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낮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과학기술, 인간을 만나다' 포럼 참석자들이 과학기술과 인간관계의 문학적, 역사적, 철학적 측면에 대한 발제내용을 듣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과학기술, 인간을 만나다’ 포럼
자연에 대한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자연을 자유로이 조작하는 방향으로 치달아온 과학기술이 문학·철학·역사·예술 등과의 연속 대화를 제안하고 나섰다.
그동안도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 예술계와의 만남의 자리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추진되는 대화는 국가 과학기술 정책 수립과 과학문화 보급을 책임지고 있는 과학기술부와 과학문화재단이 직접 나서 마련한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그 첫 순서로 27일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과학기술, 인간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의 첫 손님으로는 최근 최근 스스로 ‘존재의 위기’를 선언하고 사회에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인문학’이 초대됐다.
“과학기술 부작용은 인문학 실패 탓”=인문학은 남을 돌아보기 어려운 곤궁한 처지에 빠져 있는 상황이지만 ‘인간 내면에 투영된 과학기술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초청자의 기대에 충실히 응답했다. 인문학을 대표해 나온 인문학자들의 강연과 주제발표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빠지지 않았다.
주제발표에 앞선 기조강연에서 박이문 연세대 철학과 특별초빙 교수는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거의 무제한적 힘을 부여했고, 그에 따라 인간은 자연을 무자비하게 약탈해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지구와 인간 자신의 물리적 조건까지도 근본적 차원에서 위협하기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올해 일흔여섯의 이 노철학자는 하지만 지구와 인간을 이와 같은 위기에 빠뜨린 책임의 원천을 과학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바쳐온 인문학에서 찾았다. “위기의 원천과 책임은 과학적 자연관이나 과학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무지와 비합리적인 욕망에 있으며, 문제의 핵심은 놀라운 과학기술로 자연에 군림하게 된 인간이 자신이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의 실패를 비판하면서도 그 원인과 해법을 인문학에서 찾기는 다른 주제발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과학기술과 인간의 행복’을 주제로 발제한 엄정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과학기술로 인한 자연의 근원적 균형의 파괴와 핵전쟁보다 더 심각한 위협이 될지 모르는 환경파괴 앞에서 어떻게 인간의 행복이 추구될 수 있을지 비관적”이라면서도 “지적 호기심의 발로인 과학적 탐구를 막을 수는 없으며, 과학기술의 긍정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한 강력한 자아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내희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도 ‘과학기술, 글쓰기, 주체 형성’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인간 창조와 복제, 사이보그(인조인간)까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게 한 과학기술의 가공할 발전은 인간의 존재 양식, 인간의 의식과 지각 방식 등 인간의 이해와 관련한 새로운 질문을 요구한다”며 인문학적 과제를 강조했다. “과학기술과 인문학 소통에서 활로를”=인문학자들의 발제를 듣고 난 뒤 이어진 과학자들의 토론도 과학기술 자체보다는 인문학과 과학의 소통을 통한 공동 발전과 그것을 위해 인문학이 할 일에 초점이 모아졌다. 최근의 ‘인문학 위기론’을 의식한 것이 역력한 이들 과학자의 발언은 참석자들에게 마치 ‘인문학 구하기 결의대회’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병기 서울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과학기술이 야기한 문제들은 과학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속성들이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환경에서 새롭게 표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탐구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며 “그렇게 하는 것이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인문학 위기 타개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도 “그동안 과학기술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너무 자기 학문의 틀에 갇혀 ‘인간’을 잊어버리거나, 인간을 생각한다고 해도 보편화·규정화·계량화돼 개성이 사라진 인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문제”라며 “모든 학문이 ‘한 인간’의 문제로 돌아와 인간 중심으로 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긴밀한 교감과 인간 중심 통합을 위한 방안으로 민 교수와 이 교수는 공통적으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적 교육을 강조했다. 맹광호 가톨릭대 의대 교수도 “황우석 전 교수 사건에서 보듯이 과학기술은 이제 정치와 기업의 손에 좌우돼, 과학기술인의 노력만으로는 과학기술이 인간과 만나기 어렵다”며 “인문학자들이 국가 전체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의료 인문학’과 같은 과학 관련 응용 인문학 발전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번과 같은 형식의 포럼은 10월에 ‘과학기술, 예술을 만나다’, 11월에 ‘과학기술, 사회를 만나다’를 주제로 두 번 더 열릴 예정이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과학기술과 인간의 행복’을 주제로 발제한 엄정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과학기술로 인한 자연의 근원적 균형의 파괴와 핵전쟁보다 더 심각한 위협이 될지 모르는 환경파괴 앞에서 어떻게 인간의 행복이 추구될 수 있을지 비관적”이라면서도 “지적 호기심의 발로인 과학적 탐구를 막을 수는 없으며, 과학기술의 긍정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한 강력한 자아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내희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도 ‘과학기술, 글쓰기, 주체 형성’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인간 창조와 복제, 사이보그(인조인간)까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게 한 과학기술의 가공할 발전은 인간의 존재 양식, 인간의 의식과 지각 방식 등 인간의 이해와 관련한 새로운 질문을 요구한다”며 인문학적 과제를 강조했다. “과학기술과 인문학 소통에서 활로를”=인문학자들의 발제를 듣고 난 뒤 이어진 과학자들의 토론도 과학기술 자체보다는 인문학과 과학의 소통을 통한 공동 발전과 그것을 위해 인문학이 할 일에 초점이 모아졌다. 최근의 ‘인문학 위기론’을 의식한 것이 역력한 이들 과학자의 발언은 참석자들에게 마치 ‘인문학 구하기 결의대회’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병기 서울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과학기술이 야기한 문제들은 과학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속성들이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환경에서 새롭게 표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탐구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며 “그렇게 하는 것이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인문학 위기 타개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도 “그동안 과학기술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너무 자기 학문의 틀에 갇혀 ‘인간’을 잊어버리거나, 인간을 생각한다고 해도 보편화·규정화·계량화돼 개성이 사라진 인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문제”라며 “모든 학문이 ‘한 인간’의 문제로 돌아와 인간 중심으로 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긴밀한 교감과 인간 중심 통합을 위한 방안으로 민 교수와 이 교수는 공통적으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적 교육을 강조했다. 맹광호 가톨릭대 의대 교수도 “황우석 전 교수 사건에서 보듯이 과학기술은 이제 정치와 기업의 손에 좌우돼, 과학기술인의 노력만으로는 과학기술이 인간과 만나기 어렵다”며 “인문학자들이 국가 전체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의료 인문학’과 같은 과학 관련 응용 인문학 발전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번과 같은 형식의 포럼은 10월에 ‘과학기술, 예술을 만나다’, 11월에 ‘과학기술, 사회를 만나다’를 주제로 두 번 더 열릴 예정이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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