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나비는 1억년 전 북미에서 처음 출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스플래시
같은 나비목에 속하는 나비와 나방은 모습이 매우 비슷하지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몇가지 외형적 차이점이 있다. 우선 앉는 자세가 다르다. 나비는 날개를 접은 채, 나방은 날개를 편 채로 앉는다. 나비 더듬이는 곤봉 모양으로 끝이 뭉툭한 반면, 나방은 두꺼우면서 끝이 뾰족하다. 가장 큰 차이는 나비는 낮에, 나방은 밤에 주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약 1억년 전까지만 해도 나비 역시 밤의 곤충이었다. 나비가 야행성 나방 그룹에서 뛰쳐나와 낮 세상에 진출하게 된 배경엔 1억3천만년 전 등장한 꽃 피는 식물이 있다. 나방 가운데 의욕이 넘치는 일부 무리가 그때까지 미지의 세계였던 꽃 속의 꿀을 찾아 밤이 아닌 낮에 활동을 시작했다. 그 대신 나비는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도왔다. 과학자들은 2019년 대규모 DNA 분석을 통해 나비의 역사가 1억년 전 시작됐음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오늘날 1만9천여종에 이르는 방대한 나비 생태계 씨앗을 뿌린 이 선구자적 나비는 어디에서 처음 나타났을까? 그리고 이 나비를 꽃꿀의 달콤한 세상으로 처음 이끈 개화식물은 무엇이었을까?
미국 플로리다대와 예일대, 하버드대, 조지타운대가 중심이 된 국제공동연구진이 나비과의 100%, 나비속의 92%를 대표하는 90개국 2244종의 나비에서 수집한 DNA로 나비의 진화 가계도를 구축해 이 수수께끼를 풀었다.
연구진은 나비의 이동 경로와 먹이 패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으로 추적하면서 4차원의 퍼즐을 맞춰갔다.
연구진은 분석 결과 최초의 나비는 1억140만년 전 북미 중서부 지역에서 출현했으며, 콩과식물과 처음으로 공생관계를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공개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 발표했다.
과학자들이 2000종 이상의 DNA를 사용해 만든 나비의 진화 계통도. 네이처 생태와 진화
과학자들이 찾아내 진화의 세 가지 특징
전 세계에 서식하고 있는 나비의 유전자 및 숙주 식물과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엄청난 작업이었다. 연구진은 우선 기존 문헌은 물론이고 박물관 소장품, 인터넷 웹 페이지 등을 일일이 찾아 번역하고 디지털화해 공개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연구에 28개국 8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것은 이 작업이 얼마나 방대한 작업인지 잘 말해준다.
모든 자료가 다 소중하게 쓰였지만 그 중에서도 11개의 희귀한 나비 화석이 이번 분석의 핵심 역할을 했다. 얇은 날개와 미세한 털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된 이 화석들이 나비의 진화 가계도를 작성하는 데 눈금자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이 화석들을 통해 나비의 주요한 진화적 사건들이 언제 일어났는지 특정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종의 분화는 빠르게 진행됐으며, 어떤 나비들은 멀리 이동하고 어떤 나비들은 그자리에 머물렀으나, 이동 경로는 예상밖이었다.
최초의 나비가 출현했을 당시의 대륙 지형. 화살표로 표시된 곳이 나비의 고향이다.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제공
처음엔 남미로…베링 넘어 아시아로
우선 최초의 나비는 1억1400만년 전 북미 중서부 지역에서 출현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악기 중기는 육식공룡의 대명사인 티라노사우루스가 등장하기 전으로, 이 시기의 북미는 초식 공룡이 지배하고 있었다.
현재의 대륙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 이 시기에 북미 대륙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양분돼 있었다. 멕시코는 미국과 캐나다, 러시아까지 이어져 있었다. 북미와 남미를 이어주는 좁은 파나마지협(Isthmus of Panama)은 이때까지만 해도 바다였다. 하지만 나비가 건너가기엔 어렵지 않았다.
최초의 나비들은 처음엔 남쪽으로, 이어 북쪽을 통해 서쪽으로 서식지를 넓혀갔다. 남미 바로 옆엔 아프리카 대륙이 있었다. 하지만 나비는 북쪽으로 먼 길을 돌아 베링연육교(당시엔 바다가 아니었다)를 거쳐 아시아로 이동했다. 아시아대륙에 도착한 나비는 동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입구인 북동부(아프리카의 뿔)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나비들은 당시 수km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던 인도에도 당도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초대륙 판게아의 마지막 남은 부분인 남극과 여전히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연구진은 지구가 오늘날보다 따뜻했던 백악기 후기에 남극에서 번성했던 나비가 두 대륙이 분리되기 전에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나비가 처음 도착한 때는 7200만년 전이었고, 두 대륙이 분리된 때는 3400만년 전이었다.
서아시아서 4500만년 정체…마지막에 유럽 도착
그러나 이렇게 빠르게 이동하던 나비는 서아시아에 도착해선 무슨 이유에서인가 4500만년 동안 꿈쩍을 하지 않았다. 나비가 유럽에 도착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1700만년 전이었다. 나비가 왜 그랬는지는 이번 연구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그 영향으로 유럽은 지금도 다른 지역에 비해 나비 종이 많지 않다. 또 유럽 고유 종보다는 시베리아나 아시아에서도 볼 수 있는 종이 많다.
나비는 새로운 생물 종으로서 자리를 잡은 이후 숙주 식물을 따라 2500만년에 걸쳐 급속히 종의 분화를 이뤄갔다. 6600만년 전 공룡이 멸종할 무렵엔 오늘날에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비과 곤충이 출현했다.
큰공작송곳나비(Allora major)는 7200만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최초의 나비의 후손이다. The Conversation 제공
왜 콩과식물을 맨처음 선택했을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비 종의 3분의 2 이상은 한 가지 식물에만 알을 낳는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이 식물의 잎을 먹고 자란다. 이를 기주 식물(먹이 식물)이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은 나비도 대개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식물군 중에서 기주 식물을 택한다. 연구진은 각 나비과마다 좋아하는 식물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 결과 모든 나비과 곤충의 조상 기주 식물은 콩과식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콩과식물의 조상도 나비와 비슷한 1억년 전에 등장했으며, 콩과식물엔 곤충의 접근을 방해하는 화학물질이 적다. 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분포돼 있는 식물군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나비는 오랜 기간 콩과식물 공생관계를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콩과식물은 꽃가루 전파자로 벌과 파리, 벌새, 일부 포유류도 끌어들였고 나비도 다른 맛을 찾아 나섰다. 공동저자인 파멜라 솔티스 교수(식물학)는 “나비는 식물과 맺은 공생관계 덕분에 나방의 작은 분파에서 벗어나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곤충 집단 중 하나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수석저자인 아키토 가와하라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나비 큐레이터 겸 플로리다대 교수에게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작업이었다.
그는 이번 연구에 대해 “어렸을 적 미국자연사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큐레이터가 문에 붙여 놓은 나비 계통도 사진을 본 이후로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참여했던 연구 중 가장 어려웠던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59-023-02041-9
A global phylogeny of butterflies reveals their evolutionary history, ancestral hosts and biogeographic origins.
Nature Ecology & Evolution(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