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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70대 난청…귀에선 ‘유리컵 실로폰’ 같은 일이 벌어진다

등록 2022-06-30 10:19수정 2022-07-04 15:31

[한겨레21]
나이 들수록 높은 소리 못 듣는 이유는 귀의 구조 때문
70살 넘으면 3분의 1 이상은 노인성 난청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그노벨상(Ig Nobel)상을 아시나요? 미국 하버드대학의 <별난 연구 연보>(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에서 1991년부터 선정하는 수상작 목록으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노벨상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입니다. 해마다 이그노벨상 심사위원들은 “먼저 사람들을 웃기고, 그다음에 생각하게 한다”라는 <별난 연구 연보>의 모토에 걸맞게 기발하고 엉뚱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쓸데없거나 ‘한 번으로 충분한’ 연구를 선정해 발표합니다. 처음엔 단기적 이벤트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30여 년 이어진 유서 깊은(?) 상이 돼버렸지요.

어쨌든 이름답게 이그노벨상 수상작 목록에는 흥미로운 것이 많은데, 영국 발명가 하워드 스테이플턴의 ‘모기기계’(The Mosquito)도 그중 하나입니다.

딸바보 아빠이던 스테이플턴은 쇼핑하러 마트에 가면 불쾌한 성적 농담을 지껄이는 사춘기 남자애들 때문에 딸이 스트레스를 호소하자 가만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고심 끝에 불량청소년을 효과적이면서도 비폭력적으로 상점 밖으로 내쫓는 기계를 개발해 ‘모기기계’라는 이름을 붙여 출시합니다. 모기기계는 흔히 ‘모깃소리’로 대표되는 매우 높고 날카로운 고주파음을 생성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주파음이 사춘기 아이들을 내쫓는 도구가 될까요?

불티나게 팔렸지만 ‘인권침해’ 소지

세상에는 소리가 넘쳐나지만, 그 모든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대를 가청주파수라 합니다. 보통 20~2만㎐ 사이를 가청주파수 영역대라고 하는데, 숫자가 낮을수록 낮은 소리, 높을수록 높은 음역대 소리로 들리지요.

물론 세상에는 이 범위를 벗어난 음파도 얼마든지 있지만, 20㎐의 낮은 초저주파나 2만㎐ 이상의 초음파는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음파 검사기는 음파를 발산해도 전혀 시끄럽지 않습니다. 보통 의료용 초음파의 주파수는 200만~3천만㎐나 되거든요. 하지만 앞서 언급한 가청주파수 영역은 어디까지나 ‘최댓값’입니다.

이 한계 영역까지의 소리를 모두 듣는 이는 아이들뿐입니다. 나이 들수록 고주파 소리를 듣는 능력이 손상돼 평균적으로 30대의 최고 가청주파수는 1만6천㎐, 40대는 1만4천㎐, 50대는 1만2천㎐, 70대는 1만㎐로 줄어듭니다. 그래서 모든 음향을 원음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아주 비싼 스피커를 사더라도, 이를 완벽히 듣는 건 갓난아기뿐이란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는 평균값이기에 개인차가 다른 차이보다 훨씬 크다는 걸 고려해야 하지만요. 어쨌든 어릴수록 높은 소리를 잘 듣는 건 분명합니다.

나이가 들면 사오정이 된다. 작은 소리만이 아니라 전체 소리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KBS 아카이브 영상 갈무리
나이가 들면 사오정이 된다. 작은 소리만이 아니라 전체 소리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KBS 아카이브 영상 갈무리

바로 이것에 착안해 모기기계가 나왔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아직 청력이 민감할 때라 높은 고주파음도 잘 듣습니다. 모기기계는 10대 이하만 들을 수 있는 1만7천㎐ 이상의 고주파음을 출력합니다. 그것도 아주 시끄럽게 큰 소리로요. 매장에 모기기계를 가동하면, 대략 20대를 넘긴 성인은 이 소리를 듣지 못하니 상관없지만, 10대 이하 아이들에게는 귀청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의미 없는 큰 소리는 공해를 일으키는 소음이 됩니다. 결국 10대들은 매장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갈 수밖에 없죠.

스테이플턴은 자신이 개발한 고주파음향발생기에 특허를 내고 시제품을 판매했는데, 출시되자마자 영국에서만 3천 개 이상이 팔려나갔습니다. 그만큼 상점 주인들에겐 매장에 들어와 물건을 사지도 않으면서 다른 손님들의 쇼핑을 방해하는 불량청소년이 눈엣가시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곧 이 모기기계는 인권침해와 아동학대의 소지가 있다는 비난에 시달립니다.

나이가 앗아가는 높은 소리

모기기계가 내는 기분 나쁜 소리는 10대뿐 아니라 어린아이에게도 들리고(어릴수록 더 잘 듣지요), 대개 어른을 따라 쇼핑몰에 들어온 아기는 혼자 힘으로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기에, 이들은 소음을 고스란히 견뎌야 합니다.

스테이플턴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모기기계 원리를 거꾸로 이용한 휴대전화 벨소리, 일명 ‘틴벨’(Teen Bell)을 개발해 출시합니다. 틴벨의 소리 역시 1만7400㎐ 이상의 고주파이기 때문에, 설사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 벨이 울려도 선생님은 듣지 못하니 야단맞을 위험이 줄어든다는 장점으로 청소년에게 어필한 것이죠. 과연 ‘엉뚱하고 기발하면서도 쓸데없는’ 이그노벨상의 수상자다운 발상입니다.

노화로 나타나는 청력 손상을 ‘노인성 난청’(Presbycusis)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노인을 뜻하는 ‘Prebus’와 청각을 뜻하는 ‘Acusis’가 더해져 만들어진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눈뿐 아니라 귀 역시 점점 어두워진다는 건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왜 하필 높은 소리부터 사라질까요? 그건 우리의 청각 구조와 연관이 있습니다(그림 참조).

