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번 꼬박 양치질을 꼼꼼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픽사베이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는 로봇을 만드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필요하긴 하지만 사람이 하기엔 고되고 단순한 허드렛일’을 맡기기 위해서다. 하루 세번 식사 때마다 해야 하는 양치질도 어찌보면 성가신 일과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이 성가신 일을 로봇이 대신 말끔하게 해줄 수 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이 칫솔모나 치실을 대신해 치태를 제거할 수 있는 마이크로로봇 시스템의 개념증명 실험에 성공했다고 나노과학분야 국제학술지 ‘에이시에스 나노’(ACS Nano)에 발표했다.
산화철 나노입자로 만들어진 이 마이크로로봇은 자기장의 힘을 이용해 양치질에 필요한 모양으로 변신할 수 있다. 예컨대 치태를 제거할 수 있는 칫솔모나, 치아 사이를 문지를 수 있는 치실 등 여러 모양이 가능하다.
특히 단순히 치아를 청소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촉매 특성이 있는 산화철 입자는 과산화수소를 활성화시켜 치아 표면에 형성되는 생물막(치태)을 분해하고 충치 원인균을 없앤다. 치태는 충치와 잇몸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산화철 입자에는 효소와 같은 성질이 있어 충치 원인균 세포막 수용체에 잘 달라붙기 때문이다. 이곳에 과산화수소 세정액이 닿으면 산화철이 과산화수소를 산화제로 전환시킨다. 그러면 이 산화제가 박테리아의 세포막을 파괴하고 박테리아가 만든 치태도 분해한다.
연구진은 과산화수소의 산화제 전환은 충치 원인균인 스트렙토코쿠스 뮤탄스(Streptococcus mutans) 박테리아의 서식환경인 강한 산성 조건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다른 박테리아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윗줄 왼쪽은 산화철 입자가 자기장의 힘으로 칫솔 모양을 만든 그림, 오른쪽은 산화철이 과산화수소가 활성화해 박테리아를 제거하는 그림, 아래는 치태(빨간색)가 마이크로로봇 시스템에 의해 제거된 사진.
연구진은 3D 프린팅으로 만든 모의 치아로 산화철 나노입자의 효과를 실험했다. 그 결과 마이크로로봇이 치아 표면과 치아 사이, 잇몸의 모양에 맞춰 움직이며 치태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감지가능한 모든 박테리아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자기장을 잘 조절하면 치태를 제거하면서도 잇몸이 손상되지 않도록 칫솔모의 강도와 길이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 마이크로로봇이 실용화될 경우 자유롭게 손을 쓰기가 어려운 노약자나 장애인에게 특히 유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를 이끈 구현 교수(치열교정)는 보도자료에서 “양치질에는 칫솔질과 치실, 그리고 입안을 헹구는 등 여러 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번 연구의 가장 큰 혁신은 로봇 시스템이 손을 쓰지 않고 자동으로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산화철 나노입자들은 자기장의 힘에 의해 서로 뭉친 뒤 칫솔이나 치실처럼 치아 표면을 문지르고 치아 사이에서 앞뒤로 움직일 수 있다. 로봇팔로 표면을 청소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연구진은 나노 입자들의 결합 형상과 움직임이 자동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치아 및 구강 모양에 최적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로봇을 이용한 자동양치 시스템이 실제 제품으로 연결될지, 어떤 모양의 제품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연구진은 일단 입에 끼우는 형태의 기존 양치 도구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앞서 5월엔 인도과학대 과학자들이 역시 자기장을 이용한 비슷한 방식의 나노입자 마이크로로봇을 재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첨단 보건재료’(Advanced Healthcare Materials)에 발표했다.
이 로봇은 치아 안쪽의 상아세관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를 없애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최대 2000㎛ 깊이까지 이동해 초음파로 열을 발생시켜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다고 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