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는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주요한 요인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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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와 함께 급증하는 질환 가운데 하나가 치매다. 65살 이후 노인들의 경우 5살 단위로 치매 유병률이 약 2배씩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치매 환자 수는 5500만명이다. 보건기구는 3초에 한 명꼴로 치매 환자가 늘어 한 해 1천만명의 치매 환자가 새로 생겨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2021년 현재 치매 환자 수는 88만명이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치매는 본인과 가족의 삶의 질 악화도 문제이지만 치료와 돌봄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도 만만찮다. 이미 관련 비용이 전 세계 지디피의 1%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더욱 큰 문제는 현재로선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미 식품의약국(FDA)이 처음으로 치매 치료제의 시판을 승인했지만, 이 약의 효능은 인지력 저하를 35% 늦춰주는 데 그친다. 부작용도 만만찮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인지능력을 유지해줄 수 있는 건강 생활 습관이나 여가 활동을 통해 치매 발병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양한 여가 활동은 뉴런과 시냅스의 성장을 자극하고 삶의 질을 높여 인지능력을 강화 또는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떤 여가 활동이 치매 예방에 가장 좋은 효과를 낼까?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대 연구진이 노화건강연구에 참여한 70살 이상 오스트레일리아인 1만여명의 10년치(2010~2020년) 데이터를 토대로 19가지의 여가 활동과 치매의 관련성을 조사한 결과를 미국의사협회가 발행하는 공개학술지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컴퓨터 사용과 십자말풀이가 사교 활동이나 뜨개질, 그림 그리기보다 치매 예방에 더 좋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평가한 여가 활동은 크게 여섯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문해력 활동(성인 교육 수업 듣기, 컴퓨터 사용, 편지나 일지 쓰기), 둘째는 정신 활동(퀴즈 및 십자말풀이, 카드, 체스 놀이), 셋째는 창의적 취미 활동(목공, 뜨개질, 그림 그리기), 넷째는 수동적 활동(뉴스 보기, 독서, 음악 감상), 다섯째는 대인 활동(가족, 친구와의 교류), 여섯째는 외출 활동(도서관, 영화관, 카페, 식당)이다.
연구진은 성별, 나이, 학력, 사회경제적 지위, 흡연, 음주, 비만, 기존 질환 등의 변수가 미칠 영향은 제외하고 19가지 여가 활동과 치매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일상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카드 놀이와 그림 그리기, 어떤 게 더 나을까
그 결과 컴퓨터 사용, 일지 쓰기 같은 문해력 활동의 치매 예방 효과가 가장 높게 나왔다. 이런 활동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11% 낮았다. 연구진은 문해력 활동의 경우 새로운 정보의 처리와 저장, 손가락 운동, 인터넷 검색 등이 뇌를 자극해 신경생물학적 노화를 늦추고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 8월 발표된 일본 도호쿠대 연구진의 논문과도 일치한다.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에 수록된 2만8천여명의 2006~2014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성인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은 5년 후 치매 위험이 19% 낮아진 걸 확인했다.
이어 체스나 카드놀이, 십자말풀이 같은 정신 활동의 치매 예방 효과가 9%로 그다음이었다. 연구진은 이런 정신 활동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고 복잡한 전략과 문제 해결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기억력, 계산력, 실행력, 주의력, 집중력 등 다양한 인지 영역이 동원되는 점이 치매 예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봤다.
그다음은 목공이나 뜨개질, 그림 그리기 같은 창의적 취미 활동과 독서 같은 좀 더 수동적인 활동이었다. 이들 활동은 치매 위험을 7% 가까이 줄여줬다.
이런 결과는 학력 수준이나 사회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남성과 여성 간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뜨개질 같은 창의적 취미 활동도 치매 예방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머리 속 지식을 활용하는 활동이 핵심
반면 대인 활동의 범위나 영화관, 식당 같은 장소로의 외출 빈도는 치매 위험 감소와 관련이 없었다. 연구진은 “이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라며 이번 연구 참가자들이 인지능력이 좋고 사회적으로 활동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강력한 대인관계의 인지적 이점이 덜 분명하게 나타났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조앤 라이언 교수(공중보건 및 예방의학)는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에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수동적인 여가 활동보다 치매 위험 감소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며 “그러기 위해선 활동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특히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언 교수는 “문해력과 암기, 문제 해결, 의사 결정 같은 정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해주는 마법의 약은 아닐지라도, 이런 활동이 건강한 인지력을 오랫동안 유지하도록 해줄 가능성이 가장 큰 활동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사람과의 교류는 치매 위험과 명확한 연관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이것도 역시 정신 건강에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논문 정보
doi:10.1001/jamanetworkopen.2023.23690
Lifestyle Enrichment in Later Life and Its Association With Dementia Risk. JAMA Network Open(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