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년 전 얕은 호수 표면의 파도가 바닥의 퇴적물을 흔들면서 만들어진 잔물결 무늬의 퇴적암(빨간색 원). 나사 제공
미국항공우주국(나사) 과학자들은 지난해 10월 화성의 로봇탐사차 큐리오시티가 게일 충돌구 중심부에 높이 솟은 샤프산에서 염분이 풍부한 황산염 함유 광물을 발견했을 때 호수가 이 지역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증거’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곳의 암석층은 큐리오시티가 초기에 탐사했던 장소보다 더 건조한 환경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황산염은 물이 마르면서 남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예상은 섣부른 것이었다. 큐리오시티가 이 샤프산에서 더욱 노골적인 물의 증거를 발견했다. 수십억년 전 호수의 파도가 만든 잔물결 무늬가 선명한 퇴적암이다.
나사는 얕은 호수 표면의 파도가 바닥의 퇴적물에까지 영향을 미쳐 물결 모양이 새겨진 암석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나사 제트추진연구소의 큐리오시티 프로젝트 과학자인 애쉬윈 바사바다는 “큐리오시티가 수백미터를 오르며 호수 퇴적물을 탐사했지만 이런 증거는 본 적이 없었다”며 “건조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장소에서 발견한 이 잔물결 무늬 퇴적암은 지금까지의 큐리오시티 임무를 통틀어 물과 파도에 관한 최고의 증거”라고 말했다.
큐리오시티가 2022년 12월16일 촬영한 마커밴드 계곡의 360도 파노라마 사진. 나사 제공
계곡 수로가 만든 침식의 흔적도
높이 5.5km의 샤프산은 화성의 진화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따뜻한 기후와 물이 풍부했던 고대에서부터 얼어붙은 황량한 오늘날의 사막에 이르는 세월의 흔적이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다. 큐리오시티는 2014년부터 이 샤프산 기슭을 오르며 과거 미생물의 좋은 서식처였을 호수와 강물의 흔적을 탐사하고 있다.
큐리오시티가 이번 잔물결 무늬 퇴적암을 발견한 곳은 바닥에서 약 0.8km 올라간 마커 밴드(Marker Band)라는 이름의 암석지대다.
큐리오시티는 지난해 12월 이곳에서 드릴로 구멍을 뚫어 시료를 채취하려 몇차례 시도했지만 암석층이 매우 단단해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나사 과학자들은 앞으로 1주일 안에 좀 더 부드런 암석을 찾아볼 계획이다.
나사 과학자들은 마커밴드 계곡 앞에 있는 게디즈 발리스(Gediz Vallis) 계곡에서도 고대 화성의 물에 관한 또 다른 단서를 확인했다. 샤프산의 더 높은 곳에서부터 흘러온 물이 계곡을 통과하면서 수로가 만든 침식의 흔적이다. 과학자들은 이곳에 있는 자동차 크기만한 바위와 이보다 작은 암석 파편들은 산사태로 인해 계곡 바닥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암석 파편들이 다른 모든 층의 위에 있는 것으로 보아 샤프산에서는 가장 최근에 형성된 지형임이 분명하다고 나사는 밝혔다.
과학자들을 흥분시킨 마커밴드 계곡의 또 다른 단서는 먼지폭풍과 같은 날씨 또는 기후가 주기적으로 일어나면서 생긴 독특한 암석 구조다.
물결 무늬의 퇴적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간격과 두께가 일정하게 층이 지어 있는 암석이 있다. 지구에서 이런 종류의 암석은 보통 어떤 특정한 대기 현상이 주기적으로 발생했을 때 만들어진다. 나사 과학자들은 화성에서도 그런 비슷한 기상 변화가 일어나 이같은 암석층을 만들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사바다 박사는 “잔물결 구조, 흘러온 암석 파편, 규칙적인 암석 무늬는 화성의 고대 기후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했으며 화성의 습윤-건조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