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변형 포플러(왼쪽 2그루)와 일반 포플러. 리빙카본 제공
기후위기 대책의 유망한 선택지인가, 기후위기를 빌미로 한 새로운 산림 사업인가.
성장 속도를 배가시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흡수력을 높인 유전자 변형 나무가 세계 처음으로 실험실을 떠나 자연의 숲에 심어졌다.
중국과 브라질에서 각각 해충에 대한 저항성을 높인 유전자변형 포플러와 펄프 증산을 위한 유전자변형 유칼립투스의 재배를 승인한 적은 있지만 온실가스 저감 대책의 일환으로 유전자변형 나무가 심어지는 건 처음이다.
2019년에 설립된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리빙카본(Living Carbon)은 최근 조지아주 남부지역의 한 사유림에 유전자 변형 포플러 나무 5000그루를 심었다. 포플러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낙엽활엽수로 빨리 자라고 키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선 미루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한때 가로수로 많이 심었던 나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에서 연구 실험용이나 과일나무가 아닌 유전자 변형 나무를 심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이 회사는 유전자 변형 포플러를 심는 목적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회사에 따르면 유전자 변형 포플러는 일반 포플러보다 성장 속도가 50% 더 빠르다. 이는 같은 기간에 광합성을 통해 흡수하는 탄소량이 일반 포플러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뜻한다.
리빙카본은 나무 자체를 판매하거나, 나무 심기를 통해 격리한 탄소를 기반으로 한 탄소배출권을 판매하는 것을 수익 모델로 삼고 있다. 자신의 소나무숲에 유전자 변형 포플러를 심은 빈스 스탠리는 ‘뉴욕타임스’에 “50~60년 걸리는 목재 회전율이 반으로 줄어든다"며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리빙카본의 최고경영자 매디 홀은 2024년 중반까지 400만~500만그루를 심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본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폐광지역처럼 나무를 심을 수 없는 땅, 즉 현재 많은 양의 탄소를 제거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 주로 심을 것”이라며 “가장 큰 걸림돌은 나무의 번식이나 공급망 확보, 유전공학이 아니라 행정 절차와 관료주의”라고 말했다. 올해 늦봄쯤 펜실베이니아의 폐광지역에 포플러를 심을 예정이다.
이 유전자 변형 포플러엔 호박과 녹조류에서 추출한 유전자 3개가 추가됐다. 이는 2019년 일리노이대 도널드 오트 교수팀이 담배나무 실험을 통해 발견한 방법이다. 당시 이 유전자를 받은 담배나무는 40% 더 크게 자랐다.
리빙카본 연구진은 처음엔 식물 생명공학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나무에 유전자를 주입했다. 원하는 유전자를 박테리아에 주입한 뒤, 이 박테리아를 세포에 넣어 새 유전자와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실험 결과 이 박테리아를 받은 나무는 광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재활용해 식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합성에 사용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식물이 생산하는 포도당이 더 많아져 더 빨리 자랄 수 있다.
리빙카본은 박테리아로 유전자를 변형한 포플러를 온실에서 키운 결과, 일반 포플러보다 5개월 동안 53% 더 많은 바이오매스를 얻었으며 약 27% 더 많은 탄소를 흡수했다는 논문을 지난해 2월 사전출판 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아직 동료학자 검토는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심은 나무는 박테리아 대신 유전자총을 사용했다. 유전자총은 미세한 금속입자에 DNA를 입혀 세포에 주입하는 기법이다. 박테리아법에 비해 간편하지만 성공률은 떨어지는 방법이다. 회사쪽은 유전자총을 사용한 유전자변형 나무도 박테리아법을 사용한 것과 비슷한 성장 속도를 보였다고 회사쪽은 밝혔다.
이 회사가 효율이 떨어지는 유전자총을 사용한 이유는 당국의 규제 때문으로 보인다. 유전자 변형에 병원체를 쓰지 않은 덕분에 미 농무부의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지난 2020년 박테리아를 이용한 유전자 변형으로 마름병에 강한 밤나무를 만든 뉴욕주립대 과학자들이 지금까지도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타지크스탄의 포플러나무 숲. 한국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유전자변형 나무는 유전자변형 작물에 비해 도입 움직임이 활발하지 못하다. 나무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유전자변형 나무에 대해 작물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많은 수의 유전자 조작 나무가 심어진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국가는 중국이다.
환경 단체인 글로벌정의생태프로젝트는 연방 정부가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전공학 기술을 적용한 나무의 상업화 길을 열어준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 단체의 전무이사 앤 피터만은 “삼림을 보호하고 다시 살리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 오히려 기후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빙카본의 매디 홀 대표는 유전자 변형 나무의 환경 영향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 “유전공학에 대한 우려는 주로 제초제나 살충제 저항성을 높인 식물이 오히려 화학약품을 더 쓰게 만든다는 데 있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이것과는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너무 빨리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에 식물이 수천년이 아닌 수십년 안에 기후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빙카본은 또 환경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유전자 변형 나무는 꽃가루를 생산하지 않는 암나무로 했기 때문에, 이 나무가 야생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리빙카본이 온실 재배를 통해 얻은 결과가 실제 숲에서도 그대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이 회사 자문역을 맡았던 오레곤주립대 스티브 스트라우스 교수는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 “수년간의 경험으로 보아 온실 재배로 실외 재배를 전망할 수는 없다”며 “적어도 2024년 중반까지는 지켜봐야 자연 환경에서도 제대로 자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설립 초기 샘 알트먼 오픈에이아이(AI) 최고경영자의 투자를 받는 등 지금까지 모두 3600만달러의 외부투자금을 유치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유망한 탄소 포집 기술이 될 수 있다는 명분으로 2021년 이 회사에 5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