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왕 에디슨은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 낮잠을 즐겨 이용했다. 픽사베이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평생 1084개의 특허를 취득했다. 그는 밤에 잠자는 4~5시간을 빼고는 하루종일 연구개발에 매달린 일벌레였지만,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을 땐 종종 작업대에 눕거나 의자에 앉아 낮잠을 청했다. 휴식을 겸한 잠깐의 낮잠에서 영감의 끄나풀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는 잠에 깊이 빠져들면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억해내지 못할까봐, 낮잠을 잘 때 양쪽 손에 쇠구슬을 쥐고 잠을 청했다. 손에 힘이 풀려 쇠구슬이 떨어지면 그 소리에 놀라 잠을 깰 수 있었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머리속에 떠오른 것을 적을 수 있도록 항상 노트와 연필을 옆에 준비해 놓았다. 어떤 날은 하루 3번이나 낮잠을 잤다. 에디슨은 영감을 얻는 자신의 특별한 낮잠 기술을 다른 사람한테는 감추고 싶어했다고 한다.
자신이 발명한 축음기를 시연하고 있는 에디슨(1877). 브리태니커 백과
에디슨의 라이벌이었던 교류전기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시인이자 소설가 애드가 앨런 포우, 과학자 아이작 뉴턴,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도 반수면 상태를 즐겨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마법의 장인정신을 위한 50가지 비밀’이란 저서에서 자신의 낮잠 기술을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커다란 업적을 남긴 천재적 인물들이 색다른 버릇을 갖게 된 것은 선잠(Hypnagogia)이 들었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최면 상태에 해당하는 이 초기 수면단계가 지속되는 시간은 기껏해야 몇분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국립보건의료연구원 과학자들이 수면과 각성 상태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이 시간이 에디슨처럼 실제로 창의력을 높이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수면의 초기 단계가 창의력을 높인다는 연구들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얼마나 높이는지 직접 실험한 것은 처음이다.
오른손에 플라스틱컵을 들고 의자에 앉아 낮잠을 자고 있는 실험참가자.
연구진은 쉽게 잠에 빠져드는 103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에디슨과 똑같은 방식의 낮잠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우선 이들에게 실험 전날 밤 각성제를 피하고 평소보다 잠을 조금 덜 자도록 요청했다.
연구진은 이어 실험 당일 이들에게 8자리 수열의 마지막 숫자를 추측하는 수학 문제를 내주고,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두가지 규칙을 알려줬다. 그러나 문제를 훨씬 쉽게 풀 수 있는 결정적 규칙(마지막 8번째 숫자는 두번째 숫자와 같다)은 알려주지 않았다. 이 숨은 규칙을 스스로 알아내느냐 여부가 창의력을 측정하는 지표인 셈이다.
에디슨과 그의 절친 헨리 포드가 즐겨 찾았던 플로리다의 겨울 휴양주택에 세워진 에디슨 동상은 왼손에 쇠구슬을 쥐고 있다. https://twitter.com/brianroemmele/status/905995510921666561
첫 실험에서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두가지 규칙을 이용해 한 번에 30회씩 두 번에 걸쳐 수학 문제를 풀도록 했다. 이 단계에서 문제를 맞춘 사람은 16명(15%)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을 뺀 나머지 참가자들에게 20분의 휴식 시간을 주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뒤로 젖혀진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도록 했다.
참가자들의 오른손에는 플라스틱 컵을 쥐어주었다. 손에 힘이 풀려 잔이 떨어지면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도록 함으로써, 선잠 효과를 측정하기 위한 조처였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 직전에 떠올랐던 것을 곧바로 소리내서 말하도록 요청했다. 또 이들의 두피에 헬멧 형태의 뇌파도(EEG) 장치를 달아 수면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를 추적했다.
연구진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10분 뒤 참가자들에게 더 많은 수학 문제(한 번에 30회씩 9번)를 내줬다. 참가자들이 문제를 다 푸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64분이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숨겨진 규칙을 알아냈는지 물어봤다. 그 결과 선잠 상태에서 최소 15초를 보낸 사람들의 83%가 숨겨진 규칙을 알아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휴식 중에도 계속 깬 상태로 있던 사람들이 규칙을 알아낸 비율 30%보다 3배 가까이 우수한 성적이다. 잠이 들기 시작한 참가자들이 손에 든 컵을 떨어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1분이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델핀 오데트 연구원(수면과학)은 “두 그룹 간의 차이는 불과 1분이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고 말했다. 휴식시간 중에 깊은 잠에 빠져든 참가자들한테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오데트 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는 수면이 시작될 때가 창의력의 최적 지점이라는 걸 시사한다”며 “이는 너무 일찍 깨거나 너무 깊게 잠이 들면 사라져버릴 수 있는 작은 창”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선잠 상태에서 창의력을 높이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앞으로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MIT 연구원이 개발한 수면단계 추적 장치 ‘도미오’. 깊은 잠에 빠지지 않도록 센서가 자극을 준다. MIT 제공
그러나 실험 참가자들이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듯, 선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유레카(‘알아냈다’는 뜻) 순간을 경험한 건 아니었다. 참가자들이 숨은 규칙을 알아내기까지는 낮잠 후에 평균 94회의 문제 풀이 시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캐나다 몬트리올대 토레 닐슨 교수(수면과학)는 “그렇게 짧은 수면 시간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놀랍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으려면 더 긴 수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매사추세츠공대의 애덤 하르 호로위츠 박사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라며 “선잠은 아직 연구가 덜 된 새로운 종류의 의식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선잠에서 깊은 잠으로 빠져들 때, 자극을 줘 반수면 상태를 계속 유지시켜주는 센서 ‘도미오’(DORMIO)를 개발한 바 있다.
연구진은 문제 풀이와는 별도로, 실험참가자들에게 손에 쥔 물건이 떨어지기 직전에 머리에 떠오른 게 무엇인지 물었다. 어떤 이는 병원에서 말을 봤다고 했고, 어떤 이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같은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을, 또 어떤 이는 기하학적 모양을 봤다고 했다. 물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연구진은 사람들의 뇌리에 떠오른 것의 3분의 1이 이번 실험과 관련돼 있었으나, 이것과 문제를 푸는 능력 사이의 연관성은 찾지 못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