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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인류의 두 발 걸음마, 초원 아닌 나무에서 시작했다?

등록 2022-12-22 10:01수정 2022-12-22 11:27

숲-사바나 공존지역 침팬지 관찰 결과
두발 보행의 85%가 개활지 아닌 나무
이사밸리의 침팬지는 숲과 초원이 혼합된 환경에 살고 있음에도 열대림에 사는 침팬지만큼 나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Rhianna Drummond-Clarke 제공
이사밸리의 침팬지는 숲과 초원이 혼합된 환경에 살고 있음에도 열대림에 사는 침팬지만큼 나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Rhianna Drummond-Clarke 제공

몸을 곧추 세우고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은 인간의 대표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침팬지와의 공통조상에서 분리돼 직립보행을 한 계기가 기후변화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프리카 저위도 지역의 열대우림이 초원지대로 바뀌면서 먹을 것을 찾아 나무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를 사바나가설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그 시기를 대략 700만년 전으로 본다.

초원지대에선 먹거리를 얻기 위해 더 멀리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멀리 이동하는 데는 네발보행보다 두발보행이 더 유리하다. 걷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덜하기 때문이다.

미국 듀크대의 허먼 폰처 교수(진화인류학)가 2007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직립보행은 침팬지의 네발보행보다 에너지를 75%나 덜 쓴다. 그는 그 이유를 확장된 고관절과 긴 다리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침팬지도 두다리로 뒤뚱거리며 걸을 수는 있지만 이런 해부학적 구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사람처럼 높지 않다.

그러나 사바나 가설과는 달리 초기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오기 전에 이미 직립보행 기술을 익혔다고 주장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초원 확장이 직립보행 이끌었을까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과 켄트대, 미국 듀크대 공동연구진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서부 이사밸리(Issa Valley)의 야생 성인 침팬지 13마리를 15개월간 관찰한 결과, 침팬지들이 평지보다 나무 위에 있을 때 두발로 더 자주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이 지역은 무성한 숲과 건조한 개활지가 섞여 있는 ‘사바나-모자이크’ 지역으로 초기 인류가 살던 환경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그렇다면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가 당시의 초기 인류와 비슷한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했을 것으로 보고, 침팬지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사밸리의 침팬지들은 울창한 숲에 사는 침팬지만큼이나 나무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으며, 개활지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 탁 트인 개활지를 가로질러 갈 때에도 거의 두발로 보행하지 않았다. 연구진이 확인한 두발 보행의 85% 이상이 나무에 있을 때 이뤄졌다.

이곳은 전형적인 열대우림보다 나무 수가 적기 때문에 나무보다는 땅에서 침팬지를 더 자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게다가 두발보행을 이끄는 요인, 예컨대 물건을 나르거나 키 큰 풀 너머로 시야를 확보할 필요성 등으로 인해 평지에선 침팬지가 두발로 걷는 것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런 예상 역시 빗나갔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알렉스 피엘 교수(인류학)는 “이번 연구는 약 500만년 전 후기 중신세에서 선신세로 넘어가는 시기에 숲이 감소하고 사바나가 늘어난 것이 두발 직립보행의 촉매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보다는 숲이 줄어들면서 열매 나무를 더 샅샅이 탐색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 두발보행 진화의 동인이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발보행은 애초 초원으로 나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숲에서 좀 더 오랫동안 생존하기 위해 터득한 환경 적응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밸리의 한 침팬지가 아기를 등에 업고 나뭇가지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Rhianna Drummond-Clarke 제공
이사밸리의 한 침팬지가 아기를 등에 업고 나뭇가지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Rhianna Drummond-Clarke 제공

두발 직립보행에 관한 새로운 질문

연구진은 그러나 여전히 인간만이 왜 두발로 걷기 시작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 연구자인 피오나 스튜어트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인류학)는 “안타깝게도 나무 수가 줄어들면 땅에 내려와 살 것이라는 전통 가설이 이사 밸리의 침팬지 데이터로는 입증되지 않는다”며 “향후 연구의 초점은 이 침팬지들이 (나무가 적은 곳에서도) 왜 그렇게 나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숲과 사바나 공존 지역의 침팬지 행동 양태를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사바나 가설의 근거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나무에서 내려와 개활지에서 두발로 걷기 시작했다는 수많은 진화 가설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평지에서보다 나무에서 두발보행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두발 직립보행의 진화 배경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얻게 됐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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