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입자 모형. 돌기처럼 솟아 있는 것이 스파이크단백질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2019년 시작된 바이러스의 시간이 끝나지 않는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균열의 틈새를 코로나19 변이들이 끝없이 파고들고 있으며, 이제 새롭게 등장한 오미크론이 우세종의 자리를 향해 맹렬히 전파되고 있다. 앞으로 이 칼럼에서는 코로나19가 세계화에 최적화한 바이러스인 이유를 하나씩 디코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먼저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대로 바이러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바이러스의 본질은 자기 복제 코드이다. 생물학적 바이러스와 컴퓨터 바이러스를 이런 측면에서 잘 관찰해보면 유사한 점 몇 가지가 눈에 뜨인다.
첫째, 컴퓨터 바이러스는 자기 복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진 프로그램 코드이다. 생물학적 바이러스 역시 유전자의 형태로 자기 복제에 필요한 모든 코드를 가지고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의 자기복제 코드는 0, 1의 이진수로 구성되며 메모리나 하드디스크 같은 물리적 공간에 저장된다.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코드는 A, T, C, G의 4진수로 구성이 되며 각 핵산의 중합체인 유전자에 저장이 되어 있다. 참고로 동일한 크기의 코드라면 4진수에 더 많은 정보가 담긴다. 일단 복잡한 내용은 제쳐두고 생물학적 바이러스는 자기 복제에 필요한 기능의 코드의 모음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충분하다.
둘째, 프로그램 코드만으로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컴퓨터에서 실행이 되어야만 바이러스의 자기 복제가 일어난다. 생물학적 바이러스 역시 그 유전자의 정보가 세포에서 실행이 되어야만 자기 복제가 일어난다. 이 비유는 ‘절대세포기생체’(absolute intracellular parasite)라는 바이러스의 기본 정의를 잘 설명해준다. 즉 생물학적으로 바이러스의 복제 코드를 수행하는 컴퓨터가 우리 몸의 세포이며, 세포 외부에서 바이러스는 무생물 입자에 불과하다. 실험실에서 인터넷의 유전 정보 은행에서 받은 코드 정보대로 유전자를 합성해서 세포에 주입하면 완전한 형태의 바이러스 입자가 튀어나온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유전 정보 자체이며 전파는 정보의 전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 바이러스의 복제 코드는 2진수(0,1),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복제 코드는 4진수(A, T, G, C)다.
셋째, 컴퓨터 바이러스는 코드가 제대로 인식되는 운영체제를 가진 컴퓨터에서만 복제된다. 윈도우 컴퓨터에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맥 컴퓨터를 감염시키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바이러스도 그 유전정보가 제대로 해석되는 환경을 가진 세포에서만 제대로 복제가 된다. 이런 바이러스와 궁합이 맞는 특정한 세포를 ‘숙주 세포’라고 한다.
바이러스 유전자에 코딩된 정보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기 위한 중합효소 단백질 정보, 전달을 위한 입자 껍데기를 구성하는 단백질 정보, 그리고 세포의 정상 기능을 방해하는 해킹 정보다. 이 정보 코드들이 수행되기 시작하면 숙주 세포는 자신의 원래 기능을 상실하고 바이러스 입자의 생산 공장으로 변하게 된다.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숙주 세포의 것을 이용한다. 감염된 숙주 세포는 바이러스 입자를 생산하다 망가져서 죽게 된다.
넷째, 복제가 된 컴퓨터 바이러스가 다른 컴퓨터를 감염시키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코드가 전달되어야 한다. 네트워크나 저장매체를 통해 다른 컴퓨터와 접촉하지 않은 컴퓨터는 절대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바이러스도 물리적으로 자기 복제 코드를 다른 세포에 전달하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이러스 입자이며, 유전자 조각을 단백질 껍데기가 포장하고 있는 형태이다.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USB 메모리처럼 바이러스 입자는 자기복제 코드를 유전자에 담고 있다.
