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에서 백신은 자동차 사고에서 안전벨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언스플래시
이전 두 칼럼에서는 오미크론으로 백신 집단면역이 무너진 이유, 그럼에도 백신이 위중증을 막는 이유, 그리고 RNA 백신이 효과적인 만큼 부작용도 강한 이유를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자연면역과 백신면역의 비교를 통해 기본접종이 장기적으로 유효한 이유, 노년층에 추가접종이 권장되는 이유, 어린이 접종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를 확인해 볼 것이다.
비가 오면 사고율이 치솟는 위험한 도로가 있다고 하자. 사고 분석 결과 안전벨트를 한 경우 4%, 하지 않은 경우는 40%가 사망하였다.
첫 번째 상황 : 친구가 그 도로에서 사고가 났는데 안전벨트를 안했는데도 멀쩡했다. 그리고 오히려 안전벨트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럼 비 오는 날 그 도로를 지나갈 때 안전벨트는 하지 말아야 할까? 특별한 사례를 전체로 해석하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할 위험이 커진다.
두 번째 상황 :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을 비교해보니 안전벨트를 한 경우와 안한 경우가 반반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것은 안전벨트 효과가 없다는 증거일까? 도로 이용자 중 안전벨트를 한 사람이 10배 많으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안전벨트 한 100명의 4%는 4명, 안전벨트 안한 10명의 40%는 4명).
세 번째 상황 : 사고를 줄일 가능성이 있어 경찰이 안전벨트 착용을 단속하였다. 하지만 사고 발생과 안전벨트 착용은 상관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더 이상 단속이 없다면 안전벨트는 할 필요가 없을까? 사고 위험과 사망 위험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대답은 쉽다.
이 세 가지 비유에서 안전벨트는 백신이다. 첫 번째 경우에서 비가 와 사고율이 치솟는 것은 오미크론 확진이 폭증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경우에서 대부분이 안전벨트를 했다는 것은 백신 접종 완료 비율이 86%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경우에서 경찰의 단속은 백신패스, 사고는 오미크론 감염을 의미한다. 기본 예방 접종은 코로나 감염이라는 사고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는 안전벨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안전벨트의 보증기간은 최소 십년 이상이다.
그림1. 코로나19 감염의 진행단계와 자연 면역과 백신 면역의 반응.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위 안전벨트 비유처럼 확률을 고려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앞으로 전개될 설명에서는 명료함을 위해 확률을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 면역 반응, 백신의 작용과 부작용 등 모든 현상은 확률이 지배한다. 간단히 말해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를 기억해 두자.
이제 코로나의 감염 진행 경과를 먼저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자연면역과 백신면역의 차이를 알아보자(그림 1). 바이러스 감염은 확진인가 아닌가의 이분법적 현상이 아니라, 면역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진행되는 역동적 현상이다. 가장 위에는 감염이 진행되면서 감염된 세포 수가 늘어나는 그래프가 있다. 체내에서 증식된 바이러스의 수는 감염된 세포 수와 비례하며 이것을 진행의 기준으로 삼는다. 처음 감염 세포 한두 개에서 시작되어 미미하게 증가하다, 일정 시점 이후 감염 세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행 위치(1)는 감염이 진행되는 해부학적인 위치 변화를 보여준다. 감염 세포의 수는 점막에서는 별로 증가하지 않다가 허파에 도달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호흡기의 해부학적 구조 때문이다. 숨 쉬는 공기는 좁은 기관지를 통과하다 허파꽈리에 도달하면 30평에 달하는 면적에서 모세혈관과 접촉한다. 이는 기관지의 좁은 통로를 따라 진행하던 바이러스 감염이 허파에 도달하면 폭발적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감염 증상(2)은 진행에 따른 증상 변화를 보여준다. 점막에서는 무증상으로 시작해 감기 정도로 그치지만, 허파부터는 위중증이 발생하고 사망까지 이른다. 허파의 침범 여부가 위험의 기준이다. 방어 기전(3)은 진행 경과에 따른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의 개입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에는 선천면역이 방어하다 점차 적응면역이 방어의 주력이 된다. 선천면역은 국소 방어를 전제로 작동한다. 만약 전신에서 작동하면 사이토카인 폭풍 같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과격한 선천면역의 브레이크가 적응면역이다. 따라서 면역학적으로 국소와 전신을 나누는 기준도 역시 허파다. 선천면역이 허파 이전까지 감염 진행을 막는 동안 적응면역이 개입해야 안전하게 바이러스가 제거된다. 아니면 위중증으로 진행하게 된다.
