 이를 위하여 우리는 ‘생물학적 정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질환 서사를 읽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참고문헌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버지니아 울프. 임영빈 옮김. 자기만의 방. 반니; 2020.

다리아, 모르, 박목우, 이혜정. 질병과 함께 춤을. 푸른숲;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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