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시상하부는 아몬드 크기만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로 재택 근무가 일상화하면서 가정에서 일어난 생활변화상 가운데 하나는 남자들이 가사나 육아일을 분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당사자들에겐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기도 하지만, 가정생활 전체로 보면 평소 부족했던 아빠와 자녀의 교류 기회를 그만큼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
영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부성애연구소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2045명의 영국 아빠들을 조사한 결과 많은 이가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데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또 이런 경험를 통해 부모로서 더 자신감을 갖게 됐고 자녀와 관계도 더 좋아졌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심리학자들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진이 자상한 아빠들의 뇌를 살펴본 결과, 그렇지 않은 아빠들보다 시상하부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 학술지 ‘사회신경과학’에 발표했다.
시상하부는 호르몬 생산이나 체온 유지, 식욕, 갈증 같은 다양한 생리적 과정과 감정에 관여하는 부위다. 모든 감각을 대뇌 피질로 전달할 때 중계 역할을 하는 신경세포 군집인 시상의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시상하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크기는 아몬드 정도로 작지만 뇌의 중심부 자리에서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신체 상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빠와 아이의 퍼즐 풀기 실험 장면. 처음엔 함께 풀고, 다음엔 따로따로 푸는 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아동 발달에 아빠가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66명의 아빠와 5~6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몇가지 조사를 했다.
연구진은 우선 이들에게 함께 또는 각각 퍼즐을 풀도록 하고, 그 시간 동안 기능적 근적외선 분광기(fNIRS)로 이들의 뇌를 스캐닝했다. 이 장치는 모자 형태의 광센서를 이용해 뇌의 활동을 기록한다. 연구진이 이 장치를 쓴 것은 퍼즐을 푸는 동안 아빠와 아이들의 뇌가 서로 동기화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동기화란 거의 동시에 같은 뇌 영역에서 활동이 감소하거나 활발해지는 걸 말한다.
연구진은 이어 자기공명영상(MRI)으로 50명의 아빠 뇌를 촬영했다. 연구진은 특히 시상하부의 모습을 살펴봤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아빠들에게 육아 관념과 관련한 두가지 설문지를 돌렸다. 첫번째 설문은 자신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얼마나 믿는지, 아이에게 얼마나 민감해야 한다고 믿는지, 또 아이의 발달에 얼마나 관여하는지 등 아빠의 역할을 묻는 것이었다. 두번째 설문은 아이들과 시간 보내는 걸 얼마나 즐기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자상한 아빠들의 뇌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언스플래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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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시상하부 클수록 아이와 보내는 시간 더 즐겨
분석 결과, 첫번째 설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아빠들의 뇌가 퍼즐을 푸는 동안 자녀의 뇌와 동기화하는 현상이 더 강했다. 또 뇌를 촬영한 아빠 50명의 영상을 분석한 결과 특히 시상하부의 크기가 아빠의 돌봄 신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번째 설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아빠일수록 시상하부가 더 컸다. 또 시상하부가 큰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잘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아빠의 뇌 시상하부 크기와 자녀 돌봄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다만 시상하부 크기가 좋은 아빠가 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노력이 시상하부를 키우는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연구진의 일원인 파스칼 부르티카 에섹스대 교수(심리학)는 “아빠가 육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가 육아 개입과 능력을 예측하는 강력한 지표라는 것은 이전 연구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 연구는 생물학적 차원에서 아빠의 육아 관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