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의 컴퓨터 단층 촬영(CT) 사진. 케임브리지대 제공
아이가 제 나이에 맞게 자라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연령별 또는 성별로 만들어놓은 표준 몸무게, 키 등의 수치를 참고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1970년대 말부터 정기적으로 정부 주관 아래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를 통해 표준치를 조정하고 있다. 이는 건강한 성장과 노화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과학자 200여명이 뇌의 성장 표준으로 잠재적 활용 가치가 있는 뇌 측정 자료를 작성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전 세계에서 촬영한 뇌 영상을 모아, 사람의 일생에 걸친 뇌의 외형적 변화 추이 그래프를 완성한 것. 100개 이상의 연구에서 이뤄진 10만1457명의 MRI(자기공명영상) 사진 12만3894점을 모아 분석한 결과다.
수집된 영상은 임신 115일 태아에서 생후 100세에 이르기까지 뇌의 세가지 영역, 즉 회백질(신경세포 부위), 백질(뉴런 연결 부위), 뇌척수액이 있는 뇌실(배관 시스템)의 전 생애에 걸친 변화를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뇌는 생후 약 4개월부터 3살까지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 기간에 뇌는 최대 크기 대비 10%에서 80%로 증가했다. 뇌의 표면적은 11살 무렵에, 대뇌 용적은 12.5살에 정점을 찍었다.
반면 뇌의 가장 바깥쪽 부분인 피질의 두께는 1.7살에 가장 두꺼웠다. 피질이 얇아지는 것은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뇌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따라서 생애 초기의 뇌 발달이 노년기의 뇌 질환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뇌의 구성 영역 중 회백질은 임신 중기부터 커지기 시작해 6살이 되기 전(5.9살)에 최고조에 이른 뒤 이후 서서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 소규모 연구에서 추정한 정점 시기보다 2~3년 늦은 것이다.
백질의 부피도 임신 중기부터 유아기까지 급속히 커진 뒤 이후 증가 속도가 둔화되며 29세 직전(28.7세)에 정점을 찍었다. 연구진은 백질의 감소는 50살 이후 가속화한다고 밝혔다.
또 신체 기능과 기본 행동 패턴을 관장하는 피질하부 회백질은 백질과 회백질 정점 시기의 중간쯤인 14.4살에 정점에 이르렀다.
반면 외부의 충격을 완화해주는 완충작용과 뇌 형상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뇌실의 뇌척수액의 생애 곡선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생후 2살까지 증가한 뒤 30살까지는 정체를 보이다 다시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해 60대에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연구를 이끈 케임브리지대 리처드 베들레헴 교수(정신의학)는 “전 생애에 걸친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뇌가 생애 초기에 빠르게 성장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긴 기간 동안 느리게 감소하는 것을 측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아론 알렉산더-블로흐 교수(신경과학)는 “뇌가 일생에 걸쳐 많은 변화를 겪는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키, 체중처럼 뇌 발달에 대한 표준화된 성장 차트는 없었다”며 이번 연구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연구는 MRI 촬영은 약 1시간이나 소요되는 데다 비용도 많이 들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협력이 일궈낸 성과로 평가받을 만하다. 연구진은 이번 데이터는 뇌 조직의 퇴화 및 인지 저하를 유발하는 알츠하이머 등의 뇌질환을 연구하는 데 참조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뇌 측정 자료 수집 지역. 미국과 유럽군에 치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레인차트
데이터 자체에서도 예상과 다른 사실들이 일부 드러났다. 남녀 간 증세가 다른 자폐증의 경우 뇌 조직에서는 남녀간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증세가 비슷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뇌 조직의 남녀 차이가 컸다. 남성의 경우 회백질 백질 뇌척수액이 평균 이하였다. 반면 여성의 경우엔 평균보다 더 큰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번에 구축한 데이터베이스가 포괄적인 것은 아니며 첫번째 초안일 뿐이기 때문에 임상 연구에 이용하려면 향후 더 세밀한 연구와 추가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 쓰인 뇌 영상 자료는 주로 유럽과 북미 지역 사람들의 것이었다. 연구진은 앞으로 다른 지역의 데이터를 추가해 자료의 편향성을 보완할 계획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