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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우주의 수수께끼 풀러 1000m 땅속으로 들어가다

등록 2022-10-05 20:59수정 2022-10-07 14:12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 아래 1000m 깊이에 건설된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의 지하실험실 ‘예미랩’.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 아래 1000m 깊이에 건설된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의 지하실험실 ‘예미랩’.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지구가 태양을 돌듯, 은하가 회전하고 있으며, 무수한 은하로 구성된 은하단도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인류는 알고 있다.

이런 천체의 회전은 중력이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중력은 질량에 의해 생긴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중력의 끌어당기는 힘(구심력)보다 회전하는 힘(원심력)이 큰 천체들은 더 먼 우주로 달아난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이 계산을 해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의 질량만으로는 은하들이 중력(구심력)에 붙잡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나왔다.

1978년 미국 물리학자 베라 루빈(1928~2016)은 ‘무언가’가 있어야 천체들을 붙잡아두는 중력이 생긴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무언가’에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이라고 이름 붙였다. 쉽게 말해, 암흑물질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가운데 인류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물질이다. 인류가 파악한 물질은 과학자들 추산으로 전체의 4.9%에 불과하다. 암흑물질(26.8%)이 다섯배나 많다. 나머지는 역시 학교에서 배우는 ‘우주팽창론’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암흑에너지(68.3%)이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질량-중력 법칙을 찾아내든지, 암흑물질을 찾아내든지 양갈래 길에 놓였다.

강원 정선에 지하실험실 ‘예미랩’ 준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은 5일 강원도 정선군 예미산에서 지하실험연구단의 지하실험실 ‘예미랩’ 준공식을 열었다. 예미랩은 예미산(해발 989m) 아래 1000m 땅속에서 ‘암흑물질’ 탐색에 나선다.

예미랩은 예미산에 이미 자리잡은 한덕철광 부지에 세를 들었다. 연구단은 지하실험실 터를 물색하던 중 이곳에 길이 600m의 수직갱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머지 400m만 더 파내려가면 목표한 1000m가 깊이의 실험실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과기정통부 기자단이 예미랩 준공을 앞두고 찾은 예미랩 지상연구실은 페인트칠 등 준공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지상연구실은 폐교한 함백중고등학교 교사 4개를 구입해 마련됐다. 이곳에서 차로 5분 정도 이동해 예미랩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지하 1㎞를 들어간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건설업에서는 엘리베이터라고 하지만 광산에서는 케이지라고 합니다. 깨끗하지 않고 먼지도 많고 물도 떨어져요.” 사전에 박강순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흑백 무성영화에나 나올 법한 승강기 문이 철컹하고 열리고, 바닥이 삐걱거리는 안으로 들어가려니 ‘무사히 갔다 올라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살짝 소름이 돋았다.

바깥이 보이지 않아 케이지가 얼마나 빨리 내려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600m를 2분30여초 만에 주파한 걸 보면 일반 엘리베이터보다 속도가 네 배는 빨랐다. 땅속 1000m는 의외로 지상의 터널과 다를 바 없었다. 온도는 26도 정도로 다소 덥게 느껴졌고, 공기순환 시설이 갖춰져 있어 공기가 그리 탁하지 않았다. 물론 1시간여 동안 머무니 숨도 가빠지는 것 같고 눈도 씀벅였다.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가 들어설 지름 20m, 높이 20m의 커다란 동공.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가 들어설 지름 20m, 높이 20m의 커다란 동공.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세계 6위급 지하실험시설

비스듬하게 내리막길인 800m의 터널 양쪽에는 개미 땅굴처럼 ‘지하’ 실험실 13개가 파여 있었다. 기상청의 지진관측시설 등 이미 들어선 랩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간만 확보돼 있는 상태였다. 박강순 책임기술원은 “실험실 바닥면적만 3000㎡에 이른다. 세계 지하실험실이 14∼15개 정도 되는데 6위급에 해당한다”고 했다. 물론 예미랩보다 규모가 큰 시설들은 비교가 어려울 만큼 크다. 가령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중성미자 실험실 ‘둔’(DUNE)은 가로 세로가 각 70m인 실험실을 두 동이나 짓는다. 일본의 하이퍼카미오칸데도 지름과 높이가 각 70m인 거대 시설이다. 박 책임기술원은 “규모는 작지만 활용할 수 있는 면적이나 구성들을 보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 13개의 독립 연구그룹이 별도 연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덕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 단장(왼쪽)과 박강순 책임기술원이 예미랩 건설과 연구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근영 기자,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김영덕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 단장(왼쪽)과 박강순 책임기술원이 예미랩 건설과 연구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근영 기자,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왜 땅속에서 연구를 해야 하나

지하실험연구단은 크게 두 가지 연구를 하고 있다. 하나는 암흑물질 탐색(코사인실험실)이고 다른 하나는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아모레실험실) 연구이다.

