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비런스가 녹음한 5시간 분량 분석 음량 낮고 8미터 거리선 거의 안들려 음속도 느려 초속 240m…지구의 70% 고음이 저음보다 초속 10m 빨리 전달
화성 로봇 탐사차 퍼시비런스 상단 슈퍼캠에 부착된 마이크(화살표). 프랑스 툴루즈대 연구진이 개발한 이 마이크의 길이는 3.4cm, 무게는 13g이다. 툴루즈대 제공
얼마전 타계한 방송인 허참이 25년간 진행했던 예능 TV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에는 ‘고요 속의 외침’이란 인기 코너가 있었다. 헤드폰을 낀 채 상대방의 입 모양만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맞히는 게임이었다. 상대방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출연자들이 실제와 다른 엉뚱한 답변을 하게 함으로써 큰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데 지구와 대기 환경이 전혀 다른 화성에선 헤드폰을 끼지 않고도 이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리는 음파가 통과하는 물질의 밀도에 따라 이동 속도가 달라진다. 소리를 전달해주는 매질의 밀도가 높을수록 속도가 빠르다. 물질의 특성과 온도도 소리 이동 속도를 결정하는 변수 가운데 하나다. 온도가 올라가면 물질의 밀도가 작아져 음속이 증가한다.
섭씨 20도에서 지구의 공기 중 음속은 초속 343m다. 대기보다 물질의 밀도가 높은 물에서는 소리가 초속 1480m로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한다. 강철에서는 초속 5000m가 넘는다.
화성은 지구보다 대기 밀도와 온도가 낮다. 공기 입자도 대부분 이산화탄소다. 이렇게 낯선 환경의 화성에서는 소리가 어떻게 전달될까?
프랑스 툴루즈대가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진이 화성 로봇 탐사차 퍼시비런스가 보내온 5시간 분량의 소리를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퍼시비런스에는 두 대의 마이크가 있다. 하나는 탐사차 상단의 슈퍼캠 카메라에, 다른 하나는 탐사차 측면에 있다. 이번 연구는 주로 지상에서 2.1미터 높이에 있는 슈퍼캠 마이크로 녹음한 소리를 분석한 것이다.
화성에서 탐사 활동 중인 퍼시비런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화성 음파에서 찾아낸 세 가지 특징
분석에 따르면 화성의 소리 이동에는 지구와 다른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우선 화성에서는 소리가 지구에서보다 훨씬 느리게 이동한다. 초속 240미터로 지구 음속의 70% 수준이다. 매질인 공기가 희박하고 온도가 낮기 때문이다. 화성의 대기 밀도는 지구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표면의 평균 온도는 지구(15도)보다 80도 가까이 낮은 영하 63도다.
더 흥미로운 것은 고음이 저음보다 더 빨리 이동한다는 점이다.
가청 대역폭(20~2만kHz)의 중간쯤을 경계로 음속이 달라진다. 초당 240Hz 이상의 고주파 이동 속도는 그 아래의 저주파보다 초당 평균 10m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 2500회 회전하는 헬리콥터 인지뉴이티의 날개에서 나는 ‘붕’ 소리는 84Hz의 저음, 슈퍼캠의 레이저가 암석에 부딪힐 때 나는 ‘딱, 딱’ 소리는 2000Hz의 고음이다. 따라서 화성에선 레이저 소리가 헬리콥터 소리보다 빠르게 전달된다.
화성에서 오디오기기를 몇미터 앞에 놓고 음악을 들으면 낮은 소리보다 높은 소리가 먼저 들리는 기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이는 다른 행성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밝혔다. 이는 화성 대기의 96%를 차지하는 이산화탄소의 특성과 지구의 170분의 1에 불과한 매우 낮은 기압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세번째 특성은 소리의 이동 거리가 짧다는 점이다.
지구에서 소리의 이동 거리는 대략 65m다. 화성에서는 8m가 넘어서면 거의 들리지 않는다. 특히 고음은 이 지점부터 뚝 끊어져 버린다. 높은 음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특성 때문이다. 이를 ‘감쇠’ 현상이라고 한다. 예컨대 화성에선 비상시에 호루라기를 불어도 별 소용이 없는 셈이다.
연구진은 화성에선 불과 5m만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고 밝혔다. 가상의 상황이긴 하지만 입 모양만 보고 알아맞히는 ‘고요 속의 외침’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화성의 하루는 대부분 고요한 가운데 지나간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마이크 고장?…착각을 부른 ‘화성의 고요’
연구진이 가장 놀란 것도 화성의 소리가 아니라 고요함이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툴루즈대 실베스트르 모리스 교수(천체물리학)는 “어느 때는 너무나 조용해서 마이크가 고장난 줄 알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고요함은 화성의 공기가 희박하고 기압이 낮은 데서 오는 특징이다. 화성에선 같은 소리라도 지구보다 20dB(데시벨) 더 약하게 들린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그러나 계절에 따라 기압에는 약간의 변화가 온다. 논문 공동저자인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의 밥티스트 차이드 박사는 “가을이 오면 화성은 더 시끄러워질 수 있다”며 “화성은 지금 기압이 높아지는 계절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은 지난 2월24일 추분점을 지났다.
물론 미래에 화성으로 갈 우주비행사들은 통신장비를 갖춘 가압 우주복을 착용할 것이다. 따라서 화성에서의 소리 이동 특성이 우주비행사들의 대화를 방해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소설·영화(SF)의 좋은 소재가 될 수는 있다. 화성에서 발견한 독특한 소리 특성은 에스에프 작가들에게 어떤 상상력을 지펴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