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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한국 과학계, 자정 통해 전진할 것”

등록 2008-03-19 20:35

카이스트 연구진실성위 조사 주역 서연수 교수
카이스트 연구진실성위 조사 주역 서연수 교수
카이스트 연구진실성위 조사 주역 서연수 교수
“논문 부정이 늘어나는 건 불가피하다고 봐요. 과학이 발전하고 더 많은 연구논문이 발표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연구 부정을 피할 순 없겠지요. 그래서 중요한 게 과학자 사회의 자정 능력이고, 이런 자정을 통해 과학은 신뢰를 잃지 않고 계속 전진할 겁니다.”

지난 17일 연구실에서 만난 서연수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는 지난달 12일 이후 이어진 김태국 교수 연구팀의 논문 조작 조사활동 탓에 지친 기색을 보이면서도 “연구진실성위원회가 국내에 도입된 이래 한국 과학계의 자정 능력을 보여주는 사실상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논문 조작이 벌어진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논문 조작을 숨김없이 조사하고 공개한 건 너무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말을 절감했던 시간”이라고 되뇌었다.

‘과학의 상업화’ 내몰려 실험실 일탈…“연구부정 증가 불가피”
“촉망받던 동료 ‘추락’ 안타깝지만 정직이 최선의 정책 절감”

카이스트 연구진실성위원회(위원장 양현승 연구처장, 조사위원장 조철오 교수)는 지난 13일 ‘매직기술’에 관한 김 교수 연구팀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과 2006년 <네이처 케미컬바이올로지> 논문이 조작됐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와 진술을 공개했다. 매직기술이란 살아 있는 세포 안에 자성 나노입자를 넣어 표적 단백질을 추적하는 새로운 신약개발 기술로, 김 교수 연구팀이 이런 이름을 붙이고 논문 두 편에다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매직기술을 재현할 수 없다’는 논문의 공저자 이용원(씨지케이 기술이사·박사과정)씨의 제보가 학교 보직교수를 통해 처음 전해진 건 지난달 12일. 생명과학과 교수들은 당시만 해도 논문 조작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조사팀장을 맡은 서 교수는 “매직기술은 있지만 상용화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사 첫날, 실험 노트나 현미경 이미지의 원본 파일이 없다는 김 교수 얘기를 듣고는 김 교수가 어떻게 의혹을 방어할지 걱정됐을 정도였으니까요.”

조사활동은 지난해 2월 제정된 ‘연구진실성위원회 운영 규정’에 따라 진행됐다. 학과 위원회가 구성되고, 김 교수의 연구실이 폐쇄됐으며 관련 자료들이 수집됐다. 조사위원 5명과 실무자 4명의 밤낮 없는 조사·정리 작업이 이어졌다. 공저자들과 학생들을 불러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21일쯤 김 교수 실험실이 이상한 방식으로 운영됐음을 보여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유독 두 논문의 실험 때만 김 교수와 원재준 박사(재미), 이용원씨의 ‘3인 회의’가 운용돼 다른 학생들은 연구의 진행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더군요.”


조작을 밝혀낸 건 굉장한 첨단 기법이 아니었다.

논문에 인용된 실험 데이터들을 꼼꼼히 살폈다. 조사위원들은 잠시 귀국한 원 박사를 불러 실험에 쓴 시약이나 나노입자의 구입 기록은 있는지, 당시 실험실엔 세포분류기(셀 소터) 같은 장비들이 없었는데 인간의 능력으로 어떻게 논문의 실험이 진행될 수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충격적 고백이 이어졌다. 서 교수는 “갖고 있던 세포를 섞어 현미경 사진을 찍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귀를 의심했다.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느냐며 세 번이나 다시 물어봤을 정도”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교수들 사이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촉망받던 동료 김 교수의 ‘추락’이 안타까웠고 실험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발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김 교수 팀은 ‘6번’이라 불린 물질을 가지고서 실험했고 노화 억제 기능을 규명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그것만 발표했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논문이 됐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6번 물질이 김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시절에 찾아낸 것이라 하버드대학의 소유물이란 점이었다. 어느 순간에 6번 물질의 실험 데이터는 김 교수가 2004년 7월 세운 벤처기업 ‘씨지케이’의 이름을 붙인 신물질 ‘시지케이733’의 실험 데이터로 둔갑했다. ‘과학의 상업화’로 내몰려 특허와 벤처투자 같은 화려한 유혹을 좇던 학교 실험실의 일탈은 아니었을까.

서 교수는 “매직기술이 연구자의 착각이었는지, 연구팀의 기대와 믿음이었는지, 아니면 한때 실제로 구현됐는지는 실험 노트와 원본 파일이 없는 지금 알 도리는 없다”며 “하지만 이번 조사활동의 목적은 매직기술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논문 조작 여부에 대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명예 추락의 혹독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카이스트 교정에서 ‘과학은 자정 능력을 통해 전진한다’는 그의 낙관을 들을 수 있었던 건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진다. 서 교수는 “세계 과학계가 한국의 진실성위원회 활동과 운영지침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대전/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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