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처럼 지방이 많은 생선은 북유럽식단의 주요 식품이다. 픽사베이
웰빙이란 뭘까? ‘참살이’로 번역하기도 하는 이 말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잘 지낸다’는 뜻이다.
북유럽은 높은 삶의 질을 뜻하는 웰빙에 가장 근접한 지역으로 꼽힌다. 북유럽은 유엔이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최상위권을 싹쓸이하다시피 한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유럽인들의 웰빙 생활문화를 배우자는 운동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날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소박한 안락을 추구하는 덴마크의 ‘휘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걸 뜻하는 스웨덴의 ‘라곰’, 절제와 안분지족의 생활윤리를 담은 ‘얀테의 법칙’ 등이 북유럽의 웰빙을 지탱해주는 비결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웰빙의 또다른 축은 건강한 몸이다. 북유럽의 웰빙에 대한 높은 관심은 자연스레 북유럽식단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해산물 위주의 북유럽식단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건강식단의 대표주자인 지중해식단에 도전하는 위치에까지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산물과 제철 채소를 주재료로 쓰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는 해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 선정 행사의 1위 단골 후보다. 지난해에도 1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꼽힌 덴마크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의 한 메뉴. 수란 노른자와 우드러프(선갈퀴아재비) 소스를 곁들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 과학자들이 직접 집필하는 온라인 미디어 ‘더 컨버세이션’에 지중해식과 북유럽식단을 비교하는 글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지중해식과 북유럽식은 둘 다 육식보다 채식, 가공식품보다 자연식품 위주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지중해식은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해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점이 확인된 오랜 전통의 검증된 식단이다. 반면 북유럽식단은 식품 및 영양 전문가와 요리사, 식품 역사가, 환경 운동가들로 꾸려진 위원회에서 다년간 연구 검토 끝에 개발한 현대적 식단이다. 2003년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이 ‘새로운 북유럽 요리 선언’을 발표한 뒤 뉴노르딕푸드(NND) 프로그램을 통해 5년간의 학제간 연구 르로젝트를 거쳐 개발됐다. 지속가능한 방식의 식이 지침과 지역 문화의 정체성을 담는 것이 개발 목표였다.
전통적인 지중해 식단은 올리브 오일을 지방의 주성분으로 하고 통곡물 제품, 콩류, 과일 및 채소가 많은 편이다. 생선은 보통 수준, 유제품과 육류는 적게 섭취한다. 또 적당한 양의 와인을 곁들인다.
북유럽 식단의 핵심 식품은 통곡물(호밀, 귀리)과 과일(베리류), 뿌리채소(비트, 당근), 지방이 많은 생선(연어, 참치, 고등어), 콩류 및 저지방 유제품이다.
둘 다 채식 위주이지만 그 내용에선 뚜렷한 차이가 있다.
우선 북유럽식단은 요오드,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디 같은 영양소가 풍부한 해조류와 다시마의 비중이 크다. 반면 지중해식단은 시금치처럼 잎이 많은 채소와 양파, 애호박, 토마토, 고추 등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라는 채식 작물이 주력이다.
지속가능한 건강식음료 운동을 벌이는 비영리기구 올드웨이즈는 1993년 하버드대공중보건대학원, 세계보건기구와 손을 잡고 표준 지중해식단을 구성해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지중해식단의 핵심 식품은 통곡물, 과일, 야채, 콩, 견과류, 식물성기름(올리브유 등)이다. 이어 생선과 해산물을 일주일에 두번 이상 섭취하며 요구르트, 치즈와 같은 발효 유제품을 적당량 자주 섭취한다. 계란과 가금류도 지중해식단에 포함되지만 붉은 고기와 과자는 거의 먹지 않는다.
2010년 처음 발표된 북유럽식단의 또다른 특징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식품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열대 과일이나 감귤류 대신 이끼나 씨앗, 야채, 허브 등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2012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영양학자들이 학술지 ‘공중보건영양’에 발표한 북유럽식단 지침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채식을 늘리고 육식을 줄이는 것, 둘째는 해산물과 민물 식품을 늘리는 것, 셋째는 야생에서 자란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다.
채소와 통곡물 및 식물성 기름이 식품 피라미드의 맨 아래를 차지하고 그 위로 해산물, 가금류와 치즈류 순서다. 올드웨이즈 제공
두 식단은 건강 효과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지중해식단은 1950년대 이후부터 많은 연구를 통해 당뇨와 심장질환, 일부 암의 위험을 낮춰주는 등의 건강 이점이 확인됐다. 예컨대 지중해식단은 심장마비, 뇌졸중 위험을 30% 감소시킨다는 연구 등이 있다.
반면 2010년 처음 발표된 북유럽식단은 건강 효과에 대한 연구가 일천하다. 최근 들어 관련 연구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2020년 북유럽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선 북유럽식단이 심장질환이나 당뇨 위험을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선 그런 이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최근엔 체중과 나쁜 콜레스테롤(엘디엘콜레스테롤) 수치를 줄여준 다는 연구도 있었다. 북유럽식단 중 심장질환 위험을 줄여주는 것과 관련한 것은 통곡물과 지방이 풍부한 생선이다.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한 핀란드의 선지 소시지 무스타마카라와 링곤베리잼.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과 호주 영양학자로 구성된 ‘더 컨버세이션’ 집필진은 북유럽식은 개인의 건강만이 아니라 지역과 자연환경에 친화적인 식단으로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개발됐다는 의미를 강조했다. 이들은 북유럽식단이 지중해식단보다 더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섣부르지만 현지에서 재배된 자연식품을 섭취하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두 식단에 공통으로 포함된 야채, 씨앗, 콩류, 통곡물 및 생선 식품을 더 섭취하고 붉은색 육류와 가공육을 피하는 것이 건강 식단의 기초”라며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고 주로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는 노력을 함께 한다면 특정 식단을 따르는 것보다 건강에 더 중요한 식이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