코로나19는 PCR을 이용한 대규모 추적 검사가 이루어지는 최초의 팬데믹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참고로 이 그림에는 코로나19가 팬데믹을 일으킨 결정적 원인도 포함되어 있다. 감염이 시작되어도 선천면역이 시작되지 않는 무증상 시기다. 우리가 느끼는 증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선천면역이 유도하는 염증이 원인이다. 그런데 선천면역은 감염된 세포에서 바이러스 유전자가 작동을 시작해야 위험 신호를 인식할 수 있다. 선천면역의 발동이 늦어지면 감염과 증상이 일치하지 않는 무증상 전파자가 된다. 특히 코로나19 감염은 진행이 되어도 증상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지만 기원한 박쥐 집단이 다르다. 그리고 기원 집단에서 따라 감염 특성이 다르다. 코로나19는 선천면역의 발동을 늦추면서 빠르게 증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사람으로 건너왔다. 이 때문에 사스나 메르스가 병원 위주 전파로 그친 것에 비해, 코로나19는 일상에서의 무증상 전파가 빈번한 것이다.
이 무증상 감염과 관련해 돌파감염에 대한 오해를 풀고 넘어가자. 돌파감염은 백신접종을 해도 확진이 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사실 이것은 별 의미가 없는 용어다. 바이러스 입자가 호흡기로 들어와도 세포 감염에 실패하면 점막에 파묻혀 사라진다. 절대 세포기생체인 바이러스 특성 상 일단 감염이 일어나야 면역이 반응한다. 그리고 면역을 이용하는 백신은 감염 자체가 아니라 감염의 진행을 예방한다. 안전벨트가 사고를 막을 수는 없지만 사고가 나면 운전자를 보호해주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과거에는 기술적 한계로 감염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야 진단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에 코로나19 진단 표준이 된 PCR의 경우 이론적으로 바이러스 유전자가 하나만 있어도 검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전 같으면 확인이 불가능했던 극초기 단계의 감염도 확진된다. 바이러스 진단에 PCR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십여 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코로나19는 PCR을 이용한 대규모 추적이 이루어지는 최초의 팬데믹이다. 이런 이유로 결과 해석에서 혼란이 가끔 발생하는데 그 중 하나가 돌파감염이다.
하지만 아무리 코로나19라도 선천면역 몰래 무한정 증식할 수는 없다. 감염된 세포가 죽기 시작하면 선천면역이 결국은 알아차린다. 그러면 적응면역 세포들도 신호를 받아 대응 준비를 시작한다. 선천면역만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경우 감염 결과는 선천면역 발동부터 적응면역 준비까지 걸리는 시간이 결정한다. 점막 즉 인체의 외부에서 진행되는 감염 초기에는 선천면역이 방어의 주력이다. 선천면역은 부작용을 감수하고 과격한 염증을 일으켜 감염 진행을 억제한다. 적응면역 준비가 빠를수록 바이러스 제거는 쉬워지고 염증 부작용의 위험은 줄어든다. 만약 준비가 늦어져 허파까지 감염이 진행되면 증상의 차원이 달라진다. 허파에 생기는 염증, 즉 폐렴은 임상적으로 응급상황이다. 얇은 격벽으로 구성된 허파꽈리를 모세혈관이 둘러싸고 있어 면역의 입장에서는 전신 감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폐렴으로 삼출액이 증가하면 허파꽈리 모세혈관에 산소 공급이 불가능해진다. 침대에 누워 물에 빠져죽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 자연면역과 백신면역을 비교해 보자. 이전에 항원을 접했던 경험이 있는 적응면역은 재감염이 일어나면 빠르게 개입해 선천면역의 작용 시간을 최대한 짧게 해준다. 그런데 적응면역은 많은 생체자원을 소비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처럼 적응면역도 감염으로 겪었던 위험만큼 얻어진다. 가벼운 감염으로 끝나면 점막면역은 자극받아 얻어지지만 체내면역은 얻어지지 않는다. 감염이 점막의 범위를 넘어서 위중증까지 발생한 경우에는 체내면역도 얻어진다. 그림의 자연감염(A)처럼 코로나 감염의 대부분은 점막에서 끝난다. 따라서 점막에 특화된 면역만 준비된다. 이 상황에서 다시 재감염이 일어나면 코로나가 제대로 검출되기도 전에 상황이 끝난다. 이것이 호흡기 바이러스의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원동력이 된다. 문제는 이 준비된 점막면역이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육주사를 통한 백신면역은 점막면역을 자극하지 못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근육주사를 통한 백신면역(B)은 점막면역을 제대로 자극하지 못한다. 대신 자연감염으로는 위험 상황까지 가야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체내면역을 비교적 안전하게 얻게 해준다. 하지만 체내면역을 바로 자극하기 때문에 몸살 같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백신의 효과는 접종 후 시간 경과에 따라 단기와 장기 효과로 나눌 수 있다. 단기 효과는 백신에 의한 적응면역의 활성화가 유지되는 동안의 효과이다. 이는 체내 항체가로 측정이 가능하며 약 3~6개월 유지된다. 이 시기에 코로나19 감염이 일어나면 이미 활성화 되어 있는 적응면역이 즉각 대응한다. 