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일부가 손상된 채 잡힌 문어 수면 중 몸서리치며 먹물 뿜어 포식자와 나쁜 기억 영향인 듯
문어가 포식자의 공격에 맞서 몸을 둥그렇게 말아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다. Mitch Helwig (ig:@mitchyonstj)
월드컵 등 세계의 주목을 끄는 큰 경기가 열릴 때면 호사가들이 문어에게 경기 결과를 알아맞히도록 하는 이벤트를 할 만큼 문어는 똑똑한 무척추 동물로 통한다.
실제로 문어는 지적 능력을 갖춘 동물이다. 생쥐 수준의 미로 학습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과 못되게 구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알고 놀이도 즐긴다. 또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색과 무늬를 자유롭게 바꾸는가 하면 조개껍데기로 은신처를 만들고 죽은 해면으로 서식지 굴에 문을 다는 등 도구도 사용할 줄 안다. 영국은 지난해 무척추동물이면서도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문어를 지난해 ‘지각 있는 존재’로 인정했다.
문어는 낮에는 굴이나 바위틈 같은 어두운 곳에 머물러 있다 밤에 밖으로 나와 활동한다. 그런데 조용히 잠을 자던 문어가 갑작스레 몸부림을 치면서 먹물을 내뿜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유가 뭘까?
잠을 자던 중 갑자기 몸부림을 치며 먹물을 내뿜는 문어. 동영상 갈무리
미국 록펠러대 연구진은 실험실 수족관의 관찰 카메라에 잡힌 이 이상한 행동을 분석한 결과, 문어가 악몽을 꿨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사전출판 논문 온라인 공유집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 문어는 2021년 연구진이 두족류의 인지 능력을 연구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다. 연구진은 플로리다 해안에서 잡은 이 문어에 영화 <컨택트>(원제 ‘어라이벌’)에 등장하는 외계인 중 하나인 코스텔로라는 이름을 붙이고 생태 관찰에 들어갔다. 수족관 속의 문어는 굴이 없어 하루 24시간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문어가 수면 중 비정상적 행동을 보이는 일련의 장면. 눈을 감고 조용히 잠을 자던 문어가 갑자기 온몸을 요동치다 먹물을 내뿜고는 몸을 돌돌 말아 방어 자세를 취했다. biorxiv.org
포식자에 공격 받았을 때 행동과 유사
어느날 아침 수족관 물이 문어가 내뿜은 먹물로 뿌여진 것을 한 연구원이 발견했다.
카메라를 돌려 확인해보니, 문어가 전날 밤 수족관 벽에 붙어 잠을 자던 중 갑자기 몸부림치면서 수족관 바닥으로 내려와 원뿔형으로 몸통을 불린 뒤 먹물을 내뿜는 장면이 포착됐다. 문어가 포식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 취하는 행동과 같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코스텔로에겐 악몽을 꿀 만한 사정이 있었다. 사람에게 잡혔을 당시 코스텔로는 8개의 팔 중 3개(앞팔 2개, 뒷팔 1개)가 손상된 상태였다. 연구진은 사람한테 잡히기 전 바다에서 포식자의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3대의 카메라에 녹화된 36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살펴본 결과, 비슷한 행동을 세 번 더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마르셀로 마그나스코 교수는 그러나 문어가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꿈을 꾸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잠을 자는 동안 문어의 피부색은 보통 옅어진다. 그러나 그 시간은 매우 짧다. 2021년 브라질 연구진의 참문어 관찰 연구에 따르면, 문어 피부색은 수면 중에 대략 30분마다 변하며, 지속 시간은 1~2분이다. 연구진은 이는 사람들의 렘수면 단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렘수면이란 잠 자는 동안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통 꿈을 꿀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악몽 꾼 것이라면 고도의 두뇌활동 증거
사람의 경우 렘수면이 일어나는지 여부는 머리에 전극을 부착해 확인한다. 하지만 문어에겐 그렇게 하기 어렵다. 또 설령 꿈을 꾸는 걸 확인하더라도 사람처럼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꿈인지도 알 수 없다.
2020년 다큐멘터리에서 알래스카 퍼시픽대 연구진은 문어가 잠자는 동안 보이는 일련의 피부색 변화가 게를 사냥할 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문어가 꿈을 꾸는 증거로 해석한 바 있다.
포식자에 대항하는 듯한 코스텔로의 반응은 모두 수면 중 피부색이 변한 직후에 일어났다. 연구진은 그러나 문어의 행동이 일종의 몽유병 또는 기면증, 발작이거나 노화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단 한 마리에서 본 몇가지 행동만으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만약 진짜로 문어가 이야기가 있는 꿈을 꾼 것이라면? 연구진은 그렇다면 문어가 고도의 두뇌 활동을 한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꿈을 꾸는 것으로 밝혀진 동물은 지금까지 개, 쥐, 오징어 등이 있다.
*논문 정보
doi: https://doi.org/10.1101/2023.05.11.540348
Abnormal behavioral episodes associated with sleep and quiescence in Octopus insularis: Possible nightmares in a cephalopod?
biorxiv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