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참가자인 의사 ‘병기’는 지하에서 다른 참가자의 장기를 적출하는 일에 가담한다. 넷플릭스 제공
한때 ‘콘텐츠 공룡’이라 불리던 넷플릭스는 코로나19 이후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했으나 최근 위기에 빠지는 것 같았다. 다른 무엇보다 ‘볼 만한 게 없다’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 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직접 전 세계의 감독에게 제작비를 지원하여 만든 작품은 창작자에게 과도한 자유를 허용할 때 벌어지는 나쁜 결과가 무엇인지 보여준 사례로 여겨지곤 했다. 우리나라의 작품 〈오징어 게임〉이 2021년 하반기 전 세계를 휩쓸기 전까진 말이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들어간 모든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고, 심지어 넷플릭스 접속이 금지된 중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작품의 비교적 단순한 구조와 강렬한 이야기, 어린이들의 놀이를 데스 게임(주인공과 다른 인물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여하는 창작물) 장르에 활용한 장치, 미려한 무대와 복장 디자인까지, 〈오징어 게임〉은 코로나19로 날카로워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팬데믹이 보여준 목숨의 불평등함을 게임의 구조로 은유해서 보여주었기에, 적절한 시의성을 지녔던 것이 흥행의 이유 중 하나이리라.
작품을 칭찬하는 것은 다른 글이 많이 했을 테니 여기에선 이 정도 숟가락을 얹는 데서 멈추고,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오징어 게임〉의 얼개만 살짝 살펴보자. 작품에선 많은 빚을 진 사람들에게 누군가 접근하여, 1등을 하면 큰돈을 준다는 약속을 한다. 그들은 판돈으로 걸린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게임에 참여하기로 한다. 마취된 상태로 옮겨진 이들은 무인도의 거대한 시설 속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어린 시절에 하던 놀이를 한다. 단, 실패의 대가는 죽음이다.
나는 여기에서, 이전에 아마도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또는 다른 각도에서 살펴진) 장면 하나에 집중하려 한다. 게임 참가자 중에는 의사가 한 명 나온다. 그는 병원을 경영하다 의료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이후 큰 빚을 진 모양이다. 그리고 게임 참가자가 된 그는 주최 측의 요원들 일부와 내통하여 사망한 게임 참가자의 장기를 적출하여 밀매를 돕고, 대신 이들로부터 게임 정보를 얻어 유리한 상태에서 게임을 진행하려 한다.
이 장면을 보고 미국의 한 의사 유튜버가 설마 장기 밀매가 일어나느냐며 놀라워했음이 기사를 탄 적이 있다. 장기 밀매, 우리 주변에선 찾아볼 수 없더라도 어딘가에선 분명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2017년 자료에 의하면 해마다 약 1만2000건의 장기 밀매가 이루어지며 시장 규모는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1] 이런 일이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는지가 궁금하실 수도 있으나, 여기에선 장기 밀매의 현황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장기를 밀매하는가?
1954년 미국에서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신장이식이 성공하자, 의학의 접근방식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인간의 몸은 어떤 방식으로도 교환 불가능한 것이었으므로, 그야말로 존엄한 대상이었다(우리는 ‘존엄’이라는 말에서 어떤 품위나 위엄을 떠올리곤 하는데, 존엄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지위가 높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장기이식은 신체가 망가지면 교환하면 된다는 생각을 현실화했다.
하지만 장기를 이식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기증자가 사망하면(여기에서의 사망이란 심장사, 즉 심장이 멈춘 것을 사망의 표시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빠르게 장기 손상이 진행되므로, 기증자가 사망하기 전에 장기를 적출해서 환자에게 옮겨야 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꺼낼 수는 없다. 신장은 다행히 두 개라서 괜찮았지만, 심장이나 간은 하나밖에 없다. 각막은 두 개지만, 기증자가 살아 있는데 한쪽 눈을 실명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장기이식의 딜레마, 살아 있는 기증자로부터 장기를 적출할 수 없으나 장기이식이 성공하려면 기증자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문제는 새로운 죽음의 정의를 만들면서 해결되었다. 1968년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특별위원회가 ‘되돌릴 수 없는 혼수’(irreversible coma) 상태를 뇌사의 정의로 제시했고, 이후 이 규정을 여러 나라가 받아들이면서 장기이식은 점차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선 장기를 돈을 주고 사는 일은 금지되어야 한다. 인간을 매매 대상으로 보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장기 매매를 위해 산 사람을 죽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기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기증이다. 그러나, 장기기증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필요에 비해 상당히 적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자료[2]에 따르면, 장기기증을 선택한 뇌사자는 2016년 573명을 최고점으로 하여 다시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국립장기조직혈액원 통계[3] 2021년 1분기 장기이식대기자 4만2281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그 결과, 많은 환자가 장기이식을 기다리다가 사망한다.
