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의학원 연구팀이 동물실험을 통해 미세플라스틱이 자폐 장애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연구진이 미세플라스틱이 자폐 장애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어미쥐한테서 태어난 새끼쥐도 장애를 보였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17일 “방사선의학연구소 김진수 선임연구원 연구팀이 실험쥐 연구를 통해 미세플라스틱 섭취가 자폐스펙트럼 장애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보통 자폐증이라 일컫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영유아에게서 발병하는 난치성 신경발달장애로 사회관계 형성이나 정서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거나 반복적으로 집착한다든지 제한된 관심만을 보이는 등 이상행동을 하는 질환으로, 아직 확실한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다.
연구팀은 태아기, 수유기, 청소년기, 장년기 등 모든 연령대의 실험쥐한테, 병 뚜껑이나 비닐, 지퍼백 등에 쓰이는 폴리에틸렌 미세플라스틱을 2∼12주 동안 먹인 뒤 10여가지의 다양한 실험을 했다.
우선 사회성을 알 수 있는 3챔버 테스트로 행동실험을 했다. 3챔버 테스트는 서로 연결된 3개의 방 중 하나에 실험쥐를 넣고, 다른 2개의 방에 각각 낯선 쥐와 친한 쥐를 넣은 뒤 실험쥐가 어느 쪽으로 이동해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거나 관심을 보이는지 수치화해 사회성 지수를 확인하는 실험이다. 연구 결과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 모든 연령대의 실험쥐에서 사회성이 감소하고 강박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이 증가했다. 또 사회성 지수는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지 않는 쥐에 비해 50% 가까이 낮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특히 임신한 쥐한테 2주일 동안 미세플라스틱을 먹인 뒤 출산한 새끼쥐한테도 생후 4주 뒤 자폐 장애 증상이 나타났다”며 유전적 연관성도 입증됐다고 밝혔다.
폴리에틸렌 미세플라스틱 섭취 실험 과정(왼쪽)과 실험쥐 뇌조직에서 전자현미경으로 관찰된 모습(오른쪽). 한국원자력의학원 제공
미세플라스틱의 침투는 뇌 조직 분석에서도 확인됐다. 청소년기 쥐의 뇌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니 뇌에 미세플라스틱 파편이 침착돼 있었다. 또 자기공명분광법(MRS)으로 뇌의 해마체와 전두엽 피질을 조사하니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 뒤에는 학습과 관련한 주요 대사물질의 교란이 나타났다. 특히 뇌 유전자 분석에서는 자폐 장애 환자와 동일한 유전자가 확인되기도 했다.
더욱이 장내 세균 생태계인 장내미세균총(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해보니 청소년기 쥐에서 자폐 장애 환자와 동일한 박테리아 변화도 관찰됐다.
연구를 주도한 김진수 선임연구원은 “플라스틱 폐기물이 먹이사슬을 거쳐 식탁에 다시 오르는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자폐 장애뿐 아니라 다른 난치성 질환과 미세플라스틱의 관련성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미세플라스틱의 체내 흡수 경로를 처음 규명하기도 했다. 연구팀 논문은 환경분야 국제학술지 <인바이런먼트 인터네셔널> 2월호 온라인판에 실렸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