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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사람 세포로 만든 로봇이 손상된 조직을 복구했다

등록 2023-12-05 09:30수정 2023-12-05 11:12

섬모 이용해 이동하며 세포 성장 자극
자기 세포 이용한 맞춤형 치료에 희망
연구진이 기관의 상피세포를 배양해 만든 세포로봇 ‘앤스로봇’. 노란색이 섬모다. 터프츠대 제공
연구진이 기관의 상피세포를 배양해 만든 세포로봇 ‘앤스로봇’. 노란색이 섬모다. 터프츠대 제공

손상된 신경 조직을 복구할 수 있는 인체 세포 로봇이 개발됐다.

장차 환자가 자신의 세포로 만든 로봇을 이용해 손상된 조직을 재생시키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기초기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터프츠대와 하버드대 공동연구진은 사람의 섬모 세포들로 이뤄진 앤스로봇(Anthrobot)이 손상된 조직을 치유하는 걸 확인해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앤스로봇은 인류를 뜻하는 앤스로(Anthro)와 로봇(robot)의 합성어다. 사람 머리카락 크기부터 연필심 끝 크기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이 다세포 로봇은 자가조립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번 연구는 4년 전 발표한 최초의 세포로봇 ‘제노봇’의 후속 작업이다. 제노봇은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배아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얻은 심장 세포와 피부 세포를 결합해 만들었다. 제노봇은 심장 세포의 수축-이완과 피부세포의 작은 섬모를 이용해 직선이나 곡선 형태로 이동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수명은 10일이었다.

그러나 양서류의 세포로 만든 제노봇을 인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면역체계가 이를 거부한다. 제노봇은 또 연구진이 직접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줘야 했다.

세포로봇의 모양에 따라 섬모(노란색)가 난 위치가 각각 다르다. 터프츠대 제공
세포로봇의 모양에 따라 섬모(노란색)가 난 위치가 각각 다르다. 터프츠대 제공

섬모 모양·위치 따라 이동 형태 달라져

연구진은 이에 따라 인간 세포를 이용한 세포로봇 개발에 들어갔다.

표면에 섬모가 있는 인체의 기관 상피세포를 첫 실험 대상으로 선택했다. 섬모는 앞뒤로 흔들거리며 작은 입자들이 폐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바깥으로 밀어낸다.

연구진은 우선 기증받은 기관 상피세포를 인체 기관과 비슷한 환경의 젤 속에서 2주간 배양해 수백개의 세포로 이뤄진 구체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 구체는 섬모가 안쪽을 향해 있어 섬모를 이용한 이동이 불가능했다. 연구진은 점성이 덜한 특수용액에서 1주간 더 세포를 배양하면서 구체 안쪽에 있던 섬모를 바깥쪽으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섬모는 예상대로 배를 젓는 노와 같은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100~1000개의 세포로 이뤄진 30~500㎛(1㎛=100만분의 1m) 크기의 세포로봇이 직선이나 원, 호 등 여러 형태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런 차이는 배양액의 점성 등에 따라 섬모의 모양과 크기,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어떤 로봇은 공 모양에 표면 전체가 섬모로 완전히 덮여 있었고, 어떤 로봇은 럭비공 모양에 섬모가 불규칙하게 나 있었으며, 어떤 로봇은 한쪽 면만 섬모로 덮여 있었다. 세포로봇의 이동 속도는 초속 5~50㎛였다.

앤스로봇은 세포들의 자가조립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사진은 다양한 크기의 앤스로봇들. 터프츠대 제공
앤스로봇은 세포들의 자가조립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사진은 다양한 크기의 앤스로봇들. 터프츠대 제공

손상된 조직 긁어 세포 성장 촉진

연구진은 다음 단계로 이 로봇을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우선 신경세포를 금속막대로 긁어 상처를 냈다. 이어 로봇들이 서로 짝을 지을 수 있도록 작은 접시에 가둬 더 큰 슈퍼봇으로 만들었다. 슈퍼봇을 만들면 상처 부위에 접근하는 게 더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슈퍼봇은 주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로봇들로 구성했다. 로봇이 상처 부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어 슈퍼봇을 손상된 신경 조직 위에 올려놓고 관찰한 결과, 놀랍게도 3일 안에 신경 조직이 완전히 치유된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슈퍼봇이 손상된 조직을 긁으면서 세포 성장을 촉진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로봇들은 45~60일 후 자연적으로 생분해됐다.

슈퍼봇(녹색)이 손상된 신경조직 부위(빨간색)를 가로질러가고 있다. 참조 막대는 200㎛이다. 터프츠대 제공
슈퍼봇(녹색)이 손상된 신경조직 부위(빨간색)를 가로질러가고 있다. 참조 막대는 200㎛이다. 터프츠대 제공

스스로 자가조립…노인세포도 이용 가능

논문 공동저자인 터프츠대의 기젬 구무스카야 박사과정 연구원(발생생물학)은 “로봇 세포가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는데, 유전자 변형 없이도 이러한 치유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핀셋 등으로 모양을 만들어줘야 하는 제노봇과 달리 앤스로봇은 스스로 자가조립하며 배아 세포 대신 성체 세포, 심지어 노인의 세포도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앞으로 인체 조직으로 만든 세포로봇이 유전공학의 도움 없이도 동맥을 청소하거나 손상된 신경을 복구하고, 박테리아나 암세포를 인식하거나 약물을 전달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나아가 여러 세포 유형을 결합하면 건축과 우주 탐사에 이용할 수 있는 바이오봇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연구는 신경 질환과 척수 손상 치료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생명공학기업 어스토니싱 랩스(Astonishing Labs)의 지원을 받았다. 이 회사는 앞으로 화상 치료에 이 세포로봇을 활용할 계획이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02/advs.202303575

Motile Living Biobots Self-Construct from Adult Human Somatic Progenitor Seed Cell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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