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종 환경적응 게놈 돌연변이에 늘 비례하진 않아
“실험은 너무도 단순했지만 20년 동안 쌓인 데이터는 생물 진화에 관해 너무도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줍니다.”
미생물 대장균을 무려 4만 세대나 배양하면서 세대별로 달라지는 환경 적응도와 게놈(유전체) 돌연변이의 발생률을 비교하는 실험을 해온 국제 공동연구팀의 김지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20일 공동연구 결과를 이렇게 자평했다. 최근 과학전문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발표된 이 연구는 대장균을 20년 동안 쉼없이 배양하며 적응도를 분석해온 미국·프랑스 연구팀과 대장균의 게놈 진화를 추적해온 한국 연구팀의 합작품이다.
이 연구가 학계에서 주목받은 것은 생물종의 환경 적응도가 유전자 돌연변이의 진화 속도에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닐 수 있음을 실험 결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는 환경에 잘 적응한 유전자가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적응과 돌연변이는 비슷한 변화 속도와 패턴을 지닐 것이라는 일반의 이해와 다르다.
실험실 진화는 연구팀이 정해둔 일정한 환경조건에서 이뤄졌다. 연구팀은 20~30분 만에 새 세대를 이룰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대장균에 아주 적은 양의 포도당 먹이만을 주며 가장 잘 살아남는 것들을 후손 세대로 남기는 방식으로 4만 세대 배양을 계속했다. 진화론의 ‘자연선택’을 흉내낸 실험실의 ‘인공선택’이다. 그러면서 일정 시기마다 동결 보존해둔 조상 균주와 후손 균주를 한데 모아 생존경쟁을 벌이게 했다. 후손 균주가 조상 균주보다 얼마나 더 적응력을 높였는지를 측정하고, 이들의 게놈에서 돌연변이를 찾아내 진화의 궤적을 추적했다.
20년치 자료가 모이자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김 박사는 “후손 세대들은 초기엔 매우 빠르게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보였지만 2000세대 이후부턴 적응 속도가 차츰 느려졌다”며 “이에 견줘 유전자 돌연변이는 마치 ‘시계’처럼 늘 일정 속도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는 늘 일정한 수준으로 나타나는 유전자 돌연변이에서, 진화 초기엔 환경 적응에 꼭 필요한 돌연변이들이 먼저 나타나고, 점차 적응 기여도가 낮은 돌연변이들이 출현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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