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지와 엄지를 맞대고 빠른 속도로 튕겨주면 ‘딱’ 하는 소리가 난다. 두 손가락이 만든 마찰력이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저장했다 방출되면서, 중지가 엄지 뿌리 쪽을 때릴 때 나는 소리다.
인간이 언제부터 이같은 손가락 스냅(핑거 스냅) 방법을 터득해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원전 300년 고대 그리스 미술품에 손가락 스냅 동작이 표현돼 있는 것을 보면 역사적 뿌리가 아주 깊은 것으로 보인다.
손가락 스냅의 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예컨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누군가를 호출할 때 손가락 스냅으로 소리를 내기도 하고 음악이나 무용에서 리듬을 타는 방법으로 쓰거나 일종의 타악기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최면술에서도 시작과 끝을 알리는 수단으로 손가락 스냅을 쓴다.
손가락 스냅에 걸리는 시간은 7밀리초에 불과하다. 조지아공대 제공
눈 깜빡이는 것보다 20배 빨라
미 조지아공대 연구진이 손가락 스냅 동작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측정한 사람의 몸 동작 가운데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최근 영국 ‘왕립학회저널 인터페이스’(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초고속 카메라와 자동이미지처리 장치, 힘 센서를 이용해 손가락 스냅의 동작을 세밀하게 측정한 결과 손가락 스냅 동작에 걸리는 시간은 최대 7밀리초(1밀리초=0.001초)였다. 연구진은 “이는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시간(150밀리초)보다 20배나 빠른 속도”라고 밝혔다.
엄지 손가락에서 미끄러진 중지가 회전하는 속도(각속도)는 초당 최대 7800도였다. 연구진은 “프로야구 투수가 공을 던질 때와 비교하면 각속도는 투수의 최고 기록에 못미치지만, 시간에 따른 변화율을 뜻하는 각가속도(최대 160만deg/s²)는 투수보다 거의 3배나 빠르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사드 밤라 교수(화학 및 생체분자공학)는 보도자료에서 “측정치를 처음 확인하는 순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타노스가 핑거스냅을 하는 장면. 조지아공대 유튜브 갈무리
어벤저스의 ‘타노스 스냅’에서 얻은 아이디어
연구진이 손가락 스냅의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어벤저스-인피니티 워’(Avengers: Infinity War)였다.
이 영화에는 금속 장갑을 낀 악당 타노스가 손가락 스냅으로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동안 단세포에서 곤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의 속도를 연구해온 밤라 교수(화학 및 생체분자공학)는 영화를 본 후, 과연 금속 장갑을 낀 상태에서 손가락 스냅이 가능한지 학생들과 토론을 벌이다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손가락 스냅 동작 가속도는 투수가 공을 던질 때의 팔 동작보다 3배나 빠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에 따르면 손가락 스냅은 팔 근육을 모터로 삼고, 스프링 역할을 하는 손가락과 팔의 힘줄에 위치 에너지를 실었다가 빠른 속도로 방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엄지와 중지의 마찰은 처음 얼마의 시간 동안 중지를 엄지에 묶어놓는 걸쇠 역할을 한다. 그러다 점차 에너지가 축적되면 엄지와 중지가 걸쇠를 풀고 미끄러지며 스냅이 완성된다.
연구진은 스냅에 필요한 마찰력은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마찰력이 너무 작으면 힘줄에 충분한 에너지가 저장되지 못하고, 마찰력이 너무 크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운동 대신 열로 소실되고 만다.
기원전 300년 무렵의 고대 그리스 미술품에 묘사된 손가락 스냅 동작. 조지아공대 제공
기계 구동장치 효율화에 응용 기대
연구진은 어벤저스 영화의 금속 장갑 스냅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기름칠한 장갑, 금속, 고무 소재의 골무를 각각 끼우고 손가락 스냅 동작을 실험했다. 그 결과 세 가지 모두 손가락 스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름칠한 장갑은 미끄러워서 에너지를 저장할 만큼의 마찰 계수가 생기지 않았다. 고무 골무는 마찰 계수가 너무 커서 마찰 에너지가 열로 소실돼 버렸다. 최악은 금속 골무였다. 마찰 계수가 너무 적어 스냅을 할 만한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금속 골무는 피부처럼 탄력이 있는 소재도 아니어서 스냅에 필요한 접촉 면적도 아주 작았다.
결국 장갑을 낀 타노스의 손가락 스냅은 헐리우드의 특수 효과가 만들어낸 허구라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로봇을 포함해 다양한 기계장비에 쓰이는 구동장치의 효율을 높이는 데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