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후 체중 증가는 장내미생물의 대사작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흡연은 매년 600만명의 사망을 유발할 정도로 건강을 해치는 습관이다. 새해를 맞을 때면 금연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 세계 흡연자 수는 아직도 10억명이 넘는다.
담배를 끊었다가도 니코틴 중독에 따른 금단 증세를 못 이겨 담배를 다시 잡는 사람들이 많다. 금연의 또다른 부작용은 체중 증가다. 담배를 끊은 뒤 체중이 불어난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에선 금연 후 6~12개월 사이에 체중이 평균 4.5㎏ 늘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식욕을 억제하는 뇌의 시상하부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니코틴 공급이 중단되면서 식욕 촉진 회로가 활성화했을 수 있다는 연구를 비롯해 다양한 가설들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못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과학연구소가 그 비밀의 한자락을 들춰본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을 통해 장내 미생물에 의한 대사산물 불균형이 체중 증가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우선 생쥐를 대상으로 담배 연기 노출 실험을 했다. 실험에서 담배 연기를 마신 생쥐들은 고지방 식품 섭취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늘어나지 않았다가 담배 연기 흡입이 중단되자 이후 체중이 늘어났다. 담배 연기의 영향은 니코틴 함량과는 관계가 없었다.
연구진은 이어 항생제로 생쥐들의 장내 미생물을 제거한 뒤 똑같은 실험을 했다. 그러자 이번엔 담배 연기 흡입이 중단된 후 체중 증가 폭이 미미했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의 역할을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담배 연기에 노출된 생쥐의 대변을 일반 생쥐의 대변에 이식했다. 그런 다음 여러 종류의 먹이를 주며 지켜본 결과, 대변을 이식받은 생쥐의 체중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일련의 실험들은 일관되게 장내 미생물이 흡연 관련 체중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보여줬다.
장내 대사과정에서 콜린이 베타인을 거쳐 디메틸글리신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장내 미생물의 어떤 대사산물이 담배 연기의 영향을 받아 체중 증가에 관여하는 걸까?
연구진은 분석 결과 2개의 장내 미생물 대사산물, 즉 디메틸글리신(DMG)과 아세틸글리신(ACG)의 수치가 체중 증가와 관련이 있음을 확인했다. 디메틸글리신은 식이 영양소 콜린의 대사과정에서 나오는 물질이다.
담배 연기에 노출되는 동안 디메틸글리신 수치는 높아지고 아세틸글리신 수치는 감소했다. 담배 연기 노출이 중단된 뒤 디메틸글리신을 억제하거나 아세틸글리신을 보충해주면 체중 증가가 멈췄다. 디메틸글리신을 보충한 쥐는 체중이 늘었고 아세틸글리신을 보충해준 쥐는 체중이 줄었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96명의 장내 미생물군집을 조사한 결과, 담배 연기에 노출된 생쥐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유형의 대사산물을 흡연자들한테서 발견했다. 연구진은 특히 흡연자들의 디메틸글리신 수치가 크게 늘어난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체중과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데 있어 장내 미생물군집과 인체가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준다”며 단순히 금연자의 체중 증가 문제를 넘어 일반적인 비만 치료법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