2010~2019년 전체 장기이식건수와 이식대기자의 비교. 이식건수 증가 폭에 비해 이식대기자의 증가가 매우 빠르고, 그 차이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
장기기증 희망 의사를 밝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2020년에만 11만5507명이 기증희망 등록을 했고, 누적 희망 등록자는 210만3263명이다. 즉, 생전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이 수가 그대로 장기이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단 이들 중 실제로 장기이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더구나 장기이식이 실제로 이루어질 땐 환자가 뇌사 상태 등으로 자기 의사를 밝힐 수 없으므로, 장기이식을 결정하는 것은 가족이다. 이때, 전통적인 관념으로 인하여 가족은 장기이식을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어떻게든 붙들고 싶은 마음이 한 편에 있을 것이고, 떠나는 길에 몸이라도 온전히 해서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다른 한 구석에 있을 것이다. 결국 기증 희망 등록을 하더라도 실제 장기기증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외국은 장기기증자의 수를 늘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활용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는 운전면허를 발급할 때 장기이식 의사를 명확히 밝히도록 하고, 이것을 운전면허에 표시한다.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호주 등은 아예 명확히 장기이식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경우(‘옵트 아웃’ 제도) 암묵적으로 기증을 승인한 것으로 본다. 덕분에 스페인은 뇌사자 장기기증에서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 수를 순위로 비교할 일은 아닐 수 있으나, 이런 제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장기기증이 원활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자나 유명인이 자신의 재력이나 인적 연결망을 통해 장기이식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경로를 찾아내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장기기증을 받는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2009년 간이식을 받았다. 그는 원래 살던 지역이 아닌 테네시주에서 간이식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주보다 테네시주의 간이식 대기일이 짧았기 때문이다.[4] 2006년 미국 평균 간이식 대기일은 306일, 테네시주의 대기일은 48일이었다. 게다가, 잡스가 간이식을 받으러 테네시주에 간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테네시주 멤피스 장기이식센터의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명으로 대기자 등록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물의를 빚었다.
다른 하나는 장기 밀매 시장이다.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장기이므로, 그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게다가, 밀매 과정에는 더 끔직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을 다시 복기해보자. 진행요원들은 사상자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관에 표시를 해놓는다. 표시된 관은 소각로에서 장치를 통해 빼돌려진다. 이미 사망한 사람은 장기를 적출해도 별로 소용이 없기에,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중간에는 장기 적출 중에 정신을 차려 난동을 피우는 참가자도 있었다는 의사와 요원의 대화도 등장한다. 즉, 장기 밀매의 경우 뇌사자의 장기를 수집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밀매의 장기 수집은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장기 부족 상황에서 부자가 새치기를 하는 것도, 밀매 시장이 형성되어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를 빼내는 일도 모두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고 장기이식을 아예 중단할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장기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유전학의 발전으로 동물 장기를 이식에 활용할 방법이 점차 열리고 있으나 아직 많은 연구와 법적·윤리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즉, 기증 외에 다른 방법은 없기에, 우리에겐 기증희망자가 아닌 실제 기증자의 수를 늘릴 방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인식 개선과 사회적 합의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 비록 그것이 허구의 창작물이며 비유이지만, 끔찍한 〈오징어 게임〉 지하에서 벌어지던 더 끔찍한 일을, 번뜩이던 칼날로 타인의 몸을 빼앗는 일을 줄이기 위해 우린 노력해야 한다. 장기기증의 숭고한 뜻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어떤 제도를 정착시킬지에 관하여 우린 함께 대화해야만 한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참고 문헌
1. Global Financial Integrity. 2017. http://www.gfintegrity.org/wp-content/uploads/2017/03/Transnational_Crime-final.pdf
2. 이식현황. 한국장기조직기증원. https://www.koda1458.kr/info/transplant.do
3. 국립장기조직혈액원. https://www.konos.go.kr/konosis/index.jsp
4. ABC News. Steve Jobs Undergoes Liver Transplant. 200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