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영화 ‘라이언 킹’의 주제가는 ‘생명의 순환’을 노래한다. 사진은 영화 포스터의 일부.
이전 칼럼에서는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생명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
모두를 움직이는
절망과 희망을 통해
믿음과 사랑을 통해
자리를 찾을 때까지
펼쳐지는 길 위에서
원 안에서
생명의 순환.”
디즈니 영화 ‘라이언 킹’의 주인공 심바는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난을 겪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들과 연결되며 성장한다. 장성한 심바는 위험을 해결하고 사랑하는 짝과 자기 가족을 구성한다. 그리고 자식을 얻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는 제목대로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을 노래하고 있다. 대자연의 섭리라는 숙명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노력을 담은 가사는 철학적이고 아름답다. 심지어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생명의 순환에는 수직과 수평 두 방향이 있다. 생물학에서 수직이라는 단어는 세대를 단위로 하는 시간 축을 의미한다. 반대로 수평은 같은 시간, 즉 동시대의 공간을 의미한다. 위 영화 줄거리처럼 후손을 통해 반복되는 삶이 수직 순환이다. 그리고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이 생명의 수평 순환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디즈니 영화의 특성 때문인지 표현되지 않았지만, 생명의 수평 순환은 잔인하고 냉혹하다(티몬과 품바는 심바에게 잡아먹힌다는 이야기다). 초식 동물은 식물을 먹고, 육식 동물에게 먹힌다. 육식 동물은 세균에 의해 썩고, 식물의 거름이 된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약육강식의 생존 경쟁을 태양만 변함없이 지켜본다.
왜 생물은 기를 쓰고 엔트로피 법칙을 역행하는 것일까? 생존 본능이 각인된 것은 살아남아야 자기 복제, 즉 수직 순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 지능을 가진 인간은 이런 원초적 굴레를 뛰어넘는 존재론적 고민을 더 많이 하지만, 모든 생물의 공통 목표를 추출하면 자기 복제라는 초점으로 모인다. 여기서 진화의 원리가 파생되는데, 이 내용은 잠시 미루고 먼저 수평으로 전개되는 생명 순환을 살펴보자.
자원 재활용과 비슷한 생명의 수평 이동
지구 생태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생물이 존재한다. 크게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단세포 생물, 그리고 여러 세포가 협력하며 생존하는 다세포 생물이 있다. 세균이 대표적인 단세포 생물로,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 종류와 수는 다세포 생물을 압도한다. 다세포 생물은 식물과 동물로, 동물은 어류, 파충류, 포유류 등으로 다시 분류가 된다. 이런 식으로 생물의 분류를 나무처럼 그려나가면 포유류 긴 가지 끝에 사람이 놓이게 된다. 그리고 여기 그려진 모든 생물들은 약육강식의 사슬로 서로 연결된다.
먹힌 생물은 먹은 생물의 구성 재료와 에너지가 된다. 생물도 세상 만물처럼 원자의 집합체다(물론 더 쪼개면 소립자가 튀어 나오며 양자 역학의 영역으로 들어가지만, 생물학 영역에서는 원자를 최소 입자로 규정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생명은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원자가 대부분(96%)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원자들이 마구잡이로 뭉쳐 있는 의미 없는 덩어리가 아니다. 생명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탄소를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연결되어 핵산, 단백질, 지질, 그리고 탄수화물이라는 일정한 형태를 가진 생체 분자(biomolecule)를 형성한다. 이 생체 분자들이 모여 생명의 최소 단위인 세포를 구성한다.
모든 생명 활동은 세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세포 안의 생체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연결 규칙이 생명 현상을 지배한다. 여기서 규칙이란 무질서를 의미하는 엔트로피의 반대 의미로, 원자의 종류, 연결 각도나 거리 등의 물리적 연결 특성이다. 물론 이 넓은 우주 어딘가에 다른 종류의 분자로 구성된 생명(엔트로피를 거스르는 또 다른 연결 규칙을 가진)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생태계에 예외는 없다. 우리가 생명으로 인지하는 모든 대상은 생체 분자를 공유한다. 공유한다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규칙)이 서로 통할 때만 가능하다. 즉 생체 분자는 모든 생물이 이용하는 공통 규칙으로 연결되어 있다.
생명의 수평 이동은 우리 사회의 자원 재활용과 유사하다. 플라스틱을 생체 고분자라고 생각해보자. 음료수 용기를 만든다면 원유를 뽑고, 분리 정제하고, 화학 반응을 거쳐, 플라스틱 성분(분자)을 얻은 뒤 이를 성형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하지만 재활용을 통해 사용한 음료수 용기를 녹인 뒤 화장품 용기로 성형만 하면 원유부터 시작하는 과정을 건너뛸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일지는 비교할 필요도 없다. 생명의 수평이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생체 분자의 재활용 과정이라 생각하면 된다.
