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의 속도가 노화 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웰컴생어연구소 트위터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복잡계 과학 연구자인 제프리 웨스트는 몇년 전 저서 <스케일>을 통해 식물과 동물,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세계를 관통하는 삶과 죽음의 법칙을 논증해 화제를 모았다.
예컨대 그 중엔 동물 종간의 평균 수명은 다르더라도 평생 심장박동 수는 15억번으로 거의 동일하다는 ‘심장박동 총량의 법칙’이 있다. 심장이 1분에 1500번씩 뛰는 땃쥐의 수명은 2년, 심장이 1분에 약 30번 뛰는 코끼리는 수명이 75년이다. 물론 종간에 약간의 편차는 있다. 또 현대 인간의 심작박동 수는 이 법칙을 벗어나 25억번에 이른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게 해준 과학과 의료 기술의 덕분일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호흡 횟수에 관한 규칙도 등장한다. 포유류 동물의 평생 호흡 횟수는 약 1경(10의16제곱)번으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정해진 평생 호흡 횟수에 따라 수명이 긴 동물은 호흡 속도가 느리고, 수명이 짧은 동물은 빠르다고 한다.
복잡다양한 생물 세계에서 종의 경계를 넘어 생명체의 생장성쇠 과정을 관통하는 특징이 관찰된다는 건 보편적인 어떤 법칙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웨스트는 이를 에너지 대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불변의 총량을 규정하는 일련의 규칙을 끄집어내는 시도를 했다. 그가 찾아낸 것은 ‘4분의 1 지수 스케일링 법칙’이었다. 어떤 동물의 몸집이 다른 동물의 2배라면, 필요로 하는 에너지양은 2배가 아니라 75%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영국의 게놈연구기관인 웰컴생어연구소(Wellcome Sanger Institute)가 생명체의 노화 과정에서 웨스트의 스케일링 법칙에 견줄 만한 특징을 찾아낸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 연구소는 포유류를 대상으로 살펴봤더니 종의 수명에 상관없이 일생 동안 발생하는 게놈 돌연변이 수는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죽을 때까지의 변이 수가 일정하다는 건 변이 속도와 종의 수명이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걸 뜻한다. 이번 연구는 수명이 70년이 넘는 인간과 쥐, 기린을 포함한 16종의 포유동물 게놈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진은 “종의 수명이 길수록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은 체세포 돌연변이가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오랜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변이란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세포 속의 DNA 염기서열에 일부 변동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세포에선 일생에 걸쳐 변이가 일어난다. 대부분의 변이는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지만 일부는 암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람의 경우엔 연간 약 20~50개의 변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세포의 돌연변이가 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이 나온 것은 1950년대부터다. 그러나 그동안 돌연변이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가 기술 발전으로 최근 이것이 가능해졌다.
강아지의 DNA는 주인의 유전자보다 5배 더 빠르게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픽사베이
연구진은 이 기술을 이용해 인간을 포함해 수명과 몸집이 다양한 포유동물 16종의 돌연변이 속도를 측정했다. 분석 대상이 된 동물은 흑백콜로부스원숭이, 고양이, 소, 개, 흰담비, 기린, 돌고래, 말, 사자, 생쥐, 벌거숭이두더지쥐, 토끼, 쥐, 반지꼬리여우원숭이, 호랑이다.
연구진은 16종의 48개체로부터 채취한 208개의 결장 세포(흰족제비는 소장 세포) 표본에서 장 줄기세포의 변이 속도를 전장게놈 해독 기술을 이용해 측정했다.
그 결과 체세포 돌연변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축적되며 모든 종에 걸쳐 비슷한 메카니즘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종의 수명이 길수록 세포 돌연변이 속도가 느렸다. 수명이 4년이 안되는 생쥐의 경우, 한 해 동안 일어나는 돌연변이 수는 평균 796개였다. 수명이 14년인 개는 연간 249개, 수명이 20년 미만인 사자는 연간 160개, 수명 26년인 기린은 99개였다. 평균 수명이 70년이 넘는 인간은 연간 47개였다. 연구진의 일원인 알렉스 케이건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체세포 돌연변이 속도가 수명과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종의 수명은 서로 크게 차이 나더라도 수명이 끝날 때쯤의 전체 돌연변이 수는 비교적 비슷했다. 예컨대 체질량은 약 2만3천배 차이 나지만 수명은 각각 24년, 25년으로 비슷한 기린과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연간 체세포 돌연변이 수가 각각 99개, 93개로 거의 같았다. 케이건 박사는 <비비시> 인터뷰에서 “분석 대상이었던 모든 동물이 수명이 끝날 때의 평균 돌연변이 수가 약 3200개로 수렴됐다”며 “정말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16종의 생애 돌연변이 수는 대부분 2684~3729개 사이에 있었으며 평균치는 3206개였다.
물론 수렴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지 종간 편차가 없다는 건 아니다. 예컨대 몸집이 가장 큰 기린은 몸집이 가장 작은 생쥐보다 4만배 더 크고, 수명이 가장 긴 인간은 수명이 가장 짧은 생쥐보다 30배 더 오래 산다. 그러나 분석 결과 수명이 끝날 때 세 종의 체세포 돌연변이 수 차이는 최저 1830개에서 최고 5380개로 약 3배 차이가 날 뿐이었다.
종별 수명과 연간 평균 돌연변이 수는 반비례한다. 웰컴생어연구소 트위터
연구진은 체세포 돌연변이와 체질량 사이의 관계도 추적했으나, 여기에선 유의미한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이는 ‘돌연변이가 암 발생의 원천일 수 있다’는 또 다른 가설과 관련이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몸집이 더 큰 종, 즉 세포 수가 더 많은 종은 이론적으로 암 발생 위험이 더 높아야 한다. 하지만 체질량과 암 발생률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페토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이는 몸 크기가 커지면서 더 강력한 암 억제 메카니즘을 진화시켰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 메카니즘의 하나가 돌연변이 수의 감소인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도 돌연변이율과 체질량 사이엔 연관성이 없었다. 연구진은 “따라서 몸집이 큰 동물의 암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페토의 역설’에 대한 답은 다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암에 잘 걸리지 않는 발생이 적은 코끼리 게놈에는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p53) 사본이 20개나 된다. 사람과 다른 포유에 이 유전자가 단 한 개만 있을 뿐이다 .
연구진은 종의 수명과 돌연변이 속도의 반비례 패턴이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지 아니면 포유류에만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명이 400년이 넘는 세계 최장수 척추동물인 그린란드상어를 포함한 어류를 대상으로 추가 분석하는 것을 다음 연구 과제로 삼았다. 케이건 박사는 앞으로 곤충이나 식물 등 더 다양한 종으로도 연구를 확장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