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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한국어 뿌리는 유목민 아닌 랴오허강 농부 언어”

등록 2021-11-12 08:59수정 2022-01-06 22:10

언어학·고유전학·고고학 자료 3각검증 결과
9천년 전 중국 북동부 기장 재배지에서 발원
4천년 전 중앙아시아 유목민 기원설 뒤집어
한국어, 일본어, 몽골어 등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는 트랜스유라시아어의 발원지는 중국 북동부 랴오허강 유역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네이처 제공
한국어, 일본어, 몽골어 등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는 트랜스유라시아어의 발원지는 중국 북동부 랴오허강 유역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네이처 제공
한국어는 일본어, 퉁구스어, 몽골어, 투르크어와 함께 트랜스유라시아어에 속한다. 일명 ‘알타이어’로 불리는 이 어족은 서쪽 터키에서부터 몽골을 거쳐 동쪽 한국과 일본, 캄차카반도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에 분포돼 있다. 현재 트랜스유라시아어로 분류된 언어는 98개에 이른다.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가장 큰 특징은 ‘목적어 다음에 서술어가 온다’는 점이다. 또 영어에서 볼 수 있는 접속사와 관계대명사가 없고, 같은 종류의 모음끼리 이어지는 모음조화(‘조마조마’ 등), 수식어가 명사 앞에 오는 것도 이 어족의 대표적인 문법상의 특징이다.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은 워낙 광대한 지역의 인구와 언어 분산, 농업 전파 역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학계의 뜨거운 논쟁 거리 중 하나다. 그동안은 대체로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을 4천년 전 중앙아시아 대초원의 유목민에 두었다. 이들이 동-서로 이동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범위에 걸쳐 언어를 퍼뜨렸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중국 동북지역 평원을 가로지르는 랴오허강(요하)은 길이가 1400km에 이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중국 동북지역 평원을 가로지르는 랴오허강(요하)은 길이가 1400km에 이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연구소가 주도한 국제 공동연구진이 지금까지의 통설과는 전혀 다른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국을 포함한 11개국 35개 연구기관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역사 언어학과 고고학, 고유전학 3개 분야의 데이터를 토대로 교차 검증·분석한 결과,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뿌리는 초기 신석기 시대인 약 9천년 전 중국 랴오허강(요하) 일대에서 기장 농사를 짓던 경작인들의 언어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기장은 벼 농사 이전부터 재배해 오던 잡곡이다.

기장은 벼 농사 이전에 주식 역할을 하던 누런색의 잡곡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장은 벼 농사 이전에 주식 역할을 하던 누런색의 잡곡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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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0년 전 동쪽 이동하며 한국어 뿌리 형성

연구진은 이 지역 98개 언어의 3193개 농업, 식품 관련 어휘 세트로 언어 가계도를 만들고 255개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의 유사성, 다양한 유적지에서 수집한 269개 고대 작물의 연대 측정 자료, 아무르강과 한국, 일본에서 수집한 19명의 고대인 게놈과 기존에 발표된 트랜스유라시아어 지역 고대인 23명의 게놈, 현대인 2천여명의 게놈 분석 데이터 등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초기 신석기 시대인 9000년 전 중국 동북부 랴오허강 지역에서 기장을 재배하던 농부들이 이후 동쪽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트랜스유라시아어의 확장이 시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장 경작 초기인 9천년~7천년 전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인구의 분산을 유발했고, 이들 가운데 일부가 6500년 전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한국의 서해안 지역과 연해주에 당도하면서 한국어의 뿌리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벼 농사는 부가적인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구를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기장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만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적어 정착지를 확장시키는 패턴을 보인다.

연구진은 “욕지도의 고대 한국인 게놈을 새로이 분석한 결과, 그동안 일본에만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조상 조몬인이 이곳에서 살면서 현지인들과의 혼혈이 이뤄진 사실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후 3300년 전 랴오둥, 산둥 지역에 살던 이들이 한반도로 이주해 쌀과 보리, 밀을 경작 목록에 추가했고, 3천년 전 이 농작물들이 일본 규슈로 전파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몬 시대에서 야요이 시대로 넘어가면서 일본어로의 ‘언어 전이’(linguistic shift)가 이뤄졌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일본 미야코섬에서의 유적 발굴 작업.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일본 미야코섬에서의 유적 발굴 작업.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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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 유역과 다른 품종 재배…언어 분산 경로도 달라져

이번 연구를 주도한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마르티네 로비츠 박사는 또 “랴오허강 유역의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조상은 기장을, 황하강 유역의 중국-티베트어족 조상은 같은 시기에 조를 재배했다”며 “이것이 이후 서로 다른 언어 분산 경로를 밟아가는 토대가 됐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9천년 전 중국 동북부 랴오허강의 농경민에 기원을 둔 이번 ‘농경 가설’은 4천년 전 중앙아시아 대초원의 유목민에 기원을 둔 기존의 ‘목축 가설’과 시기나 지역, 생활 패턴 등 모든 면에서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더욱 상세히 뒷받침할 수 있는 후속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로비츠 박사는 “한국과 일본, 중국 같은 국가들은 단일 언어, 단일 문화, 단일 혈통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며 “민족주의 의제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언어와 문화의 뿌리가 국경 너머에 있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지만 모든 언어와 문화, 인간은 섞여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유라시아어족과 중국-티베트어족 조상의 재배종을 각각 ‘수수기장→기장’, ‘조기장→조’로 수정했습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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