그리고 단백질 껍데기는 유전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포장 박스의 역할도 하지만, 거기엔 숙주 세포의 주소도 새겨져 있다. 이렇게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 세포 속에서만 생명 활동을 하고 세포의 외부에서는 입자 속의 무생물 상태로 존재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다섯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바이러스 코드를 자기 컴퓨터에서 실행시키는 것은 사용자 자신이다. 생물학적 바이러스 역시 사람의 행동에 의해 감염된다. 숙주 세포에서 배출된 코로나19 입자는 주변의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거나 말하고 기침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비말에 섞여 외부로 배출되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
비말에 섞여 호흡기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문 앞에 놓인 택배와 같다. 택배를 집안으로 들여다 놓는 것이 사람인 것처럼, 바이러스 입자를 안으로 들여오는 것은 세포 자신이다. 세포도 먹고 살기 위해 주변 환경과 계속 물질 교환을 하는데 이 경로를 몰래 이용해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것이다. 일단 세포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껍데기는 해체되고, 바이러스 유전자의 자기 복제 코드가 해석되기 시작한다. 실행되는 유전자의 코드가 자기 것인지 바이러스 것인지 세포는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증식과 전파의 사이클을 거치면서 바이러스 생산 공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감염이 진행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입자는 전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을 만큼 매우 작아서, 지구상에 퍼져 있는 걸 모두 합쳐도 한 줌에 불과하다. 픽사베이
미디어에서 많이 본 돌기가 나 있는 원형의 코로나19 모습은 사실 생명 현상이 없는 입자, 즉 죽어 있는 상태의 모습이다. 세포의 내부에선 증식이라는 생명 현상을 보일 때는 구체적인 형태가 없다. 과학이 바이러스를 늦게 발견한 이유는 입자가 너무 작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거대한 세균은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 가능하지만, 나노 단위의 바이러스 입자는 더 높은 해상도를 가진 전자현미경이 개발되고 나서야 관찰이 가능했다. 그 입자가 얼마나 작은지 대략 감을 잡아보면, 사람 세포가 잠실야구장의 크기라면 코로나19는 야구공 정도이다. 또한 지금 지구상에 퍼져 있는 코로나19 입자를 모두 모아서 뭉치면 한 줌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기 때문에 감염자가 내뿜는 미세한 침방울 속에 엄청난 수의 입자가 들어갈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컴퓨터 바이러스의 예는 이해를 위한 상징일 뿐이다. 이것을 보고 컴퓨터가 코로나19에 걸린다는 엉뚱한 상상은 하지 않기 바란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디지털로 기록되는 정보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복제가 되어도 원래 정보는 변하지 않는다. 해커가 만든 최초의 바이러스 코드가 수천수만 번 복제가 되어도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유전자라는 생체 고분자에 기록이 되는 생물학적 바이러스 정보는 복제될 때마다 오류가 발생한다. 우리가 지금 코로나19라고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는 바이러스들은 사실 모두 조금씩 다른 유전 코드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 복제의 오류를 돌연변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같은 고등동물에서는 암과 같은 나쁜 결과로 연결이 된다. 하지만 바이러스에서는 오히려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전이다. 고등 생물에서 유전적 다양성 확보는 유성 생식이라는 정교한 기전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바이러스에서는 돌연변이가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자기 유전자를 스스로 복제하는 바이러스 중합 단백질의 빈번한 오류는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을 한다. 이 유전적인 다양성에 백신이나 거리두기 같은 방역이라는 선택압력이 가해지면 델타나 오미크론 같은 변이가 출현하게 된다.
코로나19 유전자가 품고 있는 코드는 자기 복제에만 특화된 이기적 유전자의 정수이다. 단순하고 짧은 유전자가 품은 코드는 빠르게 그리고 가끔 오류를 일으키며 다양하게 복제된다. 이런 단순한 전략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코로나19의 유전자가 수십억 년 동안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도태되지 않고 생명의 진화를 끈질기게 따라온 것이 증명하고 있다.
*다음에는 코로나19의 변이가 선택 압력을 뚫고 등장해 우려 변이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에 대해 궁금하거나 더 상세한 근거는 <바이러스의 시간>(2021, 뿌리와 이파리)을 참조하거나
overthesilos@gmail.com으로 문의 바랍니다.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