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과 디스플레이를 탈바꿈할 만한 새로운 반도체 트랜지스터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유리처럼 투명한 트랜지스터, 구부러지고 휘는 트랜지스터, 늘어나고 비틀리는 트랜지스터. 김일두 박사··박재우 교수 제공
고무줄·유리같은 트랜지스터 개발…3차원 회로 등장
“자동차·거실 유리에 TV화면 띄우는 일 가능해질 것”
“자동차·거실 유리에 TV화면 띄우는 일 가능해질 것”
현대 전자문명을 이끄는 핵심 부품인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변신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휘거나 늘어나는 트랜지스터가 개발되는가 하면 투명한 트랜지스터도 선보이는 등 이 분야의 기초·원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은 “트랜지스터의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휘고 접히는 전자제품이나 투명한 화면(디스플레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이뤄지고 있다”며 “신기술들은 시장 수요의 움직임에 따라 곧바로 제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랜지스터는 전자신호를 증폭하거나 껐다 켜는 기능을 하는 반도체 소자로서 전자제품을 실제 돌리는 데 쓰는 부품이다.
■ 휘고 늘어나고 휘는 트랜지스터의 변신은 일찍 시작됐다. 얇은 플라스틱 판에다 트랜지스터를 심어 구부리거나 둘둘 마는 전자제품의 부품으로 쓸 수 있게 하자는 구상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연구팀과 함께 휘는 트랜지스터를 개발한 김일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는 “손목에 감는 휴대전화나 입는 컴퓨터 같은 장치에다 이런 트랜지스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요즘엔 휘는 건 물론이고 늘어나는 트랜지스터가 주목받는다.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놓으면 다시 원래 상태로 줄어드는 신축성 있는 트랜지스터를 지난 3월 안종현 성균관대 교수가 참여한 한국·미국 연구팀이 개발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얇고 투명한 고무 기판 위에다 매우 얇은 실리콘 박막을 붙인 다음 그 위에 집적회로를 구현했다. 쉽게 깨지는 규소 성분의 실리콘이 부서지지 않게, 실리콘을 100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 두께의 박막으로 잘라 썼다. 안 교수는 “피부에 붙이거나 수술용 고무장갑에 내장해 환자의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지·분석하는 전자제품처럼 새로운 용도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신축성’은 트랜지스터의 새로운 열쇳말이라고 말했다.
■ 유리처럼 다 보이고 뭐니 뭐니 해도 투명한 트랜지스터가 최근에 가장 큰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국내에선 박재우 카이스트 초빙교수가 미국·일본 기업들이 이미 소유한 산화아연 반도체 방식의 원천기술과는 달리, 산화티타늄 반도체를 이용한 투명 트랜지스터의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유리에다 30나노미터 두께의 산화티타늄 박막을 실리콘 대신 뿌린 뒤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박 교수는 “투명도가 90%나 돼 보통 유리의 80~90%와 거의 구분하기 힘들다”며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투명 디스플레이가 현실이 될 날도 머잖았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스스로 빛을 내어 선명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에이엠올레드’(AMOLED·능동형 유기발광 다이오드)나 휘는 디스플레이에도 응용될 수 있다.
박 교수는 “이 기술이 다른 디스플레이 기술들과 더불어 발전하면, 자동차 앞유리에 내비게이션 화면을 띄우고 거실의 대형 유리에 텔레비전 화면을 띄우는 일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 일어선 트랜지스터 트랜지스터의 변신은 반도체의 집적도까지 바꿔놓았다. 평면에다 회로 선폭을 더욱더 작게 만들어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심는 현행 2차원 반도체가 집적 한계에 직면하자, 이를 극복하려는 대안 기술의 하나로 ‘3차원 집적회로’가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내 나노종합팹센터는 한국·미국 공동 연구를 통해 트랜지스터를 수직으로 세우고 집적회로를 층층이 쌓아 집적도를 늘리는 3차원 집적회로 상용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센터의 이완규 기술응용팀장은 “트랜지스터를 수직으로 세움으로써 차지하는 면적을 더 줄여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다”며 “한 층을 기준으로 보면 집적도가 10배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전통적 반도체 제조기술(CMOS·시모스)의 틀은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평면에 깔았던 트랜지스터를 일으켜 세우고 집적회로를 복층화하는 혁신을 실현해 3차원의 변신을 꾀했다.
반도체의 변신과 관련해, 김일두 박사는 “기존 반도체가 실리콘·유기물·산화물 반도체로 다양화하면서 기존 트랜지스터의 기능 변화가 전자제품의 변화를 계속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완규 팀장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통한 혁신이야말로 당분간 전통적 반도체가 직면한 근본 문제를 푸는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