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엄마’라는 단어를 습득하는 아주 초기부터 지시어도 함께 습득한다. 픽사베이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과 소통하는 첫 수단은 울음이다. 이어 옹알이를 하다가 생후 12개월 무렵부터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아기가 처음 배우는 말은 대개 아주 간단한 명사다. 특히 자신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살펴주는 사람에 대한 호칭, 즉 ‘엄마’를 가장 먼저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별다른 의미 없이 ‘맘마’ ‘다다’ 등 단어 비슷한 발성을 내다가 12개월을 전후로 언어로서의 의미를 담은 소통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8개월 무렵이면 10~20개 단어를 사용할 줄 알고, 이후 습득 속도가 빨라져 두돌부터는 50~250개 단어를, 30개월 이후엔 400개 이상의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엄마’ 다음으로 배우는 말은 뭘까?
미국 코넬대 연구진이 남미 아마존 원주민 부족의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아기가 두번째로 배우는 말은 ‘이것, 저것’ 같은 지시어였다고 국제학술지 ‘아동언어저널’(Journal of Child Languag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아기들이 지시어를 일찍 배우는 것은 지시어가 보호자의 관심을 유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시어가 아기들이 최초로 배우는 단어군에 속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연구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지만, 이번 연구는 언어 구조와 사회 환경이 전혀 다른 집단에서도 똑같은 언어 학습 유형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아말리아 스킬턴 박사(언어학)는 보도자료를 통해 “아기들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끄는 지시어를 습득하는 시기는 전형적인 첫 학습 단어로 꼽히는 ‘엄마’만큼이나 아주 이르다”고 말했다.
스킬턴에 따르면 지시어는 아기의 언어 발달사에서 주연 배우 역할을 한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관해 다른 사람과 ‘관심을 공유’(joint attention)하는 주요한 도구라는 것이다. 아기들은 이 도구를 매개로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행동을 조절하고 서로 협력한다. 스킬턴은 “관심공유는 나머지 말들과 사회적 소통을 위한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영어에는 지시어가 이것(this), 저것(that) 단 두 종류다. 한국어에는 ‘이, 그, 저’ 세 종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언어에서는 지시어가 10여종이 넘는다.
연구진이 이번에 분석한 티쿠나 부족이 쓰는 언어의 지시어는 6가지다. 티쿠나 부족은 페루, 콜롬비아, 브라질에 걸쳐 있는 아마존강 유역에 거주하는 인구 6만9천명의 원주민 집단이다.
이번 연구는 그 중 5천명의 원주민이 거주하는 페루 쿠실로코차 지역에서 1년여에 걸쳐 진행됐다. 연구진은 생후 1~4살의 아기 45명이 집에서 보호자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촬영한 총 15시간 분량의 비디오를 분석했다.
그 결과 만 1살짜리 아기 14명 가운데 12명이 ‘이것/저것’ 또는 ‘여기/저기’에 해당하는 말을 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어떤 언어권에서든 아기가 생후 12~18개월 무렵에는 이런 지시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아기가 맨처음 습득하는 지시어의 유형은 자기중심적 지시어(나와 가까운 이것/저것)다. 쌍방향 지시어(상대방과 가까운 이것/저것)는 이보다 2년 정도 늦게 습득한다. 또 아기들이 사용하는 말 중에서 자기중심적 지시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른보다 훨씬 높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는 언어 학습이 아닌 인지 발달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3살 미만 어린이가 쌍방소통형 단어를 잘못 쓰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