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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누에의 꿈 “실 뽑아 ‘인공뼈’ 만들어요”

등록 2008-12-04 14:16수정 2008-12-04 14:17

누에가 실을 뽑고 있는 장면(큰 사진)과 실을 거의 다 뽑아 고치를 형성한 모습.  농촌진흥청 제공
누에가 실을 뽑고 있는 장면(큰 사진)과 실을 거의 다 뽑아 고치를 형성한 모습. 농촌진흥청 제공
농진청, 실크단백질 이용 고막·잇몸뼈부터 도전
“콜라겐과 유사 인체무해…잠사연구 새 영역”
농촌진흥청 누에연구팀이 누에고치에서 나온 실(비단)의 단백질을 이용해 사람몸에 쓸 인공뼈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실크 인공뼈’가 성공하면 농산물을 이용한 의학 소재로는 처음이 된다. 연구자들은 비단이 수천년 동안 옷이나 봉합사로 쓰일 정도로 사람몸과 잘 어울리는 특성이 있어 실크 인공뼈가 만들어지면 생체친화적 의료용품으로 널리 쓰일 것으로 기대한다.

농진청 누에연구팀이 누에고치 실을 섬유가 아닌 다른 쓰임새로 만들고자 눈을 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때 수출의 주역이던 잠사업이 1990년대 중반부터 사양길로 접어들었죠. 그래서 ‘입는 비단’에서 ‘먹고 바르는 비단’으로 길을 바꿔 응용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누에 동충하초가 만들어졌고, 실크 단백질을 이용한 건강식품과 화장품도 만들어졌죠. 그 덕분인지 양잠농가도 1990년대 중반에 3천가구로 줄었다가 다시 5천가구 수준으로 늘어났습니다.” 이광길 잠사양봉소재과장의 말이다. 이번엔 한발 더 나아가 인공뼈 만들기에 도전하는 셈이다.

비단으로 뼈를 만든다니,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여주홍 연구실장은 “실크는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외과수술용 봉합사로 쓰이면서 사람몸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수천년 동안 입증돼 왔다”며 “게다가 최근엔 뼈·피부 세포를 비단 위에 배양하면 세포들이 비단에 잘 달라붙어 생장할 정도로 세포 지지대 구실도 한다는 것이 다른 실험들에서 검증됐다”고 말한다. 비단 단백질이 우리 몸에서 세포와 세포 사이를 메우고 있는 섬유상태의 단백질인 ‘콜라겐’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여 실장은 “실크 단백질을 잘게 자른 뒤 필요한 단백질 조각(펩타이드)만을 정제해 인공뼈의 소재로 삼으면, 콜라겐 같은 물질이나 물렁한 뼈와 단단한 뼈 등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팀은 우선 고막뼈나 잇몸뼈 같은 물렁한 뼈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실크 인공뼈의 임상시험엔 한림대의료원이 공동 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다.

실크 인공뼈는 누에연구팀한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광길 과장은 “국립기관에서 잠사 연구가 시작된 건 1906년 이래 100년이 넘었다”며 “사양길에 접어든 누에고치 산업과 누에 연구가 첨단 의학소재 같은 새로운 영역으로 처음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잘나갈 때에 농진청에서 누에 연구자들은 60~70명이나 됐지만, 지금은 10명 안팎으로 축소됐다. ‘잠사연구소’라는 이름도 없어져 지금은 농진청의 한 부서로 재편됐다. ‘입고 바르는 비단’은 이런 누에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개발돼 왔다. 실크 단백질을 잘게 잘라 가루로 만든 건강식품이나 치약·화장품 같은 응용연구가 잇따라 결실을 맺어 일부는 제품으로도 출시됐다.

연구자들은 실크 단백질엔 더 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믿고 있다. 권해용 박사는 “실크 단백질 조각으로 약물을 감싸 우리 몸에서 약물이 서서히 녹게 하는 ‘약물 운반 물질’로도 쓸 수 있다”며 “실크 단백질 조각을 100~200나노미터 크기의 캡슐로 만들어 그 안에 약물을 가두는 나노기술이 한창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실크 단백질에는 ‘물을 피하는 성질’(소수성)과 ‘물과 어울리려는 성질’(친수성)이 섞여 있는데, 나노기술로 이런 단백질의 소수성과 친수성을 잘 조작하면 친수성 부분은 외벽을 이루고 소수성 부분은 안쪽으로 말려들어가게 하는 식으로 단백질 조각들이 뭉친 ‘나노 캡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크 단백질들 안에 갇힌 약물은 몸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면서 약효를 오래 지속하게 된다. 권 박사는 “실크 단백질이 여러 의료용 물질로 응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문명의 자원이던 누에와 비단이 나노기술과 생명공학을 만나 의류에서 먹을거리로, 다시 의학소재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여 실장은 “누에 연구는 한·중·일 세 나라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일본은 실크 유전자의 염기서열 지도를 완성하는 등 기초연구에서 앞서가고 한국은 실용화와 응용연구에서 앞서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농진청에선 황금빛 실을 자아내는 누에, 유용한 물질을 분비하는 유전자 조작 누에 같은 품종개량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수원/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전자현미경으로 본 누에고치 실. 가운데 두 가닥이 비단이다. 농촌진흥청 제공
전자현미경으로 본 누에고치 실. 가운데 두 가닥이 비단이다. 농촌진흥청 제공

누에 ‘실크 단백질’은 보물 덩어리

누에의 실샘에서 나온 고치실을 현미경으로 보면, 고치실은 전선 가닥과 비슷한 모양을 띠고 있다(사진). 안쪽에 부드러운 단백질 ‘피브로인’으로 이뤄진 두 가닥이 있고, 바깥쪽에는 ‘세리신’이라는 다소 거친 단백질이 감싸고 있다.

‘비단’은 고치실을 뜨거운 물에 삶아 세리신을 떼어내고 남은 피브로인 단백질 부분을 말한다. 피브로인은 매우 큰 고분자의 단백질이어서, 몸에 그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단백질을 자르는 효소를 써서 잘게 잘라 단백질 조각(펩타이드)들로 만들면, 건강식품이나 화장품·비누·치약 그리고 인공뼈 소재 등으로 쓸 수 있다.

실크 단백질엔 항산화 작용을 하거나 간 해독에 좋은 아미노산을 비롯해 여러 필수 아미노산들이 함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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