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 카사트의 ‘엄마와 아이’(1889년경). 출처: 신시내티미술관
애초에 수행이었던 것을 이론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분야들이 있다. 예술의 여러 분야가 좋은 사례지 싶은데, 악기 연주나 그림은 많은 사람의 취미이나 음악 이론이나 미학은 그 자체로 거진 전문가만의 영역에 속한다. 몸으로 행해서 배우는 것들을 어떤 논리나 정보로 번역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의학도 수행이었던 것을 이론화한 분야다. 먼저 환자 치료법이 있었고, 이것을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뒤따랐다. 물론, 이론화한 다음엔 이론이 수행을 지배하며, 이론에 맞지 않는 것들을 쳐낸다. 수행과 이론이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의학과 서구 생리학이 그런 예에 속할까. 내 전공 분야인 의료윤리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존엄사를 하려는 사람이 나타나고 이를 이론이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론의 틀이 딱 맞지는 않고 명쾌한 답이 나오는 경우는 잘 없다.
서두에 복잡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우리는 공식화된 세상을 선호하며, 세상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꽤 복잡하다) 의학에 관해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어서다. 다른 분야도 많이 있지만, 의학을 대표하는 학문 분야라면 신체를 이해하는 해부학과 생리학, 질병을 이해하는 병리학과 역학(疫學), 치료를 위한 진단학과 치료학(비록, ‘진단학’과 ‘치료학’이라고 명명하지는 않고 분과마다 각각 다루지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하나 빠져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봄학, 정도로 이름 붙일 수 있을 돌봄에 관한 학문 말이다.
아니, 간호학이 있는데 왜 돌봄학이 없는가, 물으실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간호가 “과학이고 예술이며 전문 직업”이라고 선언한 나이팅게일을 시작점으로 하여, 그로 인한 환자 위생의 개선으로 사망률의 큰 감소를 가져온 크림전쟁부터 출발한다면, 간호학은 치료학을 구성하는 일부이지 돌봄에 관한 학문이라고 하긴 어렵다.
음 글쓴이가 생각하는 돌봄이 독특하거나 이상한 것이군, 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실 것 같다. 돌봄을 정의해보아야 할 텐데, 멀리 가지 말고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 보자.
자녀가 있으시다면, 자녀를 돌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바로 느낌이 올 것이다. 아이의 곁에 머무르며 그의 신체적, 정신적 필요를 채우는 일, 아이가 바라는 대상을 제공하는 일이 아이 돌봄의 핵심이다. 환자를 돌볼 때도 마찬가지다. 아파서 환자 스스로 만족시킬 수 없는 그의 필요와 요청을 충족해야 한다.
지금 의학에 이런 채움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부재를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것 같지도 않다. 많은 이들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보 제공과 선택이 확장되는 것을 ‘의료의 인간화’라고 생각한다. ‘현대 의학의 서슬 퍼런 압제로부터의 자유’가 의학을 비판하는 이들의 구호다. 이것은 좋은 목표지만, 이런 생각과 돌봄은 서로 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모가 아이를 돌볼 때처럼, 또 가족이 환자를 돌볼 때처럼, 돌봄에는 분명 돌봄 받는 이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보는 이에게 의존하며, 의존은 때로 구속을 포함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돌봄에의 의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태어나고, 아프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인간은 돌봄을 받아야 한다. 치료의 과정이나 죽어감의 상황을 비판하는 최근의 논의들은, 사실 좋은 돌봄의 부재를 성토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렇다면 왜 좋은 돌봄이 없는가? 당연히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돌보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가 살피지 않아서 나타난 현상은 아닐까.
돌보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지금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의학의 태도를 바꾸는 데 있어서도 현대 의학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무척 중요한 일이다. 좋은 돌봄이 있어야만 이런 이야기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잠깐 우리 모두 돌보고 의존하는 사람인데 굳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아야만 돌봄을 알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경험을 거리를 두고 살피고 정리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지난하며, 나를 투영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필요로 한다. ‘돌보는 사람들’을 쓴 샘 밀스가 그랬던 것처럼.
‘돌보는 사람들’은 가족을 돌보는 삶이 무엇인지 절절히 보여주는 에세이다. 책은 환자와 함께하는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에세이의 주제는 조현병인 아버지를 돌보는 삶의 경과지만, 그 사이에 끼어드는 삽화들이 있다. 신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돌본 이야기, 자신이 아버지를 돌보기 전까지 간병인의 역할을 해 온 어머니의 삶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게 만드는 레너드 울프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야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이며,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의 이야기도 유명하니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레너드 울프는 누구인가? 20세기 초의 천재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이자, 20세기 초 영국의 지식인 집단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었던 사람이다. 인터넷에도 레너드에 관한 서술은 버지니아의 남편, 정도로 끝이다. 물론 그는 결혼 후 버지니아를 평생 돌보았으며, 간병인으로서 그의 삶은 살펴볼 가치가 있음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오늘은 그런 보살피는 삶에 대한 무관심을 거스르자. 살피고자 하는 것은 밀스를 통해 본 레너드의 삶, 돌보는 이가 바라본 돌보는 이의 모습이다.
정은문고에서 2022년 펴낸 샘 밀스의 ‘돌보는 사람들’. 밀스는 조현병을 가진 아버지의 삶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윌 셀프에 투영해 낸 소설 ‘윌 셀프의 본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머니의 투병과 사망, 이후 넘겨받은 아버지의 간병 역할을 여러 작품과 작가의 기록에 비추어 서술하는 에세이는, 돌보는 삶을 정밀하게 보여주는 고백이자 지도다.