이 활성화 기간에 감염이 일어나면 위험 상황까지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비록 백신에 의해 점막면역이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RNA백신의 경우 점막 바로 아래 조직에서도 항체 농도가 높게 유지되기에 바이러스 증식이 확산되는 것도 억제한다. 그만큼 감염성 비말의 생성 확률도 낮아진다. 즉 집단면역 효과도 어느 정도 유지된다. 장기 효과는 적응면역의 활성화가 끝난 뒤 기억세포가 생존해 있는 동안의 효과이다. 면역의 기억세포는 항체를 만드는 세포와 세포매개면역 세포들의 일부가 죽지 않고 동면상태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골수나 비장에 자리 잡은 이들은 십년 이상, 오래는 수십 년간 잠들어 있다. 만약 감염으로 체내에 항원이 다시 노출되면 기억세포가 깨어난다. 처음 접한 항원에 대해 적응면역이 준비되는데 2주 정도가 걸린다면 기억세포가 깨어나서 준비되는 것에는 이틀 정도면 충분하다. 특히 세포매개면역 기억세포는 항체의 기억세포와 달리 코로나의 다양한 변이에 감염된 세포를 폭넓게 인식해 제거한다. 모든 백신이 세포매개면역 기억을 유도하지는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주로 접종된 재조합바이러스 백신과 RNA 백신은 모두 장기적인 세포매개면역 기억세포를 유도한다.
이렇게 백신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정상적인 면역체계다.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정상 면역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기저질환으로 면역체계가 교란되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면역 체계도 성장하고 노화하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두뇌와 마찬가지로 면역도 태어났을 때는 백지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크면서 접하는 다양한 병원체에 자극을 받으며 면역 체계가 성장하며, 대략 청소년기에 완성된다. 이후 면역은 병원체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다가 60세부터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60세 이상부터 코로나19의 위증중 비율과 치사율이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고령층에 대한 백신 접종 원칙은 달라진다. 일단 감염 시 적응면역 준비가 느리기 때문에 백신을 통해 미리 적응 면역을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즉 예방 접종은 필수다. 또한 백신을 통한 기억세포의 저장도 잘되지 않고, 감염 시 기억세포의 활성화도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백신의 장기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고령층의 보호를 위해서는 백신의 단기효과가 더욱 중요해지며 이를 위해 3, 4차 추가접종이 권장된다.
가장 어렵고 예민한 경우는 면역 체계가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어린이에 대한 백신 접종이다. 소아과 교과서 처음에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미성숙한 면역체계에서 백신이 성인과 동일하게 작동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린이에게 안전벨트를 해줄 때는 보조의자를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백신도 용량을 조절하는 등 적절한 변경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기적 부작용에 대한 부모들의 걱정을 무시하기도 힘들다. 강제하기도 내버려두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바이러스 감염의 후유증과 백신 부작용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부모의 몫으로 남겨진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현명한 결정을 위해서는 떠도는 괴담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이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백신 부작용의 대부분은 몸살 증상이다. 픽사베이
개인의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 부작용의 정의를 확인해보자.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부작용(side effect)이라는 용어는 주작용(main effect)의 상대 개념이다. 이는 긍정 혹은 부정의 의미를 담은 분류가 아니라, 약물의 목적에 따른 분류이다. 예를 들어 새로 개발된 혈압 약을 먹고 털이 나면 이것은 부작용이다. 우연히 발견된 이런 부작용을 주작용으로 사용하면 탈모치료제가 된다. 물론 탈모 치료제를 먹었는데 혈압이 떨어지면 이번에는 그것이 부작용이다. 현대 의학의 모든 치료는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지며, 백신의 주작용은 개인의 감염 진행 방지다. 이것은 현재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접종한 백신의 목표이며 오미크론 변이에도 여전히 유효한 주작용이다.
