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란 이후의 여성(위)과 남성의 시간대별 뇌 온도 비교. MRC분자생물학연구소 제공
뇌는 인간의 정신 기능과 행동, 감각을 관장하는 신경계의 중추기관이다. 무게는 몸의 2%에 불과하지만, 할 일이 많은 까닭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전체의 20%에 이른다.
그래서일까? 뇌의 온도가 다른 신체 부위보다 뜨거운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와 컴퓨터의 핵심인 엔진과 중앙처리장치가 작동할수록 온도가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인다.
영국 MRC(Medical Research Council) 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진은 사람의 뇌 온도는 체온 지표로 쓰이는 구강온도(혀 밑부분 측정치)보다 약 2도 높은 것으로 측정됐다고 국제학술지 ‘뇌’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건강한 남성과 여성의 일반적인 뇌 온도는 평균 38.5도이며, 여성의 경우엔 낮 시간 동안 뇌 심부 온도가 40도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뇌와 체온이 같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뇌의 작동 기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실 우리가 뇌의 온도를 직접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 머리를 다친 사람일 경우 온도를 측정하는 탐침을 뇌에 삽입할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 연구진은 이번에 MRI(자기공명영상) 장비를 이용해 뇌의 여러 영역 온도를 측정하는 뇌자기공명분광법이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뇌 속을 직접 접촉하지 않는 비침습적 방법으로 뇌 온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82곳에 이르는 뇌 온도 측정 부위. 80곳은 대뇌(위), 나머지 2곳은 시상과 시상하부(아래). MRC분자생물학연구소 제공
연구진은 20~40세의 건강한 성인 40명을 모집한 뒤 아침(오전 9시)과 오후(오후 4시), 밤(오후 11시) 세 차례에 걸쳐 82개 부위의 뇌 온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측정된 뇌 온도 범위는 36.1~40.9도였다. 평균 38.5도로 체온(구강온도)보다 평균 2도 이상 더 높았다. 연구진은 뇌의 온도가 높은 것은 뇌의 대사 활동이 활발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하루 중 시간대와 뇌 부위, 성별과 월경주기, 나이에 따라 뇌의 온도가 달랐다.
우선 뇌 온도는 하루 중 1도 범위 안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낮보다 밤에 약 0.9도 낮았다. 이는 우리가 잠자는 동안 뇌로의 혈류 움직임이 더 활발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뇌의 여러 영역 중 온도가 가장 높은 것은 시상이었다. 시상은 대뇌 아래쪽 간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위로,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곳이다. 연구진은 시상의 온도가 높은 것은 뇌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혈관에 의한 수냉식 냉각 기능이 덜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여성의 경우 배란에서 월경에 이르는 월경 주기 후반부 시기의 뇌 온도가 배란 전 또는 남성보다 0.4도 높았다.
나이가 들면서 뇌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도 확인됐다. 특히 뇌의 심부에서 이런 경향이 뚜렷했으며 평균 0.6도가 높았다. 뇌 온도의 하루 변동 폭은 나이가 들수록 작아졌다. 연구진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뇌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며 “이것이 노화 관련 뇌 장애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존 오닐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은 건강한 사람의 뇌 온도가 인체 다른 부위에서는 고열로 진단할 수 있는 정도의 온도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뇌의 높은 온도는 인체에 해로울 수 있는 점을 고려해 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체온을 낮추려 하는 기존의 의료 관행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