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0만년 전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에 의한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 상상도. 하늘에서 충돌 낙진이 쏟아지는 가운데 미국 노스다코타의 태니스 강 하류에서 발생한 세이시(큰 진동)가 모든 것들을 상류로 쓸어올릴 때 공룡이 달아나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공룡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제공
중생대 백악기와 신생대 고제3기 사이에 발생한 대멸종은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떨어진 칙술루브 소행성 충돌에서 촉발됐다. 공룡과 익룡, 암모나이트, 루디스트 조개, 대다수의 해양파충류를 포함한 생물종 76%가 절멸했다. 대충돌과 그 여파가 일어난 시기는 주로 천년 단위의 시간대로 연구돼 통상 6600만년 전으로 특정되고 있다. 하지만 소행성이 일년중 어느 계절에 지구와 충돌했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덴마크 암스테르담자유대 등 유럽 공동연구팀은 23일(현지시각) “중생대 말엽에 죽은 물고기 화석을 연구해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을 일으킨 소행성 충돌이 북반구의 봄철에 발생했음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연구팀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이날치에 실렸다.
태니스 지역에서 발굴된 주걱철갑상어 뼈 화석. ‘네이처’ 제공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은 생물다양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만 왜 어떤 종은 멸종하고 어떤 종은 살아 남았는지 곧 대멸종의 분류학적 선택성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모든 공룡과 익룡은 절멸한 반면 악어와 조류는 신생대 고제3기까지 살아남았다. 낙진과 대형 산불, 쓰나미 등의 영향은 칙술루브 충돌구에서 3500㎞ 너머까지 미쳤다. 직접적인 영향으로 광대한 지역이 초토화됐지만 전 지구 대멸종은 모름지기 그 여파 기간에 전개됐을 것이다. 여파에는 수천년 동안 지속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급격한 기후변화가 포함된다.
연구팀은 “하지만 충돌에 따른 변화가 어떤 계절에 시작됐는지가 백악기-고제3기 대멸종의 분류학적 선택성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적절한 기록이 없어 밝혀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미국 노스다코타의 태니스 퇴적층에 주목했다. 이곳은 백악기 생물군의 풍부한 유해군집(타나토코에노시스·멸종생물집합체)이 남아 있는 ‘세이시’(호소·만 따위에서 바람·지진·기압 변화 등으로 갑자기 일어나는 수면의 진동) 퇴적층이다. 소행성이 충돌한 10분 뒤 세이시가 태니스강 하구에서 엄청난 양의 물과 흙을 뒤흔들었다. 하늘에서는 충돌 낙진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세이시가 상류 쪽으로 밀려올라오면서 뼈와 이빨, 조개류, 암모나이트, 저생성 유공충과 식물들을 이동시켰다. 유해군집 퇴적층 안에서 철갑상어와 주걱철갑상어들은 세이시 유동 방향 쪽으로 아가미 속에 수많은 충돌 낙진을 머금은 채 산 채로 묻혔다.
태니스 퇴적층에서 주걱철갑상어 화석을 발굴하고 있는 연구원. ‘네이처’ 제공
연구팀은 2017년 태니스 퇴적층에서 발굴한 주걱철갑상어 3마리의 치골과 철갑상어 3마리의 가슴지느러미 척추를 수집해 조사했다. 연구팀은 “이 뼈들에는 배아 발달에서부터 사망할 때까지 변하지 않는 성장 기록이 새겨져 있어 물고기들의 생애 주기를 재구성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잘 보존된 뻐 화석 안에서 뚜렷한 3차원 성장 패턴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계절 변화의 기록이 남아 있다.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과 함께 결합해 연구팀은 물고기들이 북반구 봄철에 죽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행성이 충돌한 계절은 북반구에서 생물학적 생애 주기 가운데 매우 민감한 단계 곧 연간 생산성이 가장 높고 성장하는 시기인 봄이었다. 익룡과 대부분의 공룡을 포함한 비조류 파충류처럼 부양기간이 더 긴 생물들은 새 등 다른 생물군에 비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더 취약했다.
북반구와 달리 가을에 타격을 받은 남반구 생태계는 조건이 달랐다. 고생대 페름기-중생대 트라이아스 대멸종 때도 키노돈트는 지하 대피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칙술루브 대충돌 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겨울을 맞아 이미 굴 속에 숨어 있던 동면 포유류는 남반구를 휩쓴 대형 산불을 비슷한 방법으로 피할 수 있었다. 특정 양서류, 새, 악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포유류가 오늘날에도 반복하고 있는 겨울잠이나 여름잠 같은 계절적 휴면 상태를 통해 지하에서 생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로 가을에 타격을 받은 남반구 생태계가 북반구의 생태계보다 2배 빠른 속도로 회복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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