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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울프 네바스, 세포변화 실시간 시각화로 ‘신약 혁명’

등록 2008-06-04 19:20

에이즈 바이러스(HIV·화살표)가 사람의 정상 면역 세포에 접근해 세포막을 뚫고 세포 안으로 침입한다. 침투한 바이러스는 리보핵산(RNA)의 유전정보로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만들며 증식해 세포 안 소기관들을 붕괴시키고 결국 면역 세포는 괴사하며 쭈그러든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제공
에이즈 바이러스(HIV·화살표)가 사람의 정상 면역 세포에 접근해 세포막을 뚫고 세포 안으로 침입한다. 침투한 바이러스는 리보핵산(RNA)의 유전정보로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만들며 증식해 세포 안 소기관들을 붕괴시키고 결국 면역 세포는 괴사하며 쭈그러든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제공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울프 네바스 소장
세균의 습격-감염과정 영상 대량판독·분석
논문 30편 발표…61만달러 국제연구 따내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울프 네바스 소장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울프 네바스 소장
“실패 위험이 큰 신약 개발에 시간표를 정해두는 건 무리입니다. 하지만 지금 흐름대로 나간다면 결핵, 에이즈, 시(C)형 간염 등을 연구하는 우리 연구소에서 몇 년 안에 신약 후보가 나오리라 믿습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IPK)를 맡은 지 꼬박 4년을 넘긴 독일인 과학자 울프 네바스(44·사진) 소장은 요즘 자신감에 차 있다. 자신감의 비결은 이른바 ‘생물 시각화 기술’이다.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시각화 기술 구현을 내걸고 2002년 연구소 문을 연 그가 최근 기술의 성과를 눈앞에서 실감하고 있다. 저명한 과학저널인 <네이처>, <사이언스>를 비롯해 여러 국제 학술지에다 벌써 30편의 논문을 이 연구소에서 발표했다. 최근엔 신약 개발 분야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비영리 국제 연구기구(DNDi)가 내건 편모충 치료제 개발을 위한 61만달러 규모의 연구 프로젝트를,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을 제치고 따냈다.

“국제기구 전문가들이 이곳 연구 현장을 찾아 실사했고, 에이즈 바이러스와 내성 결핵균을 치료하는 후보 화합물질들을 빠르게 찾아내는 우리 기술을 검증한 뒤에 이뤄진 결정이니까, 한국의 신약 개발 기술이 세계 과학계에서 검증을 받은 셈이죠.” 그는 “시각화 기술을 통한 신약물질을 찾는 분야에선 우리 연구소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했다. 이 연구소에서 나오는 지적재산권은 국내 법인인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 귀속된다.

‘시각화’는 사실 생물학계에 부는 새로운 흐름이다. 어떤 단백질이 어떤 기능을 지니는지 원자·분자 수준에서 세밀하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세포 전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두루 살피는 방식이다. 살아 있는 세포가 관찰 대상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세포에 어떻게 침투하고 어느 부위를 먼저 파괴하는지, 그 세포 괴멸의 과정을 자연상태 그대로 살필 수 있다.

당연히 질병이 세포 안에서 어떻게 생기는지 보여준다. 그가 보여준 동영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형광물질이 삽입돼 빛을 내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세포에 서서히 접근해 점차 세포막을 뚫고 들어간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세포 습격 과정을 보면서, 마치 지피에스(GPS)처럼 바이러스가 움직이는 3차원 공간의 좌표까지 추적할 수 있다.

말라리아 원충이 적혈구 세포에 파고들어 40여 시간 만에 빠르게 증식해 적혈구 세포를 괴멸시키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후 엄청난 숫자로 증식한 말라리아 원충들은 적혈구 세포를 뚫고 밖으로 쏟아져 나와 급속히 퍼진다. 숫자는 감염 뒤 진행 시간이며 녹색 형광은 적혈구를, 파란색 형광은 말라리아 원충을 나타낸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제공
말라리아 원충이 적혈구 세포에 파고들어 40여 시간 만에 빠르게 증식해 적혈구 세포를 괴멸시키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이후 엄청난 숫자로 증식한 말라리아 원충들은 적혈구 세포를 뚫고 밖으로 쏟아져 나와 급속히 퍼진다. 숫자는 감염 뒤 진행 시간이며 녹색 형광은 적혈구를, 파란색 형광은 말라리아 원충을 나타낸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제공
그한테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며 ‘보는 것이 과학’이다. “가장 확실한 과학의 방법은 우리 눈으로 세포 안의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직접 보는 거죠. 우리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원래 하던 그대로 살아 있는 세포에서 행동하게 놔둡니다. 또 여러 화합물질이 병든 세포의 어떤 곳에 달라붙어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살핍니다. 실제 상황이죠. 그래야 약효가 처음 시작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또 약물의 독성이 생기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네바스 소장은 “실시간 시각화는 이미 생물학계에 널리 행해지고 있지만, 실시간 영상을 대량으로 판독하고 분석하는 초고속 컴퓨터의 자동프로그램과 분석 기술을 갖춘 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선 치료용 후보 물질에 대한 생체 세포의 반응을 하루에 2만종 규모에서 살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해 인간 유전자 3만종 각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며칠 만에 분석해, 수십 종의 유전자가 에이즈 감염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찾은 유전자의 기능을 막으면 에이즈의 세포 감염 위세를 꺾을 길도 나올지 모른다.

이 연구소엔 에이즈 바이러스나 결핵균 같은 위험한 병원체들을 산 채로 다룰 수 있는 높은 ‘생물 안전 등급’ 실험실을 갖추고 있다. 국내 두 곳뿐이다. 네바스 소장은 조류 인플루엔자와 관련해 “최근 파리 파스퇴르연구소와 협력해 캄보디아인 감염자의 시료를 확보해 앞으로 치료용 후보 물질을 찾는 연구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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