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예측한 단백질 접힘 구조의 사례. 사이언스 제공
단백질은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자 세포 차원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생명 활동에 관여하는 매개체다.
그러나 20가지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선형 사슬 수십~수천개가 복잡한 3차원 모양으로 접혀 있어 그 구조를 알기가 매우 어렵다. 크기가 작은 단백질이라도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힌 공로로 1972년 노벨상을 받은 미국 생화학자 크리스티안 안핀센(Christian Anfinsen)은 수상 연설에서 언젠가는 아미노산 순서만으로 모든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어린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이 인공지능(AI)의 힘을 빌어 정확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바짝 다가갔다.
국제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17일 단백질 접힘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올해 최고의 과학 성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구글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발표한 ‘알파폴드2’가 혁신의 주춧돌이 됐다. 알파폴드2는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에서 90%가 넘는 정확도를 기록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최고 70%대였던 예측률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이후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팀이 알파폴드2를 기반으로, 비슷한 성능의 단백질 구조 해독 프로그램 ‘로제타폴드(RoseTTAFold)’를 개발해 지난 7월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로제타폴드는 베이커 연구팀의 한국인 과학자 백민경 연구원이 단백질구조예측대회에서 알파폴드2를 접한 뒤 이를 기반으로 고안해낸 것이다. 알파폴드2보다 데이터를 덜 쓰고도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다.
딥마인드는 ‘사이언스’와 같은날 과학저널 ‘네이처’를 통해 알파폴드2의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고, 이어 일주일 후엔 알파폴드2가 35만개의 인체 단백질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알려진 인체 단백질의 44%에 해당한다.
두 연구팀은 특히 단백질 해독 프로그램의 소스코드와 데이터베이스를 대외에 무료로 공개했다. 이들은 앞으로 몇달 안에 단백질 구조 데이터베이스가 1억개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 단백질 종류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사이언스’는 다음 단계는 이러한 단백질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예측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딥마인드는 이미 10월 사전출판 논문을 통해 1단계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딥마인드는 논문에서 4433개의 단백질 복합체가 어떻게 서로 결합하는지를 밝혀냈다. 워싱턴대 연구진도 11월에 992개의 단백질 복합체 구조를 밝혀냈다.
다른 과학자들도 공개된 알파폴드2와 로제타폴드의 코드를 이용해 단백질 구조 해독 경주에 나섰다. 8월엔 중국 과학자들이 알파폴드2를 이용해 DNA에 결합하는 약 200개의 단백질 구조를, 11월엔 독일과 미국 과학자들이 알파폴드2와 극저온전자현미경을 사용해 30개의 단백질 복합체 구조를 밝혀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최근 단백질 구조 예측을 이용해 신약 후보를 설계하는 새로운 벤처사업을 시작했다. 베이커 교수팀도 로제타폴드로 새로운 항바이러스 물질과 효소를 겨냥한 단백질 설계에 나섰다.
단백질 접힘 구조가 눈처럼 쏟아지는 형상의 그림을 배경으로 한 ‘사이언스’ 표지.
홀든 소프(Holden Thorp) 사이언스 편집장은 사설을 통해 “인공지능 기반의 단백질 접힘 예측 모델은 50년 동안 묵혀 있던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고 유전자편집도구인 크리스퍼(CRISPR)나 원자 수준의 정밀 관찰을 가능하게 해준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M)처럼 과학적 발견의 속도를 크게 높여줄 게임체인저 기술”이라고 말했다.
단백질 접힘 예측 인공지능은 독자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편집진과 독자의 의견이 일치한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의 과학 성과’ 심사에서는 퇴적물 속에서 고대 인간의 DNA를 검출한 것, 생체 내 유전자 편집 실험이 마지막까지 1위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이밖에 코로나19 항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의 하나로 전자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뮤온’에 대한 새 측정법, 화성에서의 지진 활동 관측, 환각제를 이용한 외상후스트레스(PTSD) 치료, 감염병 치료를 위한 단일클론항체 개발, 핵융합에너지 기술 발전 등이 후보에 올랐다.
곽노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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