백신 접종 후 보고되는 부작용의 대부분은 인체 내부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킴으로써 발생하는 몸살 증상이다. 면역을 얻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반응이 어떤 사람에서는 심하게 어떤 사람에서는 경미하게 나타난다. 예측 가능한 범위의 이런 부작용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걱정해야 할 것은 이상반응(adverse effect)이다. 이는 부작용 중에서도 특히 예측하지 못한 부정적인 효과를 의미한다. 물론 워낙 대규모로 백신접종이 진행되었기에 이상반응들이 보고되고 있지만, 이는 부작용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다. 이같은 이상반응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백신으로 인한 피해와 바이러스 감염 후유증의 위험들을 바르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 번의 칼럼에 걸쳐 백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았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면역도 얻고 부작용도 없는 완벽한 백신은 없다. 면역이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백신 부작용이 관심을 끌면서 차라리 자연 감염을 통한 면역이 더 좋다는 주장도 가끔 나온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친구가 아니다. 문명사회에서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은 이해된다. 그러나 그것은 짝사랑일 뿐 자연은 비인격적이고 냉혹하다. 생태계에서 인간은 미생물 숙주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인류는 과학의 힘으로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려는 미생물의 공격을 극복해왔다. 세균에 대해서는 페니실린을 시작으로 발견된 항생제들이 큰 활약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우리 자신의 세포를 숙주로 삼아 증식하기에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 개발이 어렵다. 따라서 현재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수단은 백신이 유일하다.
오랫동안 인류는 역병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바이러스에 시달려 왔다. 백신 이전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천연두, 홍역, 볼거리, 풍진, 소아마비, 수두, 뇌염 등등 온갖 바이러스 감염으로 희생되었다. 살아남아도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경우가 흔했다. 당시 어린이가 유난히 많이 희생된 것은 혹독한 감염을 통해서만 바이러스들에 대한 면역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방 접종이 없었기에 출생 이후 감염된 모든 바이러스는 신종 바이러스였던 셈이다. 어린이들은 자연감염을 통해 면역을 획득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아이만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연면역을 얻기 위해 아이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것을 그냥 지켜봐야 했던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1796년 제너의 종두법을 시작으로 걷히기 시작했다. 백신(vaccine)의 어원은 소(vacca)를 뜻하는 라틴어다. 제너가 천연두 예방 접종에 우두에 감염된 소의 고름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전 칼럼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이 최초의 백신은 ‘약독화 생백신’으로 분류되며, 이후 다양한 백신이 개발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백신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바이러스 위험이 줄어들수록 예방접종의 가치는 계속 희석되어 왔다. 성공적일수록 가치를 알기 어려운 것이 예방의 딜레마이다.
예방은 동네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고 없는 일상이 계속되면 ‘하는 일이 뭐냐’고 한다. 사고가 나도 ‘하는 일이 뭐냐’고 한다. 이렇게 일어나지 않은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인색하다. 백신의 부작용은 발생이 확인되기에 직관적이다. 하지만 백신의 예방 효과는 뛰어날수록 확인이 어렵다. 즉 예방접종의 부작용과 효과에는 직관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백신 부작용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만큼 예방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말도 된다. 물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일이 터져야만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예측을 중시하는 과학에서 이것은 치명적 실패다. 과학이 만든 백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직관의 비대칭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칼럼을 마지막으로 백신에 대한 내용은 일단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최근 극성을 부리는 오미크론의 특성과 감염되었을 때 적절한 대응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내용에 대해 궁금하거나 더 상세한 근거를 원하면 바이러스의 시간(2021, 뿌리와이파리)을 참조하거나
overthesilos@gmail.com으로 문의 바랍니다.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