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 이후 2년, 국내 과학계의 연구윤리 의식은 어디에 서 있을까? 지난 16일 연구윤리의 현황과 쟁점을 다시 돌아보는 과학학 분야의 ‘범학회 심포지엄’이 열렸다. 사진 한국과학철학회 제공
과학기술계 심포지엄 ‘연구윤리 3가지 쟁점’
‘황우석 교수의 연구부정 사건’이 있은 지 2년이다. 그동안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 과학계에서도 연구윤리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고 ‘연구진실성위원회’ 같이 전에 없던 기구나 연구윤리 지침들이 대학, 학회, 연구소별로 잇달아 만들어졌다. 과학기술부는 최근 <실천 연구윤리>라는 두툼한 책자를 만들어 인터넷(most.go.kr)을 통해 나눠주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다시 연구윤리의 현황과 남은 쟁점들을 논의하는 ‘범학회 심포지엄’이 한국과학기술학회·과학사학회 등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윤리를 생각하는 연구’의 분위기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이제 실험실을 민주화해야 하고, 내부 고발자의 신분보장을 강화하며, 연구윤리를 관리할 전담기구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들이 새로운 쟁점으로 제기됐다.
#1. 민주적 실험실 문화에 눈을 돌리자
“황우석 사태의 원인은 공장 조립라인 같은 실험실의 ‘칸막이 문화’에 있었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과학)는 “실험실은 연구와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할 장인데 국내 실험실의 지도교수들은 연구 ‘진도’ 관리는 잘 하지만 연구의 질 향상이나 부정행위 예방 노력엔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명과학 분야 연구원과 학생 46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실험실에선 의사소통의 부족과 갈등이 심각하며 교수들도 이를 풀려는 노력이 소홀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응답자 47%가 ‘우리 실험실에 갈등이 있다’고 답했다. 갈등의 원인은 교수의 불공정한 배려와 부당한 처우, 선후배의 위계질서, 연구원들의 지나친 경쟁의식, 칸막이식 실험실 운영 등이 지적됐다. 황 교수는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방장 문화’라는 게 실험실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조사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수가) 학생을 제자로 여기기보다 소모품으로 여긴다” “선배가 말 잘 듣는 후배의 잘못은 눈감아주지만 그렇지 못한 후배에겐 좋지 않게 평가하겠다고 위협해 파벌 분위기를 만든다” “연구원과 학생 사이엔 신분 차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 심각하다”고 전해 번듯한 실험실 이면의 위태로움을 보여주었다. 이현숙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실험실 문화가 잘못되면 연구부정도 실험실에서 대를 이어 저질러진다”며 “창의적 연구를 위해서도 위계 없이 소통하는 ‘민주적 실험실’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부정 제보자에 배신자 ‘딱지’…인식 전환 먼저
#2. 연구부정 제보자를 보호하라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는 황우석 사건의 제보자 ㄱ씨가 그동안 겪은 어려움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ㄱ씨는 일부 언론 보도로 신분이 드러나자 파면의 위협에 못이겨 당시 다니던 병원에서 사직해야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황우석 지지자들의 협박을 피해 시민단체의 보호를 받으며 오랫 동안 도피 생활을 했다. 최근에야 직장을 얻어 겨우 안정을 찾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진실을 위해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제보를 했건만 그한테 돌아온 건 실직과 사회적 냉대 뿐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과학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러 설문조사 결과는 연구부정 제보에 대한 연구자의 소극적 인식을 보여준다. 지난 5월 연구자 63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부당한 논문 저자 표시(52.8%)와 업적 부풀리기(47.2%)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대처는 미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의 한 조사 결과에서 ‘연구부정의 고발자’가 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응답은 20%에 머물렀다. 김 교수는 “특히 조직의 배신자로 보는 조직 내부의 시선이 내부 제보자한테는 가장 큰 고통”이라며 “이런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월 제정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과기부 훈령)은 법률이 아닌 훈령이어서 제보자의 권리 보호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기존 직장을 떠나려는 제보자한테는 직장 알선이나 금전 보상 같은 현실적 포상을 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실성’ 확보 위해 연구윤리 전담기구 필요 #3. 연구윤리 전담기구로 한걸음 더… 지난 2년은 ‘연구진실성’이라는 새 말이 국내에서도 익숙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달까지 전국 72개 대학에서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정부출연연구기관 30곳과 연구관리전문기관 9곳에도 이런 위원회가 생겼다. 하지만 개선할 점은 남아 있다. 조진호 서울대 연구처 전문위원은 “연구윤리 업무는 대부분 대학에서 보직자들이 참여해 대학 행정업무의 하나로 수행될 뿐”이라며 “연구윤리 업무의 독립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사)는 국내 과학학 연구자와 연구윤리 관계자 171명의 설문조사를 분석해 연구윤리를 논의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모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협의회나 연구회, 정보센터 같은 자유로운 형식의 모임을 통해 연구윤리의 현황을 조사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소식지를 발간하는 등의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과학철학회 제공
실험실 갈등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가장 심각한 연구부정 행위는 무엇입니까.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는 황우석 사건의 제보자 ㄱ씨가 그동안 겪은 어려움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ㄱ씨는 일부 언론 보도로 신분이 드러나자 파면의 위협에 못이겨 당시 다니던 병원에서 사직해야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황우석 지지자들의 협박을 피해 시민단체의 보호를 받으며 오랫 동안 도피 생활을 했다. 최근에야 직장을 얻어 겨우 안정을 찾고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진실을 위해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제보를 했건만 그한테 돌아온 건 실직과 사회적 냉대 뿐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과학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러 설문조사 결과는 연구부정 제보에 대한 연구자의 소극적 인식을 보여준다. 지난 5월 연구자 63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부당한 논문 저자 표시(52.8%)와 업적 부풀리기(47.2%)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대처는 미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의 한 조사 결과에서 ‘연구부정의 고발자’가 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응답은 20%에 머물렀다. 김 교수는 “특히 조직의 배신자로 보는 조직 내부의 시선이 내부 제보자한테는 가장 큰 고통”이라며 “이런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월 제정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과기부 훈령)은 법률이 아닌 훈령이어서 제보자의 권리 보호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기존 직장을 떠나려는 제보자한테는 직장 알선이나 금전 보상 같은 현실적 포상을 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실성’ 확보 위해 연구윤리 전담기구 필요 #3. 연구윤리 전담기구로 한걸음 더… 지난 2년은 ‘연구진실성’이라는 새 말이 국내에서도 익숙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달까지 전국 72개 대학에서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정부출연연구기관 30곳과 연구관리전문기관 9곳에도 이런 위원회가 생겼다. 하지만 개선할 점은 남아 있다. 조진호 서울대 연구처 전문위원은 “연구윤리 업무는 대부분 대학에서 보직자들이 참여해 대학 행정업무의 하나로 수행될 뿐”이라며 “연구윤리 업무의 독립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사)는 국내 과학학 연구자와 연구윤리 관계자 171명의 설문조사를 분석해 연구윤리를 논의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모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협의회나 연구회, 정보센터 같은 자유로운 형식의 모임을 통해 연구윤리의 현황을 조사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소식지를 발간하는 등의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과학철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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