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과학기술 교류의 방향과 북한 과학의 현주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합성섬유 ‘비날론’의 발명자이자 북한에서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월북 화학자 리승기(1905~1996) 박사의 생전 모습과 북한에서 발간되는 대표적인 과학기술 학술지의 표지와 논문들. 한겨레 자료사진, 코리아콘텐츠랩 제공
서해 석유탐사 시너지효과 기대…북, 풍력발전에 큰 관심
과학자 교류 확대 기대속 “민간 넘어 정부차원 발전할 때”
과학자 교류 확대 기대속 “민간 넘어 정부차원 발전할 때”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은 앞으로 해양자원, 에너지, 보건위생이라는 세 분야에서 활발하게 추진되리라 예상합니다. 오래 전부터 민간교류를 하며 남북 과학자들이 상당한 공감대를 이룬 분야지요.” 1991년부터 남북 과학기술 교류 사업을 벌여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과총)의 이욱환 기획정책실장은 17일 조심스럽게 이런 전망을 내놓으며 “이젠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이 정부 차원으로 발전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엔 북한이 큰 관심을 보이는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 분야의 학술 교류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10·4 남북 정상 선언’ 이후 남북 과학기술 교류에 대한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남북 교류 사업으로 추진된 자연사박물관 교류, 북한쪽 서해안의 석유자원 탐사, 풍력 에너지 개발, 백두산 천지의 퇴적층 연구 사업들도 교류 대상 후보로 탄력을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해양자원은 남북이 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허식 해양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북한과학기술연구〉(2007)에서 북한 쪽 서해안의 서한만 분지는 백악기 신생대 제3기 지층이어서 석유 부존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 여러 차례 ‘유징’이 확인됐으면서도 그동안 본격 탐사와 개발이 되지 않아, 남북한이 협력하면 큰 실익을 얻을 분야로 꼽았다.
풍력 발전은 북한 쪽이 큰 관심을 나타내는 분야다.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는 북한은 전략물자 기술이전 금지 대상인 태양에너지 기술보다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풍력 에너지에 큰 관심을 쏟아왔다. 이욱환 실장은 “생산단위나 주거단위별로 송배전 시설 없이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만들어 쓰는 풍력 발전에 북한이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충렬 인하대 교수는 최근 김책공업대학을 중심으로 한 풍력 발전 연구성과가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자연사 분야에서는 최근 계룡산자연사박물관 조한희 관장이 여러 차례 방북해 김일성종합대학과 협력·제휴 방안을 논의해왔다. 조 관장은 “민족 동질성 회복에 과학문화 교류가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성과가 있다”고 말했다. 또 기생충이나 말라리아 같은 보건위생 분야의 주제들도 남북 과학기술 교류의 실질적 현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백두산도 남한 과학자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다. 이 분야에선 진재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이 3년 전부터 백두산 지질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북한 쪽 협력 연구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백두산 천지의 퇴적층을 통해 지구환경 변화를 살피고 향후 장기 변화를 예측할 수 있으며, 특히 동북아 기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백두산의 화산 활동 가능성에 관심이 커 협력 연구를 모색해 왔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남북 교류에 관여해 왔던 이들은 남북 과학자 교류가 새 단계로 도약할지 조심스런 기대를 나타냈다. 송상용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과학기술분과 회장은 “주로 남이 북을 도와야 하지만 북에서 배울 점도 아주 없지는 않다”며 “먼저 북한 과학기술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어떤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한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 오랫동안 ‘씨감자’의 남북 공동연구를 모색하고 최근엔 남북 자생식물 공동조사를 제안해온 정혁 자생식물개발사업단장은 “개성 같은 곳에 ‘한민족과학기술원’ 같은 기관을 작게라도 세워 일단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한편, 2003년부터 북한 과학기술 학술지 40여종이 코리아콘텐츠랩의 전자도서관(kpjournal.com)을 통해 남한에서도 볼 수 있게 되면서 북한 논문들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북한 논문과 정보는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nktech.net)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대성 코리아콘텐츠랩 대표는 “지난해 핵실험 때처럼 특별한 쟁점이 부각되는 시기엔 관련 주제 논문들의 조회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며 “북한의 자력갱생식 아이디어나 자연자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 〈발명공학〉 〈조선약학〉 같은 학술지의 열람이 잦다”고 전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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