암흑물질이 ‘암흑’인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을 뿐더러 기존의 과학장치로 검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여러 후보물질이 있는데, 연구단이 찾으려는 것은 ‘윔프’라는 물질이다.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라는 뜻의 윔프는 고 이휘소(1935~1977년) 박사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브 와인버그(1933~2021년)가 제안한 입자이다.

김영덕 지하실험연구단 단장은 “코사인실험은 암흑물질 후보의 하나인 윔프가 다른 물질과 반응할 때 나오는 지극히 미약한 신호를 검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윔프는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을 하지 않아, 1톤짜리 검출기에서 1년에 몇 개가 겨우 반응할 정도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수많은 입자들이 지구로 들어와 검출기에 잡음을 남긴다. 가령 중성미자(뉴트리노)나 양성자(프로톤)가 날아오다 대기의 원자핵과 만나면 뮤온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뮤온은 지표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지는데 일부 속도가 빠른 뮤온은 살아남는다. 땅속 깊이 가면 많은 뮤온을 막을 수 있지만 1000m 깊이에서도 초당 3000개 정도가 검출기에 신호를 남긴다. 이 뮤온 등 우주선이 남긴 신호들을 제거하고 남는 윔프의 신호를 찾아내는 것이 실험의 목표이다. 윔프가 발견된다면 노벨상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예미랩에서는 소듐아이오딘(NaI)을 검출기로 사용한다. 이전에 강원도 양양에 있는 양수발전소 아래 실험실(Y2L)에서는 10㎏짜리를 썼던 것을 이곳에서는 100㎏으로 키워 사용할 예정이다. 그만큼 검출 효율이 높아진다. 향후에는 200㎏까지 늘린다. 김 단장은 “코사인실험실은 향후에는 1톤까지 늘려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했다.

‘중성미자 없는 이중 베타 붕괴’ 실험을 하는 ‘아모레실험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중성미자 없는 이중 베타 붕괴’ 실험을 하는 ‘아모레실험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입자임과 동시에 반입자인 신비한 중성미자를 찾아라

원자를 쪼개고 쪼개면 기본입자가 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쿼크, 뮤온, 중성미자, 타우, 전자 등 수많은 기본입자들을 찾아냈다. 대부분의 물질(입자)은 반물질(입자)를 갖고 있다. 가령 음전하를 띤 전자와 달리 양전하를 띤 양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에토레 마요라나(1906~실종)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반입자인 기본입자가 있다고 계산해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입자가 관측된 적은 없다.

지하실험연구단의 아모레실험실은 마요라나 입자가 기존에 알려진 ‘중성미자’이며, 이를 실험으로 증명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 이름은 ‘중성미자 없는 이중 베타 붕괴’다. 물질에서는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거나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붕괴라 하고, 이런 붕괴 현상 중 하나가 베타 붕괴이다. 양성자가 베타 붕괴를 하면 중성자와 양전자, 중성미자가 나온다. 이중 베타 붕괴를 하면 2개씩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때 나오는 중성미자가 마요라나입자라면 이중 베타 붕괴 때 양전자와 중성자만 나온다. 중성미자가 중성미자인 동시에 반중성미자여서 흡수와 방출이 핵 안에서 이뤄져 중성미자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중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반감기는 헤아릴 수 없이 길다.

아모레실험실은 그나마 반감기가 짧은 몰리브덴(Mo)을 실험재료로 쓴다. 기존에 사용하던 6㎏짜리 결정을 200㎏까지 키워 진행할 예정이다.

김영덕 단장은 “아모레실험이 성공하면 빅뱅 직후 우주에서 함께 만들어졌던 물질과 반물질 가운데 왜, 어떻게 물질만 비대칭적으로 남아 현재의 우주를 구성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하면 역시 노벨상 후보감이다.

예미랩에는 또 액체섬광물질 2500톤이 담긴 대형 검출기(LSC)도 구축중이다. 이곳에서는 중성미자 반응 실험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알려진 3종류의 중성미자 외에 ‘비활성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연구가 진행된다. 비활성 중성미자도 암흑물질 후보 가운데 하나다.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산 위나 지상이 아닌 땅속 1000m 아래로 파고든 이유는 우주에서 오는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우주선(우주에서 지구로 오는 입자선) 등의 간섭없이 확보하기 위해서다.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를 그대로 통과한다. 땅 속 깊이 들어갈수록 우주선 등의 ‘방해꾼’을 최소화하면서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탐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선(예미랩)/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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