어디선가 발생된 음파는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다 우리 귀를 만나면 귓구멍을 통과해 귀 안쪽으로 들어가 고막을 진동시키고, 고막 뒤 고실에 있는 우리 몸에서 가장 작은 뼈인 망치뼈·모루뼈·등자뼈를 통과해 증폭된 뒤, 달팽이관으로 들어갑니다.

달팽이관 내부에는 각각 다른 주파수를 감지하는 유모세포가 있어, 유모세포가 자신이 담당하는 주파수를 인지해 전기적 신호로 바꿔 뇌의 청각 영역으로 전달해 소리로 인식하죠. 유모세포는 달팽이관의 기저부, 그러니까 소리가 들어가는 입구 쪽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순서대로 높은 주파수에서 낮은 주파수를 담당하도록 배열됐습니다. 그래서 높은 주파수를 담당하는 소리가 들어오는 입구 쪽이 더 일찍 손상되는 거죠.

사람의 말소리가 지닌 기본 주파수는 남성은 100~161㎐, 여성은 180~250㎐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이보다 높은 500~4천㎐의 주파수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는 가청주파수의 한계보다 한참 낮은 소리죠. 얼핏 이 숫자만 보면 노화가 일어나도 일상에서 큰 불편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소리를 듣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 70대 이상 노인 중 3분의 1 이상은 노인성 난청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사람 달팽이관의 기하학적 분포.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A-D-The-tonotopic-geometry-of-the-human-cochlea-To-a-first-order-acoustic-frequency_fig1_346435061
사람 달팽이관의 기하학적 분포.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A-D-The-tonotopic-geometry-of-the-human-cochlea-To-a-first-order-acoustic-frequency_fig1_346435061

높낮이 다른 물이 든 유리컵 실로폰처럼

노화에 따른 청력 손실은 연속적이기는 하지만 도미노 형태가 아니라, 방치된 유리컵 실로폰과 비슷하게 일어납니다. 도미노는 바로 앞의 블록이 넘어져야만 인접한 뒤쪽 블록이 넘어집니다. 그러니 앞쪽 블록이 넘어지는 동안에도 제일 끝에 있는 블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요.

유리컵 실로폰에는 서로 다른 양의 물이 들어 있습니다. 이걸 그대로 방치하면 컵에 든 물은 증발합니다. 물이 담긴 양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는 시간은 순차적이겠지만, 컵마다 물의 증발 속도는 같기에 시간이 지나면 모든 컵에 든 물은 줄어들지요.

청각의 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들면서 먼저 2만㎐를 인식하는 유모세포가 모두 사라지고 그다음에 1만8천㎐, 1만6천㎐로 순차적으로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 노화에 따라 전체적으로 유모세포에 골고루 손상이 일어나지만 고주파 담당 유모세포 쪽이 먼저 손상되죠.

그래서 일정 주파수 이상의 소리를 못 듣는다는 건 그 이하의 소리를 듣는 세포에도 이미 손상이 일어났음을 뜻하며, 그 정도는 손상 규칙에 따라 주파수가 높은 쪽 담당일수록 더 심할 것입니다. 즉 가청주파수 영역이 4천㎐로 떨어졌다는 것은 이를 기준으로 위쪽은 못 듣고 아래쪽은 잘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쪽 역시 이미 손상됐고 특히 주파수가 높은 쪽일수록 더 민감도가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귀가 음성을 인식할 때, 낮은 주파수는 소리 자체를 인식하는 데 주로 쓰이지만, 높은 주파수는 발성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데 주로 쓰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작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할 뿐 아니라 전체적인 소리가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려서 명확히 구별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언젠가부터 동문서답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사오정’ 캐릭터는 이런 모습을 희화화해 보여줍니다. 사오정은 소리를 아예 못 듣지는 않지만, 제대로 구별하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하곤 하지요. 사오정의 동문서답은 일종의 개그 코드로 인기를 끌었지만, 아이들에게 “무슨 소리 하는지 잘 못 들었어. 한 번만 더 분명하게 얘기해줄래?”라고 부탁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는 요즘은, 어쩐지 그 모습이 짠하고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잘 안 들리니 눈을 마주볼 수밖에

나이가 들면 소리를 인지하는 능력뿐 아니라,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도 저하됩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시끄러운 클럽에서도 친구들의 작은 귓속말을 이해하는 데 별 무리가 없었지만, 요즘에는 주방 후드만 돌려도 아이들이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말을 잘 구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변화에다가 여러 종류의 귓병을 앓은 병력이 더해져 나쁜 쪽으로 시너지효과가 일어난 탓이겠지요.

그러나 긍정적 변화도 있습니다. 귓등으로도 잘 들리던 것이 듣기 어려워지자, 아이가 말할 때 다른 소리는 줄이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집중하게 됐습니다. 음성이 뭉개지듯이 들리는 일이 잦아지자, 나부터라도 웅얼거리는 입말 대신 좀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발음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태도로 듣고 말해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청력이 좋을 때는 듣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고, 다른 이들도 모두 나와 같이 듣는 줄 알았기에 말하는 데 노력을 얹지 않았습니다. 그 대가를 지금 고스란히 받고 있지요. 아이들은 일하는 제 등 뒤에서 입말로 웅얼거리듯 말하며, 엄마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언젠가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뭐든 잃어버리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라서일까요, 나이 들어감에 따라 일어나는 몸의 변화는 무엇을 완전히 잃기 전에 그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도와주는 역할도 합니다. 조금 일찍 알려주면 더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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