크레타에서 탈출하는 테세우스를 묘사한 폼페이의 프레스코 벽화. 아테네인들은 테세우스가 탈출하는 데 사용했던 배의 부품이 부패하자 하나씩 교체하며 보존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매일 피자만 먹는다면 내 몸은 피자일까
그럼 사람에서 일어나는 생체 분자의 재활용 과정을 살펴보자. 우리가 음식을 먹는 이유는 다른 생물을 분해해 생체 분자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음식은 위장관을 통과하면서 점차 작은 분자로 분해된다. 그리고 쪼개진 분자들은 장벽을 통해 흡수되는데 이 전체 과정을 소화라 한다. 흡수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은 인체의 화학 공장인 간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이용이 가능한 형태로 가공되어 전신을 순환하며 세포들에게 공급된다. 당장 필요한 에너지는 탄수화물로 공급되고, 남는 것은 지방으로 비축된다. 이 자원을 이용해 인체의 세포들은 정해진 동작을 하거나, 새로운 생체 분자를 재구성해 낸다.
결국 생명의 수평 순환은 다른 생물의 생체 분자를 자신의 형태로 재구성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유명한 철학적 역설을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태세우스의 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테네 사람들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 테세우스가 탔던 배를 기념으로 보존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배는 낡고 부서져 갔다. 사람들은 썩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새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기를 반복하였다. 엔트로피 법칙을 역행하기 위해 노동력을 투입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모조리 새 나무 판자로 교체되어 버리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럼 원래 나무 조각이 하나도 남지 않은 그 배는 과연 테세우스의 배일까?
이 형이상학적 논의를 생명의 수평 순환으로 옮겨보자. 매일 피자만 먹으면, 내 몸의 모든 생체 분자들이 피자에서 얻은 생체 분자들로 교체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럼 나는 피자인가? 당연히 아니다. 음료수 용기를 녹여 화장품 용기를 만들었다고 음료수 병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원자나 분자가 아니라면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연결이다. 인간의 존재, 생물의 존재는 원자들의 연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바다와 육상에서 이뤄지는 광합성의 전 세계적 분포도. 진한 적색과 청록색은 각각 바다와 육지에서 광합성이 활발한 영역을 가리킨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생체 분자의 공급원은 식물
그런데 재활용을 하려면 플라스틱 용기들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체 분자도 일단 존재해야 수평 순환이 가능하다. 이것은 생체 분자를 이용하는 생물만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새로운 생체 분자가 공급되지 않는 생태계는 고사한다. 생명의 순환에 엮인 모든 생물이 굶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석유에서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처럼, 생태계에는 원자 수준의 재료에서 생체 분자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생명의 수평 순환에 새로운 생체 분자를 공급하는 것은 식물이다.
식물의 중요성은 공룡의 대멸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은 운석이 떨어져 멸종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공룡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절멸한 것은 운석에 두들겨 맞아서가 아니다. 충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구름이 오랜 시간 태양을 차단했고, 그 결과 왕성하게 광합성을 하던 거대한 식물들이 사라졌다. 생체 고분자 공급이 부족해지자 거대한 공룡들은 초식 공룡부터 서서히 굶어 죽어 간 것이다.
광합성은 빛에서 얻은 에너지로 생체 분자를 합성한다는 의미다. 울창한 숲에 들어가 거대한 나무를 보면 궁금한 생각이 든다. 식물은 햇빛과 물만 있으면 자란다. 자란다는 것은 새로운 생체 분자들이 계속 합성된다는 것이다. 생물 영역의 최소 입자는 원자라고 하였다. 즉 핵융합이나 분열을 통해 새로운 원자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음식을 먹지도 않는 식물의 원자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광합성
생체 분자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탄소, 산소, 수소, 질소다. 이 중 산소와 수소는 물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럼 탄소와 질소는 어디서 얻을까? 탄소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가져온다. 동물이 내뱉은 이산화탄소는 식물이, 식물이 내뱉은 산소는 다시 동물이 이용하는 순환이 공기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기에는 생명의 중요한 재료인 질소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식물은 공기 중의 질소를 바로 이용할 수 없다. 과자 포장을 질소 기체로 채우면 맛과 식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질소 두 개가 연결된 기체 분자가 너무 안정적이어서 과자를 구성하는 분자와 전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강력한 질소 원자의 결합을 깨려면 특별한 힘이 필요하다. 생명의 순환에 질소를 공급하는 역할은 뿌리혹박테리아 같은 세균이 한다. 이들은 질소 고정이라는 특별한 과정을 통해 공기 중의 질소 기체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유기 질소)로 바꿔준다.
한 세대를 끝낸 생물이 죽어 땅으로 돌아가면, 흙 속의 세균은 그 시체를 분해해서 증식한다. 이 과정에서 질소를 포함해 인이나 칼륨 등 생명 분자에 필요한 추가 요소들도 유기물의 형태로 전환되어 포함된다. 이것이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거름이다. 거름은 식물에 흡수된다. 그리고 변함없이 비추는 태양 빛에서 에너지를 얻는 광합성에 의해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르는 생명의 순환이 다시 시작된다.
다음 시간에는
태양 에너지가 생명 분자의 연결로 전환되고 이를 동물이 이용하는 구체적 과정을 알아보자.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