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1998년작 SF영화 <아마겟돈>은 시속 3만5천km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해오는 소행성을 핵폭탄으로 폭파해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다.
영화에서처럼 소행성을 폭파하는 대신, 소행성 궤도를 바꿔 지구의 안전을 지키는 3억3천만달러(3900억원)짜리 지구방어 실험이 시작됐다. 현재 지구에서 5억km 떨어져 있는 디디모스(Didymos, 쌍둥이란 뜻) 소행성의 작은 위성 디모르포스(Dimorphos, 두 가지 형태란 뜻)가 표적이다.
미 항공우주국(나사)은 23일 오후 10시22분(한국시각 24일 오후 3시22분) 캘리포니아 반덴버그우주군기지에서 우주선 다트(DART=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 쌍소행성 궤도수정 시험)를 스페이스엑스의 팰컨9 로켓에 실어 이 소행성을 향해 쏘아올렸다.
스페이스엑스의 팰컨9 로켓에 실려 이륙하는 다트 우주선. 웹방송 갈무리
지구와 거리 1100만km 지점서 위성과 충돌
무게 600kg의 우주선은 앞으로 시속 2만4000km의 속도로 우주를 날아 2022년 9월 지름 160m의 천체 디모르포스에 바짝 접근한다. 이때 지구와 디모르포스의 거리는 1100만km. 디모르포스는 덩치가 5배 더 큰 디디모스(지름 780미터)를 1km 떨어진 거리에서 시속 0.5km의 속도로 도는, 로마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크기의 위성이다.
나사의 계획은 9월26일~10월1일 사이에 다트 우주선을 초속 6.6km의 속도로 디모르포스에 충돌시켜 공전 속도를 1%, 공전 주기를 최소 73초 단축시키는 것이다. 나사는 충돌 충격으로 약 100톤의 암석 물질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디모르포스에 약 10미터 폭의 충돌구가 생기고, 공전 궤도가 모천체인 디디모스에 좀 더 가까운 쪽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나사가 이 작은 위성의 이름을 ‘디모르포스’로 지은 건 충돌 이후 다른 궤도가 생기는 걸 나타내기 위해서다.
다트 우주선과 충돌한 디모르포스는 디디모스에 좀 더 가까운 쪽으로 공전 궤도가 변경된다. 나사 제공
충돌 3분 후에는 이탈리아우주국이 제작한 초소형 인공위성이 충돌지역 사진 촬영을 위한 비행을 한다. 다트 우주선에 실려 보낸 이 인공위성의 이름은 리시아큐브(LICIACube)다. 리시아큐브는 충돌 열흘 전에 다트를 떠나 디모르포스에서 55km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해 촬영을 준비한다.
나사는 디디모스 쌍소행성 시스템을 유지하는 선에서 위성의 궤도를 변경하기 때문에, 이번 실험으로 인한 궤도 변경이 지구에 위협을 주지는 읂을 것이라고 밝혔다. 디모르포스의 궤도 변경 여부는 지상 망원경 관측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디모프로스가 디디모스 앞을 지날 때의 빛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해 분석하는 방법이다.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과 디모르포스 위성의 크기 비교. 유럽우주국 제공
지름 160미터 천체도 맨해튼 없앨 수 있어
나사는 1998년 지구 근접 소행성 탐색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현재 2만7천개 이상의 소행성을 발견했다. 2015년 이후엔 해마다 1500개 이상의 소행성을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
나사는 “잠재적인 위험을 안고 있는 1km 이상의 소행성 가운데 90% 이상을 확인했으며 이 가운데 앞으로 수세기 안에 지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보다 작은 소행성들의 잠재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많다. 지금까지 파악한 크기 140미터 이상인 소행성 중 다음 100년 안에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큰 것은 아직 없지만, 문제는 인류가 발견한 건 이들의 약 4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행성 충돌은 지구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 6600만년 전 공룡을 포함해 지구 생물체의 70% 이상을 멸종시킨 주범이 바로 소행성 충돌이었다. 당시 지구에 충돌한 소행성은 폭이 10㎞ 정도였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1908년에는 시베리아 퉁그스카에 크기 60m의 대형 운석이 떨어져 서울시 면적의 3배가 넘는 숲이 쑥대밭이 됐다.
다트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존스홉킨대 응용물리학연구소의 엘레나 애덤스(행성과학)는 “디모르포스처럼 160미터밖에 안되는 천체도 지구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맨해튼 같은 도시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트가 임무를 마치고 나면 2026년 유럽우주국의 헤라 우주선이 여러 대의 카메라를 탑재한 채 디모르포스로 날아가 충돌 지역을 더욱 상세하게 조사한다. 헤라는 2024년 지구를 출발할 예정이다.
디모르포스의 충돌구를 조사하는 헤라 우주선 상상도. 유럽우주국 제공
소행성 폭파·궤도 변경 선택의 기준은?
소행성의 충돌 위험을 제거하는 방법은 영화에서처럼 핵무기를 이용해 폭파시키는 것과 다트처럼 충돌시키거나 우주선의 중력을 이용해 궤도를 변경하는 것이 있다. 폭파는 소행성이 갑자기 나타나 다급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100m 길이 소행성에 핵폭탄을 터뜨리는 가상실험을 한 결과, 예상 충돌 시점 2개월 전에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50배인 1메가톤급 폭탄을 터뜨리면 지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을 국제학술지 ‘악타 아스트로노티카’ 11월호에 발표했다.
행성의 존재를 일찌감치 파악한 경우라면 궤도를 계산해 충돌 가능성이 높을 경우, 미리 궤도를 바꾸는 게 상책이다. 나사는 다트 충돌 실험의 효과가 확인될 경우 향후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데도 이 방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방법을 쓰려면 우주선 설계와 제작, 발사, 비행 기간을 고려해 5~10년 전부터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나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사는 2026년 지름 140미터 이상 지구근접 소행성의 90%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적외선 우주망원경 ‘니오 서베이어’(NEO Surveyor)를 발사할 계획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