소설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 등, 에세이 ‘자기만의 방’ ‘3기니’ 등을 남겨 모더니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버지니아에겐 정신 질환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의 정신적, 성적 학대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하지만, 누구보다 예민하고 치열했던 그녀의 정신이 지닌 특성인지도 모른다.
버지니아는 ‘댈러웨이 부인’에 등장하는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처럼 조현병을 앓았다. 환청을 듣고, 주변 사람들을 의심했으며,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1895년에 한 번, 1910년에 다시 ‘신경쇠약’을 앓는 버지니아는 자살 시도까지 하지만, 차츰 회복한다. 조현병이 아니라 신경쇠약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던 이유는 아직 정신의학이 진단적 측면에서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경쇠약이 아닌 다른 병명이 붙게 되면 시설에 강제 수용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레너드가 버지니아를 만나 청혼을 생각했던 시점인 1912년에는 이미 버지니아는 질환에서 회복되어 신문에 논평과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뛰어난 천재인 버지니아와 함께하고 싶었던 레너드는 청혼하지만, 버지니아는 거절한다. 결혼한 삶을 상상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질병으로 인한 질곡을 예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너드는 특유의 열정으로 그녀와 함께하겠다는 확신을 불어 넣는다. 결국 버지니아는 승낙하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두 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버지니아의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레너드는 처음부터 남편이자 간병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가족과 간병인의 역할이 같은 것이 아니냐 싶지만 둘은 명확히 다르다. 친밀감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안정과 위안을 주는 것이 가족이라면, 유대와 존중에 기초하여 한편에선 충족을 주고, 다른 한편에선 보호를 해야 하는 것이 간병인이기 때문이다.
레너드는 1913년 버지니아와 자녀를 가져도 되는지를 놓고 여러 의사와 상담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버지니아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가 주제다. 결국 레너드와 버지니아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한다.
같은 시기 버지니아는 첫 장편소설 ‘출항’을 완성한다. 하지만 작품에서 손을 떼는 일이 버지니아를 극단으로 몰고 간 것인지, 그녀의 상태가 나빠진다. 결국 버지니아는 다시 요양시설로 들어간다. 아직 별다른 치료법이 없던 시대, 그저 요양하면서 상태가 좋아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 달 뒤 퇴원한 버지니아를 데리고 레너드는 잠시 휴가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레너드로선 버지니아의 결정을 존중하고 싶으며 당시의 강요에 토대를 둔 병원 체계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녀를 통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잠깐 바깥에 나가 있는 사이 버지니아는 진정제를 과량 복용하고 깨어나지 않는다. 같은 건물에 사는 의사에게 도움을 청해 급하게 병원으로 버지니아를 옮기고, 위 세척을 하며 버지니아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다행히 며칠 지나 버지니아는 회복한다. 이제 레너드는 결정의 순간에 놓인다. 버지니아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간병인이 되어야 하는가?
레너드는 후자를 선택한다. 비록 이후 버지니아의 사회적, 사교적 삶은 축소되지만 안정적인 삶 속에서 역사에 각인된 놀라운 작품들을 남긴다. 1941년 버지니아의 세 번째 시도가 성공하여 다시 레너드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될 때까지 약 30년의 기간을 두 사람은 그렇게 보낸다.
‘약물의존증’이라는 표현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무언가에 의존하는 삶은 통제 불가능하고 나약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많은 시간을 돌보는 이에게 의존하며 보낸다. 의존과 돌봄이 서로 분리될 수 없기에, 우리 사회에서 둘을 다시 자리매김해야만 돌봄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반 고흐의 ‘아를의 병실’(1889).
버지니아 울프를 연구하고 그의 삶을 탐구한 여러 사람이 레너드의 과도한 통제가 버지니아를 억압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현병을 가진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밀스는 레너드가 제공한 규칙과 안정이 버지니아에게 위로와 평안을 제공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버지니아를 얽맸다고 레너드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런 돌봄은 한편으로 통제다.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세심한 관리다. 보살핌 받는 이에게 그런 삶을 제공하기 위해 돌보는 이는 많은 부담을 진다. 돌봄이 지닌 그런 성질 때문에, 독립과 자기결정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며 타인에게 휘둘리는 것을 경멸하는 현대 사회에선 자꾸 내몰릴 수밖에 없나 보다.
그리하여 돌봄이 없는 현실이 도래한다. 의과학에는 당연히 돌봄의 자리가 없다 해도, 그를 비판하는 의료윤리나 의료사회학 또한 딱히 돌봄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초래하는 것은 잔혹함이다. 돌봄 받지 못하는 삶은 그 자체로 괴롭다. 질병의 질곡을 혼자 헤쳐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질병은 순간적으로 왔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질환(疾患), 아픔으로 인한 근심은 상당한 기간, 때로는 평생 지속된다. 그 구체성과 영향 또한 처음부터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질환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삶을 조율해야 한다. 그런 조율은 혼자 할 수 없다. 보살핌받는 이와 보살피는 이가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통제로 보이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따라서 과도한 통제, 심지어는 강압이 될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하여야 한다 해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돌봄이 없을 때, 우리 삶은 곤경에 처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돌봄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는 것을.
레너드는 버지니아를 돌보는 삶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그를 통해 자신을 반추하며, 밀스는 아버지를 돌보는 삶에 관한 기록을 남긴다. 그 기록은 우리가 돌보고 돌봄 받으면서 어떻게 서로의 삶을 조율해 가는지를 알려준다. 우리 또한 그 기록을 이어받아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삶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 의학에서 돌봄의 자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 배운다. 질병으로 인해 마주 앉은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조율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돌봄은 어느 한쪽의 요구가 아니라, 서로의 얽힌 삶이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