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 번호 숫자가 클수록 체격도 커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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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인기 스포츠 가운데 하나인 미식축구에서 와이드 리시버를 담당하는 선수들은 규정에 따라 전통적으로 80번대 등번호를 달았다. 그러나 20년 전 이런 규정이 폐지되자 더 낮은 등번호를 선호하는 선수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미국의 스포츠 매체 이에스피엔(ESPN)은 그 이유를 추적한 기사에서 “2019년의 경우 와이드 리시버의 거의 80%가 10번대 번호를 선택했다”며 “이는 선수들이 숫자가 낮은 것이 더 빠르고 날렵해 보이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심리학자들의 실험 결과, 그런 생각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운동선수들의 유니폼 등번호 숫자에 따라 선수의 몸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공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등번호 숫자가 크면 체격도 커 보이고, 숫자가 작으면 상대적으로 날씬해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37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포즈는 똑같지만 피부색과 유니폼 색상, 체격이 각기 다른 미식축구 선수들을 그린 컴퓨터 삽화를 보여줬다. 이들이 입은 유니폼에는 두 종류의 등번호가 부착돼 있었다. 하나는 10~19번, 다른 하나는 80~89번이다.
설문 응답자들은 10~19번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80~89번 유니폼을 입은 선수보 더 호리호리해 보인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UCLA 제공
17번과 71번의 심리적 효과 차이는?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화면을 통해 한 번에 한 명씩 선수 삽화를 보여주면서 그 선수가 얼마나 날씬하다고 생각하는지 답변해줄 것을 요청했다, 똑같은 선수에 대해 한 번은 10~19번, 또 한 번은 80~89번의 등번호를 단 그림을 보여줬다. 유니폼의 색상이나 크기, 선수의 피부색이 다양했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똑같은 선수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은 같은 선수라도 숫자가 작은 등번호를 착용했을 때 그 선수의 체격을 더 호리호리하게 생각했다. 연구를 이끈 라단 샴스 교수(인지과학)는 “생각하는 체격의 차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놀라운 발견이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어 147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다시 한 번 진행했다. 이번에는 17번과 71번, 또는 19번과 91번처럼 똑같은 숫자를 사용했지만 배열 순서가 다른 등번호를 교대로 보여줬다.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착각의 원인이 1, 8, 9와 같은 아라비아숫자의 글자가 차지하는 면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헬스장에 가서 숫자가 큰 역기가 더 무거운 것을 볼 때마다 우리 뇌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뇌 안에 각인시킨다. 픽사베이
샴스 교수는 “우리의 뇌는 우리가 경험하는 거의 모든 것을 추적한다”며 “여기에는 모든 종류의 통계적 규칙이나 질서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대상 물체의 크기와 숫자 사이의 연관성도 이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는 것이다.
이번 발견은 이전에 학습된 숫자와 크기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이 체격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샴스 교수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사전 지식에 크게 영향 받는다”며 “헬스장에 가서 숫자가 큰 역기가 더 무거운 것을 볼 때마다 우리 뇌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뇌에 각인시킨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87474
Big number, big body: Jersey numbers alter body size perception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