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광학연구단 제공>
지름 2m 광학거울 국산화 비결은
‘정밀측정기’ 토대 우주광학연구단 국내 첫개발
이윤우 단장 “오차 줄이기, 슈퍼컴퓨터도 불가능”
단짝 이재협 엔지니어 “거울 하나에 몇달 걸려”
“아무리 기계가 발달해도 첨단 광학망원경의 제작을 완전히 자동화할 수는 없어요. 나노미터의 오차를 잡는 마무리 작업은 반드시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지름 2m짜리 광학거울을 깎으려면 1년 가까이 걸리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이윤우 우주광학연구단장은 지난 13일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지름 2m짜리 대형 광학망원경 제작 시스템을 보여주며 “과학의 초정밀 측정과 장인의 세심한 다듬기야말로 고해상도 광학망원경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선뜻 알기 힘든 말이다. 이미 투과전자현미경이나 방사광가속기 같은 첨단 장비들이 나노미터(㎚·10억분의 1m)까지 측정하는 시대에, 또 나노 반도체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시대에, 사람 눈이 미치지도 못하는 나노 정밀도의 광학망원경을 기계와 컴퓨터가 아닌 사람 손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니 듣기 좋으라 한 말 같아 몇 차례 더 그 뜻을 물어야 했다.
“반도체에선 몇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면적에다 나노미터의 정밀도로 구조물을 제작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작업은 수백만㎟ 규모입니다. 나노미터의 눈으로 보면 ‘망망대해’와 같아요. 지름 1~2m의 ‘엄청난’ 면적 전체에서 몇 나노미터의 오차를 측정하고 이를 자동기계로 깎으려면 슈퍼컴퓨터가 있다 해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우주 광학거울을 깎을 땐 장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한다. 지름 2.4m짜리 허블망원경도 마찬가지다.
이 단장은 이곳에서 23년째 카메라와 망원경을 연구하며 한 우물을 팠다. 1980년대 국산 카메라 렌즈의 품질 평가방법을 처음 개발하는 일을 맡으면서, 이 분야와 우연한 인연을 맺었다. 몇 ㎝ 지름의 렌즈를 다루던 그는 디지털카메라와 휴대전화의 렌즈를 거쳐 10년 전부터 우주 광학망원경을 다루고 있다.
그에겐 오랜 단짝이 있다. 이곳에서 17년째 렌즈와 반사거울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일을 하는 ‘장인’ 엔지니어 이재협(45·광학 가공 담당)씨다. 그는 “끈질김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큰 반사거울 하나를 깎는 데 몇 달 걸립니다. 빨리 깎으려다 보면 한 부분이라도 몇 나노미터 더 움푹 들어가는 곳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러면 그 깊이에 맞춰 표면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깎고 갈아야 해요. 그래서 항상 1을 깎으려면 0.1을 깎고 측정해 확인하고 다시 0.1을 더 깎는 식으로 조금씩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이젠 표면의 울퉁불퉁함을 나노미터 수준까지 측정하는 정밀기기가 개발돼 이런 작업이 가능하다. 이날 작업장에서 깎고 있던 지름 800㎜ 광학거울의 표면을 측정해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엔 수십 나노미터로 들쭉날쭉한 표면 오차들이 그래픽으로 나타났다. 이 단장이 말했다. “우리끼리 ‘측정할 수만 있다면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요. 오차를 잴 수 있으면 어떻게든 오차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우주광학연구단엔 연구자 10명과 대학원생 10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연구단 1층엔 갖가지 연마 장치들이 마련돼 마치 광학 ‘공장’ 같은 느낌마저 준다. 대부분 핵심 장치들이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 이 단장은 “대형 광학망원경 기술은 1980년대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경쟁 대상이 됐을 정도로 어느 나라도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 전략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곳에선 그동안 600㎜ 이상 광학망원경을 여러 대 만들어냈고, 300㎜ 위성카메라를 말레이시아에 250억원을 받고 파는 사업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위성카메라용 800㎜ 반사거울과 우주감시 망원경에 쓸 1.6m짜리 반사거울을 한창 깎고 있다. 23년 전 카메라 렌즈에서 시작한 과학자의 농익은 이력에서 “우주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식별할 정도의 2m급 망원경”을 만드는 기술이 자라났다. 그 곁엔 “작업할 땐 바람, 진동, 온도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장인이 있었다. 대전/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이윤우 단장 “오차 줄이기, 슈퍼컴퓨터도 불가능”
단짝 이재협 엔지니어 “거울 하나에 몇달 걸려”
1. 망원경용 반사거울의 원재료. 우주 공간에서도 잘 변성되지 않는 세라믹 성분이다.
2. 반사거울을 깎는 과정에 수시로 거울 표면의 울퉁불퉁함을 나노미터의 정밀도로 측정한다. 화면에 나노미터 단위로 울퉁불퉁한 표면의 오차가 나타난다.
3. 장인 엔지니어가 미세하게 다듬으며 오차를 조금씩 줄여나간다. 측정과 연마를 무수히 반복한다.
4. 표면을 코팅 처리해 조립하면 반사거울 광학망원경이 완성된다. 망원경은 빛을 모으는 주거울(주경)과 이를 초점에 모으는 보조거울(부경)들로 이뤄진다. <우주광학연구단 제공>
2. 반사거울을 깎는 과정에 수시로 거울 표면의 울퉁불퉁함을 나노미터의 정밀도로 측정한다. 화면에 나노미터 단위로 울퉁불퉁한 표면의 오차가 나타난다.
3. 장인 엔지니어가 미세하게 다듬으며 오차를 조금씩 줄여나간다. 측정과 연마를 무수히 반복한다.
4. 표면을 코팅 처리해 조립하면 반사거울 광학망원경이 완성된다. 망원경은 빛을 모으는 주거울(주경)과 이를 초점에 모으는 보조거울(부경)들로 이뤄진다. <우주광학연구단 제공>
우주광학연구단엔 연구자 10명과 대학원생 10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연구단 1층엔 갖가지 연마 장치들이 마련돼 마치 광학 ‘공장’ 같은 느낌마저 준다. 대부분 핵심 장치들이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 이 단장은 “대형 광학망원경 기술은 1980년대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경쟁 대상이 됐을 정도로 어느 나라도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 전략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곳에선 그동안 600㎜ 이상 광학망원경을 여러 대 만들어냈고, 300㎜ 위성카메라를 말레이시아에 250억원을 받고 파는 사업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위성카메라용 800㎜ 반사거울과 우주감시 망원경에 쓸 1.6m짜리 반사거울을 한창 깎고 있다. 23년 전 카메라 렌즈에서 시작한 과학자의 농익은 이력에서 “우주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식별할 정도의 2m급 망원경”을 만드는 기술이 자라났다. 그 곁엔 “작업할 땐 바람, 진동, 온도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장인이 있었다. 대전/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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